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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연우 Apr 09. 2023

어떤 봄

고목에 피는 꽃

봄의 시작을 알리는 하얀 총성(銃聲)이 유리창에 부딪혀 흩어지는 봄날 아버지는 아침 식사를 물리자마자 자리에 누워계신다. 새우잠을 자려고 억지로 눈을 감는 아버지의 등 아래 벚꽃 잎이 날아와서 살아온 날들만큼 소복이 쌓인다. 그 모습 보자니 야속하게 멀어져 가는 세월의 썰물을 되돌리고 싶다. 


“아버지, 민속촌 가실래요?”

내 말을 듣자마자 아버지는 드러누웠던 몸을 벌떡 일으키셨다.

“그래, 가자.”

한국민속촌 그 골짜기라면 아직 봄꽃들이 화창하게 피어있을 것 같았다. 거기 가서 지는 꽃들을 되돌려 아버지에게 보여드리자. 지친 내 눈에도 폭죽이 터지는 꽃 구경시켜 주자. 


걸음이 불편한 아버지를 매표소 가까이 앉혀드리고 주차를 한 다음 휠체어를 대여, 등 뒤에서 밀었다. 첫걸음을 떼면서 알았다. 아버지 체중의 일정 부분을 온전히 내 힘으로 감당해야만 낡아빠진 바퀴가 천천히 굴러가는 시시포스의 바위라는 것을. 


출입구를 통과하며 몇십 미터 깔린 보도블록을 벗어나자 흙길이 쭉 이어졌다. 옛 정취를 살린 흙길이 그때부터 고역이었다. 내 발로 걸을 때는 몰랐던 지표면 요철이 사막과 협곡이 이어지는 험로였다. 조금 파이거나 움푹 꺼진 흙길에는 어김없이 모래가 덮여있었는데 거기 빠진 휠체어 바퀴가 꼼짝 않고 갇혀버렸다. 후진하는 수밖에 없었다. 작은 돌멩이가 박혀있어도 나아감을 거부한 채 충격이 전해졌다. 진땀이 났다. 내 허리와 두 팔 무릎 관절을 비틀어 짜도 힘이 모자랐다. 손에 낀 면장갑이 쓸려 애먼 보풀만 일었다. 


경사로는 피한 채 평지를 골라서 밀고 모래와 돌멩이를 피하다 보니 대갓집 대문 초가집 싸리문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저 길 따라가며 병풍에 그려진 꽃구경 했다. 길가에 핀 아름드리 진달래 앞에서는 휠체어를 세워서 브레이크 걸고 사진을 찍었다. 담장에 핀 뉘 집 복사꽃에 시선이 팔리면 아버지를 잠시 기다리게 하고 나 혼자 그 집으로 뛰어 들어가서 감상하고 돌아왔다. 


내 집 앞에서는 이미 진 벚꽃들이 민속촌 산골짜기에는 산벚꽃들이 지천으로 피어있었다. 흰 달빛이 서린 배꽃들이 천 년 전 보고 싶은 얼굴처럼 어른거렸다. 고목처럼 굳어져 가는 아버지께 이 봄 피는 꽃들이 잠시 잠깐 청춘을 되돌려주길 바랐다. 풍상에 절은 가슴에 웃음꽃 한 송이 피어나길 소망했다. 더 이상 초라한 늙음이 다가오지 못하게 가까스로 밀고 간 길은 장터국밥 한 그릇 말아먹고 되돌아왔다. 진이 빠졌다.   



놋그릇에 맛있는 음식이 담겨 나오는 한정식 집 앞에 선 아버지, 고우시다!

        


나더러 의사 하라는 의사

사흘째 이어지는 봄비가 보슬비를 뿌린다. 지상으로 갈지 지하로 들어갈지 고민하는 내 생각의 파편같이 점선을 긋는 빗방울을 와이퍼가 쓸어준다. 휠체어를 끌고 오려면 지상이 편하지만 그칠 듯 내리는 비를 피하려면 지하로 들어가야 한다. 지하 주차장 차 안에 아버지를 기다리게 한 다음 휠체어를 가지러 엘리베이터 앞에 다가서자 마침 휠체어를 탄 어르신이 내린다. 


어차피 반납할 거니까 따라갔더니 바로 내 차 옆에 주차되어 있었다. 손쉽게 아버지를 태우고 승강기로 가니 비좁아서 이미 만원인 상태로 몇 번씩 놓쳤다. 진료시간이 임박 더 기다릴 수 없었다. 아버지를 일으켜 세우고 한 손에는 지팡이 다른 한 손은 내 옷깃을 붙잡은 아버지를 부축하여 지하 1층으로 올라갔다. 


