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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연우 Feb 25. 2023

친구와 포도주는 오래될수록 좋다

대학교 신입생이던 3월, 어떤 친구가 나랑 비슷한 검은색 재킷을 입고 다녔다. 신산한 꽃샘 바람막이는 해야겠고 매일같이 입고 다녔다. 그 친구도 마땅한 대안이 없었던지 한결같이 입고 다녔다. 스쳐 지나가며 얼핏 보니 세로줄 무늬가 들어간 옷감도 똑같았다. 4월이 되면서부터 눈치껏 재킷을 벗고 블라우스, 남방셔츠를 입고 다녔다. 살갗에 스미는 추위를 탔다.


가입한 동아리가 달랐던 우린 그렇게 눈인사 정도로만 안면을 익히고 다녔다. 친근한 느낌인데 가깝지도 않고 멀지도 않은 어정쩡한 사이였다. 3학년 무렵 조금 더 가까워졌다. 단둘이 만나는 일은 없었고 그 친구 주변 무리와 스스럼없이 어울려 지냈다. 학교 시험이 끝난 어느 날 친구들과 함께 청량리 극장에서 라붐 영화를 봤다. 시험이 끝난 해방감과 더불어 소피 마르소의 상큼한 이미지, 테마곡 ‘Reality’는 살랑살랑 알 수 없는 청춘의 무지개를 그려내었다. 친구도 그때 그 영화를 봤다고 한다.


우린 직장도 같은 곳으로 들어갔다. 저도 나도 차분한 성격이라 평행선을 긋는 시간의 화살에 실려 가던 어느 가을날 창문에 부딪는 낙엽이 물음표처럼 솟구쳤다. 바람과 함께 문득 멀리 떠나고 싶어졌다. 친구랑 직장동료 한 사람이랑 셋이서 의기투합 지리산으로 무작정 떠나기로 했다. 저녁 근무를 마치고 서울역 밤 11시가 넘어서 출발하는 야간 기차를 타고 구례역으로 향했다.


시골 역에 도착한 시각은 새벽 네 시 무렵. 대합실 불빛을 제외하곤 사방이 깜깜하였다. 우리랑 같은 기차에서 막 내린 총각 두 사람이 서성거렸다. 그들은 머리까지 올라오는 배낭을 멘 전문 산악인들처럼 보였다. 첫 행선지는 뱀사골 산장인데 처녀 셋이서 시골 어둠을 헤쳐 모르는 산중으로 가기에는 겁이 났다. 다행히 그들도 그리로 간다고 하였다. 택시 한 대에 다섯 사람이 얌전히 나눠 타고서 컴컴한 들길을 달렸다.


갑자기 비춘 헤드라이트에 놀란 코스모스들이 멀미하듯 흔들거렸다. 으슥한 산길을 굽이쳐 오른 통나무 산장에 택시는 멈춰 섰다. 희미한 전구 불빛이 밴 유리문을 밀자 잠에 취한 주인장이 부스스 일어났다. 뜨거운 사발면을 국물까지 후루룩 들이켜 마시고는 초콜릿 생수를 구입 계곡 물소리 들리는 산길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영문도 모르는 초행 산길을 그들이 앞서 걷는 대로 따라갔다. 밝아오는 미명이 조금씩 어둠의 베일을 걷어내자 계곡에 물든 핏빛 단풍이 처연한 속살을 드러내었다. 서울의 밋밋한 가로수 길은 결코 알려 주지 않는 가을의 깊이, 산중 첫새벽이 밤새 달여준 약수 같은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이십 대 중반 발산하는 특유의 젊음은 풋풋하였다.


이울기 시작하는 발아래 풀들, 무릎에 부딪혀 서걱거리는 조릿대를 헤쳐 꿈을 꾸듯이 지리산 골짜기를 올라갔다. 산 이마를 훑어 내려온 투명한 가을 햇살이 갈림길 이정표 왼쪽 화살표는 천왕봉으로, 오른쪽 화살표는 노고단으로 갈라섰다. 그들은 천왕봉에서 1박 한다며 왼쪽 길로, 우린 노고단 오른쪽 길로 헤어졌다.


능선을 밟으며 평이하게 나아가는 노고단 길을 걸으면서 지리산이 왜 어머니 산이라 불리는지 알 것 같았다. 산봉우리가 모난 데 없이 둥글고 어머니 가슴처럼 후덕하게 생겼다. 어디를 둘러봐도 삐죽빼죽 험준한 암벽을 치켜세운 반골 기질이라곤 안 보였다. 그저 푸근하였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암갈색 워커를 신고 온 내 발이 브레이크를 걸었다. 욱신거리는 발가락이 참고 참다가 백기를 들어버렸다. 내가 자꾸 쉬어가자고 하니 친구는 기꺼이 자기 등산화를 벗어서 내 신발과 바꿔 신었다. 발가락 숨통이 트이자 날아갈 것 같았다. 그렇게 노고단에 도착 내려갈 때는 셔틀버스를 탔다. 산 아랫마을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서 무박 2일 지리산 등산을 마친 우린 서울행 기차를 탔다.


