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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연우 Dec 27. 2022

추억이 태우는 불꽃은 꺼지지 않는다


영하 12도 한파를 헤쳐 귀향길에 나섰다. 입시에 매달린 수험생 학부모도 벗어던지고 복강경 수술을 한 지 열흘 된 남편 뒷바라지도 잠시 미뤄두고 지칠 대로 지쳐 방전된 자신에게 동지를 지난 태양광 에너지를 충전해주고 싶었다.


두꺼운 패딩 차림 그대로 운전석에 앉아서 히터는 켜지 않은 채 오직 엄마 얼굴을 떠올리며 달렸다. 엄마를 떠올리자 포근한 견인의 힘이 동행하여 춥지 않았다. 얼마나 밟았는지(?) 최단시간 기록을 돌파, 네 시간이 채 안 되어 고향 집 안마당에 도착하였다.

“엄마~”


그새 더 수척해지셨다. 점심은 배가 든든해서 안 드셨다고 한다.

엄마가 안 차려주니 아버지도 굶으셨다.

바삐 나선 길이라 반찬가게에서 사 온 찬들로 이른 저녁을 차렸다.

잘 드신다.


저녁 느지막이 동생들이 도착했다.

연내 유효기간이 만료되는 비행기 표 한 장이 남아서 석 달 만에 다시 귀국한 동생이 커다란 캐리어백을 들고서 들어왔다. 자동차로 국경을 넘어 오스트리아 비엔나 공항에서 열두 시간 비행한 끝에 고향으로 날아온 겨울 제비의 깃털이 찬바람에 꽁꽁 얼었다. 따뜻한 저녁상을 차려주었다.


새 아침 마당에 내려서서 화단 진달래나무를 살펴보았다. 긴 겨울잠에 빠진 꽃눈들이 어떤 꿈을 꾸는지 바라보는데 잠들지 않고 벌써 깨어난 꽃눈 한 송이 천연 염색한 꽃분홍치마를 감아쥐고 봉긋 솟아올라 생긋 미소를 머금었다. 추울까 손바닥을 오므려 감싸주었다.


난류가 흐르는 내 고향 동해안은 한겨울에도 덜 추운 편이나 연일 기록적인 한파를 갈아치우는 요즘 오리 깃털 한 장 들어있지 않은 홑겹 고운 옷을 입은 진달래 꽃봉오리 앞에 서서 경외심이 든다.

“너는 정녕 나를 반기려고 깨어난 거니? 내가 오는 줄 어찌 알았느냐. 지금 꽃눈을 터뜨리면 이듬해 봄 피울 꽃이 없을 텐데 그래도 괜찮으냐. 추운 밤 어찌 견뎠느냐.

가엾구나. 네 정성 갸륵하여 더 어여삐 여길 것이다.”

엄마는 잎을 떨궈 홀쭉한 노란 장미에게 비닐 이불을 덮어 씌워놓았다.



들판을 가로지른 고향 동산에 올해 새로이 등산로가 생겼다.

바다 곁에 엎드려 파도 소리만 듣는 침묵의 산에 난생처음 올라가 보기로 한다.

들길에서 불과 십여 분 올라설 뿐인데 들판이 저지대로 내려가 보이고 알록달록한 어촌 지붕들이 삿갓조개가 군집한 바위처럼 보인다. 그 너머 수평선은 언제나 평정심을 잃지 않고서 하늘과 땅의 마찰을 중재하는 완충 역할을 수행한다. 길가에는 어릴 적 보았던 맹감나무 덩굴(청미래덩굴)이 얽혀있다.


고향 말로 ‘깜바구’라 불리는 새빨간 열매를 매달고서. 크리스마스 장식품으로 손색이 없다. 초록잎이 무성한 여름철 깜바구는 연한 녹색을 띤다. 시큼한 맛이 나는 깜바구를 두 눈을 질끈 감으며 씹곤 했었다. 가을이 되면서 발그스름 익어가면 단맛이 난다. 어릴 때는 참 흔했었는데 지금은 눈에 거의 띄지 않는다. 오염에 민감한 환경 지표식물 같다. 내가 사는 수도권에서는 이 식물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까.



완만한 경사를 올라가자 잡목이 물러서며 소나무가 운집한 공간이 확 트인다.

푹신한 솔가리 위로 솔방울이 장난치듯 굴러다니고 공기는 폐부에 아무런 저항 없이 흐른다. 고개를 든다. 초록 솔잎이 에워싼 하늘이 푸른 호수를 담아낸다. 그 호수 위로 흰 구름이 천진하게 흩어져 떠간다. 누군가 접어 보낸 하얀 종이배가 두둥실 떠간다. 어쩌면 저 하늘은 내 마음을 그대로 읽고 있는지도… 행복한 마음을 그려낸다면 저런 모습이 아닐까.


산길을 오르며 겨울나무들이 걸러낸 파란 겨울 하늘과 마음 가는 대로 흐르는 흰 구름의 유희에 흠뻑 취해버렸다. 흰 글자를 쓰다가 지우고 쓰다가 지우고 지우개로 글자를 쓴다. 그래, 알 것 같다. 흰 구름의 마음을. 우리가 흔히 쓰는 검은 글자는 거짓이 숨어있지만 흰 글자는 바람과 물의 언어, 온몸이 스캔하는 영혼의 언어, 높은 곳으로 이끄는 형이상학적 메신저, 기쁨이 샘솟는다.