이번에는 식당 대기석 기다란 의자에 아버지를 앉혀드리고 1층으로 올라갔다. 로비 회전문 근처 딱 한 대 남은 휠체어는 한눈에 봐도 고물이었다. 바퀴가 칙칙하게 감겨 잘 굴러가지 않는다. 출입증을 발급 휠체어를 밀고 지하 1층으로 내려가서 아버지를 태우고 진료실 앞으로 가니 1시간 일찍 왔음에도 불구하고 예약시간이 다 돼간다. 


혈압 측정하고 2층으로 가서 가족사랑 탈의실(복도 대기 공간에 임시 커튼으로 가려진 장소)에서 시간이 소요되는 천천히 벗고 입는 과정을 거친 후 엑스레이 찍고 내려왔다. 전광판에 아버지 이름이 뜨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다. 멍하니 전광판만 바라봤다. 집에서 출발한 지 두 시간 반이 지나서 의사와 대면하였다. 


“어떻게 지내셨어요?”

“아버지가 지난겨울부터 △△△가 불편하십니다. 밤에 소변보는 횟수도”

의사는 한 손을 들어 내 말을 제지하더니 아버지 흉부에 청진기를 댄다. 

그리고 사진을 보더니 “겨울 잘 나셨네.” 혼잣말인 듯 들으라는 듯 말한다. 

“어떻게 올라오세요?” 

의사는 고령인 아버지가 어떤 교통수단을 이용하는지 궁금한 모양이다. 

“승용차로 자식들이 모시고 올라오십니다.”

그리고 의사 손짓에 제지당한 말을 마저 하였다. 


의사는 아버지가 겨우내 불편했던 다리를 살피러 몸을 구부리더니 돌연 보지도 않은 채 자세를 고쳐 앉더니 이 정도는 괜찮다며 처방 화면을 응시한다. 나는 이때다 싶어 말했다.

“선생님, 아버지 약 6개월 처방해 주시면 안 될까요?”

“아주머니가 여기 앉아서 의사하세요.”

돌연 버럭 내지르듯 말하더니 찬바람 일으키며 휑하니 옆방 진료실로 가버렸다.

어안이 벙벙하다.

나는 속으로 말했다.

“당신은 흰 가운만 걸친 아저씨군요.”

곧 다가온 간호사에게 물었더니 처방전은 6개월 나왔다고 한다.


시계를 보니 두 시 반이 훌쩍 지나있었다. 배가 고프다. 뒤늦은 점심을 먹으며 찝찝한 기분이 가시지 않는다. 아무리 대학병원 명의면 뭐 하나? 인격이 덜 갖춰진 그는 뒷모습도 거북목 구부정했다. 보호자인 내가 무슨 상관있다고 난데없이 아주머니 부르나? 나보다 나이도 훨씬 더 많은 연장자가 국가유공자인 점잖으신 아버지를 몰라보다니……


그 의사는 전에 본인 입으로 말했었다. 다음번에는 6개월 처방해 주겠다고. 

아버지가 성한 몸이라면 그런 부탁하지도 않는다. 

대한민국 오지에서 아흔이 넘은 아버지를 모셔오고 내려가시는데 여간 힘드신 게 아니다. 그가 진짜 명의라면, 최소한 예의 바른 인간이라면 이런 말은 할 줄 알아야 한다.

“네, 처방해 드리겠습니다. 혹시 드셔보시고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으시면 다시 오셔야 합니다.” 

그리고 아버지께 고개 정도는 까딱 숙여 보여야 한다.

아주머니라니, 그 말을 한 순간 그 사람은 의사가 아니라 그냥 이상한 아저씨였다.   


        

눈이 부시게 찬란한 봄

하나의 꽃이 피고 지면 기다리는 다음 주자에게 바톤 터치하는 봄은 이어달리기하며 계속해서 꽃을 피운다. 꽃의 영광을 방해하지 않으려 진중하게 숨어있던 새순은 꽃이 진 다음에야 연한 연두색 배경을 꺼내 들기 시작한다. 산봉우리마다 연둣빛 눈썹을 그리며 몽글몽글 봄밤의 꿈이 깨어난다. 


이렇게 예쁜 봄날 뒷좌석에 아버지를 태우고 고향으로 내려간다. 

