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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연우 Apr 16. 2023

새싹의 용기

한 번 내릴 때마다 초록이 깊어지는 봄비를 우산을 받쳐 통통 튕기는 빗소리를 들으며 호숫길을 돈다. 오늘따라 비를 맞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체육관에서 나온 두 사람은 우산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비에 젖어 걸어가는 모습이고 자신의 의지로 쏜살같이 내리는 빗속으로 러닝 하는 커플도 있다.


어찌 됐건 황사가 실린 찬 비를 적시는 건 건강에 좋지 않으니까 그만 보고 싶은데 저 앞에서 쫄딱 젖어 걸어오는 사람이 또 보인다. 무릎 가까이 내려오는 베이지색 긴 점퍼에 반바지 차림 그 사람은 처음 시야에 들어올 때 여자인 줄 알았다.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데 남자였다. 그는 열 걸음 전방에서 갑자기 뒤돌아서더니 몇 걸음 걷고는 멈춰 서서 방범 카메라를 쳐다본다.


그리고 점점 가까이 다가오더니 스쳐 지나려는데 말을 걸어온다.

"저 휴대폰 좀 빌릴 수 있을까요?"

순간 인상착의를 살펴본다. 미간에는 흰색 동그란 밴드를 붙이고 안경알에 빗방울이 송글송글 맺혀서 물에 빠진 생쥐꼴이다. 무슨 딱한 사정이 있는 거겠지.

휴대폰을 내어준다.


"휴대폰을 잃어버려서 그러는데 cctv를 좀 살펴볼 수 있을까요?"

우리를 내려다보는 방범 카메라에는 연락 가능한 전화번호가 적혀있었다.

이 청년은 그 번호로 통화를 하고 있었다. 들리는 목소리는 다음주 월요일에나 확인 가능하다고 알려준다.

통화하는 동안이라도 비를 피할 수 있게 우산을 씌워주었다. 통화가 끝나고 폰을 되돌려 받고는 가던 길을 재촉했다. 뒤는 안 돌아봤다. 아직도 그 근처에서 두리번거릴 것 같았다.


보통 폰을 잃어버리면 자신의 번호로 먼저 전화를 거는 게 일반적이다. 그 청년은 왜 방범 카메라를 응시하면서 관리처에 문의를 하였던 걸까. 습득한 사람이 찍히더라도 신원을 확인하려면 경찰서로 이관될 텐데... 대로에서 안 보이면 분실된 건데 왜 계속 그 근처를 맴돌면서 비를 맞고 있었던 걸까.  폰을 진짜 잃어버린 건지 알 수가 없다.


온전한 정신이 균열된 그 틈을 비집고 빗물이 스며들면 어떤 흥분과 파동이 강화되어 이상행동이 나타나는 건 아닐까. 내가 중학생이던 어느 여름철 이른 아침 밤새 내린 빗물을 처마 붉은 고무통이 철철 흘러넘치도록 담아내고 있었다. 아침밥을 지으러 제일 먼저 일어난 엄마가 갑자기 밖에서 급박한 소리를 질렀다.  엄마는 아버지를 부르고 있었다. 잠을 자던 우리 모두 깜짝 놀라서 밖으로 나가보았다.


희한한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옷을 홀딱 벗은 어떤 여자가 고무통이 받아놓은 빗물에 목욕하고 있었다. 미친 여자였다. 실실 웃으면서 혼자 지껄이면서 기분 좋아하는 표정이었다. 굶주려서 도롯가를 걸어가던 그 여자의 눈에 우리 집 빗물통이 목욕통으로 보였던 것이리라. 세상이 고요히 잠들어 막 비 그친 새벽 여자는 씻고 싶었던 모양이다.


귀한 봄비를 맞은 우리 집 텃밭에 기다리던 새싹이 올라왔다. 이 주 전 뿌려놓은 열무와 얼갈이 씨앗이 싹을 내밀었다. 뿌린 그대로 줄을 맞춰서 '영차 영차' 땅을 밀쳐내는 함성이 들려왔다. 흙이 일자로 갈라지면서 빼꼼히 얼굴을 내미는 모습은 생명의 신비로움 그 자체였다. 물을 주던 나도 영차, 영차, 응원하였다. 땅 뚜껑이 아무리 무겁게 내리눌러도 새싹의 용기 앞에 무력해진다.