바로 다음 날 남대문 시장에 가서 등산화 한 켤레를 장만하였다. 지금은 무거워서 신지 않지만 밑창 갈이 한 번 한 그 등산화가 신발장에 아직 남아있다. 지리산에 함께 간 동료는 언제나 고마운 사람으로 기억된다. 어느 날 직장에서 식사하고 세면대에서 손을 씻는데 속이 메슥거렸다. 돌아설 틈도 없이 먹은 걸 다 게워버렸다. 마침 옆에 있던 그 동료가 괴로워하는 내 등을 툭툭 두드려주었다. 세면대는 급기야 토사물 범벅이 돼버렸다.


막히면 어쩌나 걱정하면서 주저앉는데 그새 고무장갑을 낀 동료가 거침없이 토사물을 두 손으로 긁어모아서 처리하였다. 내가 하겠다고 했더니 그냥 가만히 있으란다. 그 모습 보면서 몸을 사리지 않는 그녀의 헌신에 감동하고 말았다. 나라면 어땠을까. 지저분해서 감히 손도 못 대고 자리를 떴을 것이다. 검은 뿔테 안경 그녀를 다시 만난다면 근사한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


내 친구와 나는 직장을 떠나고도 연락하며 지낸다. 가끔 아주 가끔 인연의 실이 끊어지지 않을 정도로만 연락하며 지낸다. 어제 그 친구를 오 년 만에 만났다. 백화점 기둥 사이로 어떤 여자가 나타났다 사라진다. 기다리던 친구는 아니었다. 아이보리색 코트를 입은 그 여자는 둥근 기둥을 지나 내게로 성큼 다가왔다. 내 앞에 다가와서 이름을 부르는데 얼굴을 보니 친구였다.


오 년이라는 시간은 그녀를 감쪽같이 바꿔놓았다. 내가 선뜻 못 알아볼 만큼. 날씬했던 그녀는 체형이 바뀌었다. 마스크 위로 드러난 눈가에도 연한 스마일 주름이 잡혀있었다. 보고 싶었던 내 친구, 그녀의 팔짱을 끼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면서 팔짱을 놓지 않고 속닥거렸다.


점심을 먹고 야자수와 현무암 돌담 삼나무 조각이 깔린 카페에서 밀린 이야기를 나누었다. 친구는 성격도 변해있었다. 전에는 말이 적은 편이었는데 지금은 시냇물이 흐르듯 이야기를 풀어낸다. 맞장구치며 낄낄거리며 시간이 가는 줄 오는 줄 모르게……


친구에게 아이크림 두 통을 내밀었다. 한 통만 주면 친구가 아껴 아껴 바를 것 같아서 오래 두고 얼굴 펴지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냉장고에 넣어둔 들기름은 유통기한이 임박 망설여졌다. 액세서리는 일절 착용하지 않지만 가끔 끼는 루비 반지도 친구에게 누가 될까 놔두고 나왔다.


친구는 목걸이 귀걸이 반지를 두루 착용하고 나왔다. 유쾌한 그 모습이 보기 좋았다. 사실 친구의 남편은 중병을 얻어서 장기 투병 중이다. 그녀의 마음고생 말하지 않아도 훤하다. 신앙이 아니었다면 벌써 이혼했을 거라며 헤어질 때 친구는 영원한 베스트셀러 성경책을 꺼내 주었다.

“이거 좋은 말씀 들어있는 거지?”

짐스러워 손사래 치다가 친구 마음이려니 웃으며 받아 들었다.


지하철 방향 식품매장에 고소한 콩가루를 입힌 와플을 굽고 있었다.

아이들 주려고 친구 두 개, 나 두 개 카드를 내미는데 친구는 억센(?) 팔을 쭉 뻗어 자기 카드를 내밀었다. 직원은 둘이 싸움 나겠다며 친구 카드를 받아 든다. 어쩔 수 없이 또 이렇게 빚진 기분이 든다. 지하철은 각자 반대 방향. 서로의 인생길도 멀리 떨어져 자신의 길을 걸어간다. 그 끝이 어디인지는 알 수 없어도 소박한 행복이 묻어나는 날들이 이어지길 바라며, 가물거리는 친구의 등을 향해 손을 흔든다.

‘잘살아, 꿋꿋하게!’


다음번에 만날 때는 좀 더 가까운 시일 내 친구를 태우고서 내가 자주 가는 호수 레이크뷰 한식집에서 진짜 맛있는 식사를 해야겠다. 봄볕같이 따사롭고 심성이 고운 내 친구…

먹먹한 물보라가 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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