언덕배기 연분홍 복사꽃 핀 과수원이 드문드문 나타나며 영덕이 가까워지자 아버지는 기분이 상기되어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7번 국도에 올라서자 사파이어 블루 봄 바다는 내 눈가에 어깨에 얹혔던 모든 시름을 일시에 씻어준다. 일주일간의 미션을 완수한 내게 두 팔 벌려 축복해 준다. 됐어, 저 빛을 보았으면 됐어. 내게 푸른 바다는 구원의 빛이다. 푸른 바다는 고향의 품, 그냥 안기면 된다. 


짐가방을 내려놓자마자 호미를 담은 소쿠리를 끼고 들판으로 나갔다. 

향긋한 돌미나리 달래를 캐어 보고자 신바람이 났다. 달래는 봄빛이 스미는 밭둑이나 비탈을 좋아한다. 그렇다고 아무 데나 자라지 않는 까다로운 성미를 지니고 있다. 겨울을 이겨내고 톡 쏘는 알싸한 맛을 지니려면 입지조건이 맞아야 한다. 


어디로 가면 달래를 만날 수가 있을까. 들길에 올라서서 두리번거리다 어느 지점에 시선이 머물렀다. 푸릇푸릇 거친 풀이 돋아난 묵정밭이었다. 그 밭은 어릴 때 토끼풀을 뜯으러 다녔던 곳이다. 골짜기에 개활지처럼 열려있는 너른 밭이었다. 무성하게 돋은 풀들 사이로 달래 몇 뿌리쯤 감춰두지 않았을까. 쑥이라도 뜯을 수 있을 것 같은 확신이 든다.


산딸기 꽃들이 흐드러진 동산을 올라서 비탈길을 돌아서 갔다. 어머나, 내 직감대로 무성하게 돋은 풀들 절반은 달래밭이었다. 여기 한 움큼 저기 한 움큼 초록 달래섬들이 둥둥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에 버금가는 달래 노다지를 발견했다. 줄기도 굵고 뿌리를 파보니 어떤 달래는 여러 해 나이가 들어 머리가 둥근 양파 같았다. 며칠째 내린 비를 흠뻑 머금어 부드러운 스펀지 같은 흙은 호미를 빌리지 않더라도 줄기를 잡고 살살 뽑아내면 그냥 실오라기 뿌리를 다 내주었다. 흙을 툭툭 털어 담으면 그만이었다. 


처음에는 요령을 모르고 뿌리 끝까지 호미를 팠다. 허연 머리에 달린 실뿌리들이 촘촘하게 박힌 지층의 단면을 보면서 그간 지표면에 갇힌 시야의 한계를 느꼈다. 겨우내 얼어 죽지 않고 생명을 품었던 흙의 생태가 신비롭기만 하다. 흙은 매장당해 숨 막히는 감옥이 아니었다. 추위와 시련을 막아주고 지켜주는 따스한 품, 믿을 만한 깊숙한 주머니, 숨어도 안전한 방, 생명을 되돌려주는 창조의 공간이었다. 


왜 죽어서 땅에 묻히는지 알 것 같았다. 묻혀서 잠든 내내 하늘에서는 새로운 생명을 허락하는 심사가 진행된다. 한 사람의 영혼이 어느 별에 안착하여 꿈을 꾸듯 기다렸다가 새 숨결을 불어넣어주는 바람이 불면 육신이 기다리는 고향으로 다시 태어난다. 내가 태어난 내 고향 땅과 하늘 사이 감미로운 봄바람이 분다. 


폐가를 허문 앞동산 비탈에 황매화가 뻗어서 커다란 둥지를 틀었다. 너무나 탐스럽고 어여쁘다. 그 꽃을 몇 송이 꺾어서 아버지 방에 놓아드렸더니 조명등을 밝힌 듯이 환하다. 고향집 처마에는 아직 주인이 귀환하지 않은 제비집이 활기가 감돈다. 수평선 위로 날아오는 제비들 힘찬 날갯짓 소리가 들리는 저녁 별들이 돋는다. 선한 사람의 진실된 사랑만 허락하는 봄 하늘이 투명한 빛을 뿌려준다. 그 빛은 또 다른 고향으로 이어진다. 어떤 봄은 미치도록(美致道綠), 눈물겹도록 아름답다.           



          

푸름이 돋보이는 고향 바다
황매화
산딸기꽃, 이렇게 무리지어 여기 저기 달래섬들이 둥둥.. 달래 노다지를 발견^^
현호색
진실한 공기, 진실한 고향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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