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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시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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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연우 Jan 14. 2023

1월 안개비



직경 0.5mm 미만 몸집 빗방울이

소곤소곤 겨울 강을 건넌다

새해 소망이 유실되어 떠내려가는 강어귀

연갈색 갈대 허리 꺾어가며     


서릿발 우짖는 하늘길 고이 살펴

다시 돌아온 겨울 연인 큰고니 깃털 펜

한두 방울 잉크 묻혀

그리운 연하장 손글씨 써 내려가며     


매일 되풀이되는 연장선

무기력하게 부유하는 물거품이

허공에 지은 환상의 집 한 채

축축이 젖어 무너지도록 관망하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겉도는 시공간

적막을 먹고 자라는 엉겅퀴, 가시 돋친

자음과 모음의 결합으로도

속 시원히 내뱉지 못한 언어의 앙금

찐득찐득 버무리며     


머리카락 올올이 스며

지표면 아래 단꿈 꾸는

새싹의 의지를 일깨울 수 있다면

고통의 성수聖水를 기꺼이 마셔야 한다     


자작나무에 내리는 안개비는

두개골 척추 복숭아뼈를 훑어 모든 욕망을

표백하는 미학을 마침내 완성한다

한겨울 안개 숲

얼음새꽃 눈 녹이는 속삭임, 속삭임   






 2023. (남연우) all rights reserved.     


오늘 산책길에 부동자세 안개비 맞는 백조 무리, 고독한 겨울 나그네..

네가 진정 시인이라면

1월에 내리는 안개비를 외면할 순 없다

공중에 희뿌연 안개집 지어놓고

이틀째 소곤거리는 저 속삭임에 대하여

해석해 보아라

두 귀를 깔때기처럼 쫑긋 모으고 들어보아라

저 곱상한 빗물을 담아보아라


제대로 설계한 적 없는 새해 소망이 떠내려가는 소리 들립니다

큰고니 깃털이 서걱이며 연하장을 써 내려가는 소리 들립니다

무기력하게 가라앉은 생활 전반에 걸쳐

따갑게 질책하는 소리,

입 안에 가시 돋친 엉겅퀴가 자라는 소리 들립니다


촉촉이 젖은 지표면 아래

단꿈 꾸는 새싹의 숨소리는 희망적입니다

자작나무 숲은 어떤가요?

안 그래도 하얀 몸집 더 창백하게

모든 욕망을 빨아들이는 저 표백이

광기스럽습니다

미친 듯이 아름다워요..


안개비는 속삭입니다

지금 잠시 음소거 상태 당신에게

조금만 움츠렸다 가라고

빈틈 가득 메운 안개 봉합될 시간을 주는 거라고

곤궁한 무채색 지대 어서 건너가라고


아, 복수초 노란 꽃봉오리 맺혀

눈 녹이는 속삭임

은근한 열기를 띱니다

직경 0.5mm 초소형 안개비의 독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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