산길을 내려가자 길은 바닷가 바로 옆 산으로 이어진다. 오후 햇빛이 유난히 쏟아지는 산 중턱에 이르자 새파란 풀들이 한겨울에도 소복하게 자란다. 기온은 영상 6도, 따스한 숨결이 모여 바람도 비껴가는 이곳은 봄. 수액이 오른 청매화 가지에 초록빛 움이 돋아 오르고 엷은 미색 꽃눈이 드문드문 맺혀있다. 양기를 품은 양지인가 보다.


아까시나무 가시에 긁혀가며 능선에 오르자 오솔길이 나타난다.

그리고 저 아래 파도 소리 서늘하게 가슴팍 후벼 판다.

경사지로 바짝 다가서자 흰 거품을 게우는 파도가 거세다.

강풍주의보가 발효된 동해안에는 너울성 파도가 인다.


겨울 바다가 보고 싶었었다.

여름에 한 번 다녀간 이후 내 안에는 소금기가 다 말랐다. 팍팍하고 쩍쩍 갈라져 물기라곤 없었다. 심지어 입술도 갈라 터졌다. 겨울 바다는 몹시 성나 있었다. 살을 베일 듯이 시퍼런 칼날을 수평선에 세워두고 거센 파도를 쉼 없이 해안가로 할퀴었다.

자기모순을 자해하는 노여움이었다.


세상 못나 보이는 자신을 다그치며 술잔을 거머쥐는 저녁이 있다. 가슴을 두드리는 서글픈 울음을 운다. 밋밋하고 싱거운 일상에 눈물이 필요한 시간. 소금간이 필요하다. 썩어 문드러진 삶의 골짜기에 소금을 후려쳐야 한다. 눈보라 쌓여 막차가 끊긴 그 저녁 파도 소리 들린다. 세상 끝까지 들린다. 내 발아래 지반을 허물고 깎아가며 몰아세운다.


네 좌표는 어디를 향해 나아가느냐. 이제 너는 궤도 수정을 해야만 한다. 목표 지향에서 과정 중심으로, 좀 더 느리게 느리게, 삶의 여정이 얼마 남지 않은 네 부모님을 돌봐드리며, 도시에서 시골로, 네 살던 고향으로, 중심에서 변두리로, 문명에서 자연으로……


겨울 바다는 봄을 끌어당기기 위하여 고립을 자처한다. 자기모순을 타파하기 위하여 울부짖는 밤이 필요했을 뿐 사나흘 울고 나면 개운하고 화평한 모습으로 잠잠한 수면 위로 큰 배를 띄우게 될 것이다. 그 내면에 싱그러운 해조류 물고기들 가득 품게 될 것이다. 격랑이 휘몰아친 바닷가 오두막에 얼마 후면 향기로운 수선화들이 선물같이 안길 것이다.


고향 겨울 바다, 파도가 거세다


능선을 밟아가며 더 나아가자 싱그러운 상록수 두 그루가 떡하니 자리 잡고 있다. 내 키보다 조금 더 크다. 비슷한 시기 바람에 실려 씨앗이 날아왔나 보다. 타원형 잎 가장자리에 뾰족한 톱날을 세운 호랑가시나무이다. 서양에서는 호랑가시나무 푸른 잎과 붉은 열매로 크리스마스를 장식한다. 겨울에도 진한 녹색의 나무는 영원한 생명의 상징으로, 붉은 열매는 그리스도의 붉은 피를 의미한다. 꽃말은 ‘예견 통찰력’.


먹구름 사이로 날아온 한 줄기 빛이 이 나무를 더 은총이 깃들게 내리비춘다. 천리포수목원에서 처음 보았는데 고향에서 만나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이 나무가 꽃 피고 생장하는 모습을 앞으로 쭉 지켜보겠다. 나무 아래 누군가 다녀갔는지 싱싱한 줄기가 잘려 버려져 있다. 가지 두 개를 주워서 집으로 가져왔다. 화단 언 땅을 파서 비닐을 덮고 호랑가시나무 가지를 나란히 심어주었다. 이듬해 봄 뿌리를 내렸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을 함께 심었다.



오늘은 크리스마스이브, 산 아래 마을에서 제일 높은 집으로 어둠이 깃든 골목을 더듬어 찾아갔다. 편백나무 리모델링 한 그 집 마당에는 모닥불이 타닥타닥 타오르고 테이블에는 하얀 크리스마스트리 와인 초콜릿 케잌이 차려져 있다. 깊숙한 밤하늘이 내려보낸 별빛과 모닥불 불꽃이 튀어 올라 서로 만나는 묘한 분위기를 그저 불멍, 바라보았다. 내 안에 고인 사랑 용기 온기 모두 끌어모아 추억으로 직행하는 지금(present)은 선물(present), 추억이 태우는 불꽃은 꺼지지 않는다.

영원히…       




                            

불길은 나무토막 한 상자를 한 시간 반 금세 먹어치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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