봄비를 맞는 사람의 몸에도 새싹이 올라오면 얼마나 좋을까. 동그란 빗방울을 매단 머리카락 사이로 어여쁜 꽃 한 송이 피어나고 겨우내 움츠린 어깨 위로 연둣빛 새순이 돋아나고 다리에서 수액을 빨아올린 허리 양 옆으로 풀피리 부는 버드나무 부드러운 나뭇가지 쑥 내밀면 좋겠다. 한 그루 싱싱한 나무가 되어 다시 젊어진다면 늦가을 낙엽을 버리더라도 참을 수 있을 것 같다.


그 새싹이 갈수록 굳어지는 마음 한 칸 차지한 채 말랑말랑 태동된다면 나이듦이 무슨 상관있으랴. 오히려 유순해지고 지혜로운 개체로 거듭나서 생명의 불꽃은 더 활활 타오르겠지. 황폐한 들판에 나뒹구는 돌멩이를 거두고 잡초를 뽑아서 씨앗을 뿌린 다음 물을 대면 청명한 자연의 빛과 바람이 알곡을 선물해 준다. 갈라진 허덕임을 민감하게 알아채고 수로에 물을 대듯 신선한 에너지를 공급하면 적어도 자신이 부패되는 망상을 방부 처리하는 효능을 거두리라.


어느새 비가 그치고 샛바람이 분다. 우산을 접는다. 연두색 나뭇잎이 털어내는 미세한 물 분자를 시원하게 맞는다. 수면에 물풀을 뜯어 얼기설기 지은  둥지 위에 알을 품는 어미새가 앉아있다. 먼저 자란 새끼는 어미 보란 듯이 재롱을 부리면서 물속으로 쏙 잠수를 탄다. 시선을 산기슭으로 돌리는데 보라색 꽃들이 무리 지어 피어있다. 익숙한 생김새 어머, 저 꽃은? 각시붓꽃이다. 몇 년 동안 못 본 많이 보고 싶었던 꽃들이 닿을 수 없는 언덕에 아스라이 피어있다. 갓 피어난 꽃들은 자줏빛이고 이미 피어난 꽃들은 보랏빛. 가까이 다가가서 볼 순 없어도 자태가 고혹적이다.


각시붓꽃을 처음 보았던 그 봄이 생각난다. 그 꽃들도 G호수를 바라보는 높다란 산기슭에 자리 잡았다. 처음 보는 꽃 생김새가 물가에 피는 붓꽃과 흡사한데 키만 작았다. 물에 빠져 아픈 사연을 간직한 영령이 울면서 산으로 피신한 모습이었다. 산길 옆에 조붓하게 피는 붓꽃이 너무 기이하여 작은 참나무 옆에 그 꽃이 사는 주소를 눈여겨보아 두었었다. 그다음 해에도 때를 맞추어 찾아갔더니 일주일 일찍 찾아온 봄이 꽃을 시들게 하고 있었다. 그리고 몇 해 지나면서 꽃은 자취를 감추었다. 누가 뿌리를 뽑아간 것 같았다.


마음속에 그립던 각시붓꽃을 S호수 산기슭에서 만나다니... 각시붓꽃은 물기운을 먹고 자라는 꽃이다. 그 모습이 나랑 닮았다. 푸른 바다를 떠나 호수 근처에 사는 내 모습도 그러하다. 우연히 내 눈에 띈 것도 꽃과의 각별한 인연이다. 봄비가 다시 맺어준 각시붓꽃과의 인연, 이 또한 알 수 없는 허덕임 사이로 물길을 댄 새싹 아닐런가.





2017년 G호수 산기슭에서 만난 각시붓꽃

 

어제 S호수 산기슭에 핀 각시붓꽃, 멀리서 줌인 흐릿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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