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남연우 Feb 13. 2024

어데쯤 오노?

명절 귀향길 횡성을 지나고 평창쯤 가다 보면 어김없이 고향에서 전화가 걸려온다.

“어데쯤 오노?”

어서 도착하길 기다리는 아버지 음성이다.

7번 국도를 타고 삼척을 지나노라면 또다시 걸려온다.

“어데쯤 오노?”

“삼척 왔어요.”

“거의 다 왔구나, 조심히 오너라.”


지난해부터 이 음성을 듣지 못한 것 같다.

이번 설 명절은 원주에서 두 시간 정체되어 지루하였다.

이럴 때 어디쯤 오는지 물어보는 맑은 아버지 음성을 듣는다면 절로 힘이 날 텐데 들을 수가 없어 서운하였다. 청력이 약해진 아버지와 통화하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몇 해 전부터 나는 실제 이런 일이 생기면 어쩌나 근심하였었다.

언젠가는 못 듣게 될 음성을 생각하며 울컥하였었다.

길을 나설 때 가는 사람과 기다리는 사람의 심정은 많이 다르다.

길을 나선 이는 풍경에 한눈을 팔면서 휴게소에 들러 커피를 마시며 가는 여정에 느긋한 반면 기다리는 이는 언제나 도착할 순간을 설레며 조바심이 생긴다. 기다리는 부모는 자식이 마당에 들어서며 “엄마~” 불러주는 그 순간을 수십 번 되뇌며 조금씩 일렁이는 마음을 다잡을 것이다.


못내 서운한 마음을 음악으로 달래며 길을 재촉한다.

트렁크에는 설 명절 음식이 그득하다.

사과 배를 간 갖은양념으로 갈비를 재고 백김치를 한 통 가득 담그고 고소한 부침개를 구웠다.

과일 상자와 짐가방이 가득 찼다. 부모님께 드리는 따듯한 정성을 함께 실었다. 명절 음식을 준비하면서 알게 되었다. 비로소 어른이 되었음을.


부모님이 오래도록 건강하신 모습으로 곁에 계셔주었기에 언제나 받아먹었었다. 이제 힘 떨어진 부모님의 명절을 내가 차려드릴 수 있게 되었다. 지난 추석 맹세한 대로 시댁에는 남편 혼자 보냈다.

친정에 남아서 계란 지단을 부치고 돌김을 굽고 떡국, 탕국을 끓였다.

잡채를 만들고 양념 갈비를 굽고 전을 데우고 백김치를 꺼내 담고 찐 생선을 보기 좋게 차렸다.

육식을 안 좋아해서 갈비는 이번에 처음 재웠는데 진짜 살살 녹을 만큼 맛깔나다.

맛있게 잘 드시는 부모님 모습을 뵈니 뿌듯하다.


상을 물리고 나서 아버지께 한복을 입혀드렸다.

옥색 저고리에 붉은 호박 보석이 위아래 두 개 달린 페르시안 블루 마고자를 입혀드렸다.

이 마고자 한복은 너무나 오래되었는데 언제나 새것같이 신비롭다. 나의 유년기 기억 이전부터 아버지는 명절이 되면 언제나 이 마고자 한복을 입고 계셨다. 드라이클리닝이라곤 없던 그 옛날부터 쭈욱 입어왔으니 어디 한 군데 기름기 많은 명절 음식이 얼룩져야 마땅함에도 얼룩이라곤 안 보이는 신비한 옷이다.


페르시안 블루보다는 투명한 푸름이 넘실대는 이 비단 마고자는 푸른 물이 뚝뚝 떨어지는 유월의 젊은 바다를 떠다 놓았다. 이 푸른 물로 세수하면 거친 피부가 탱글탱글 물기가 차오르면서 순식간에 주름이 사라지는 젊어지는 샘물이다. 이 마고자를 입은 아버지는 언제나 젊다.


거의 한 세기를 살아오신 아버지는 새해 덕담을 이렇게 말씀하셨다.

“감사할 줄 알고, 일 년 내내 큰소리 없이 시종일관 마음먹은 그대로 일 년을 잘 지내면, 만사형통하는 바이다. 참고, 참고, 또 참고, 마음으로 참고, 행동으로 참고, 세 번 참으면 만사형통하는 거니까 참을 수 있는 그 마음을 지극히 하여라.”


아버지 옆에서 몇 마디 거드는 엄마에게 덕담을 부탁드렸다.

“일 년 365일 항상 즐겁게 화목하게 부드럽게 애들한테도 항상 나직나직하게 소리치지 말고 그 가정 이룩하고 살아가거라.”

엄마는 “일 년 365일” 두 번 거듭 말하여서 웃음을 자아냈다.


텅 빈 들녘 위로 새봄이 어서 당도하길 보채는 작은 새들이 물이 고인 논바닥에 내려앉더니 이내 전선 위로 줄행랑친다. 한결 푸근해진 공기의 흐름을 리드미컬 타고 있다. 청보리밭 위로 재잘대는 종달새도 저런 마음 아닐까.


어릿광대 프릴을 단 광대풀꽃이 진분홍 립스틱 바른 입술을 삐죽이 내민 들길을 지나 바다로 나가보았다. 바다부터 오는 봄은 연갈색 부드러운 톳을 키우며 겨울 바다를 톱질하듯 밀어내고 있었다. 돌숲 무성한 한재 바닷가 바위들이 오늘따라 더 무성하게 솟구쳤다. 그 뾰족하게 모난 바위들을 보듬어주는 파도는 잠잠하다. 인적이라곤 없는 2월의 바다는, 누굴 기다리는 걸까.


‘바닷가에 서서 생각나는 사람이 당신이 사랑하는 그 사람이다.’

종일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는 바다는 그래서 늙지 않는다.

때로는 투정 부리고 노할 때도 있지만 그리움이 깊어지면 너무나 매력적인 빛깔로 푸르르다.

아버지가 입었던 마고자 빛깔 바다는 언제나 허기진 나의 부름에 선뜻 대답해 주겠지.

한 며칠 좀 힘들면 어떠랴.

마음으로 참고 행동으로 참고 사랑으로 참으면 만사형통인 것을.

이 길 끝에서 누군가가 부르고 있다.

“어데쯤 오노?”          




          

푸른 마고자를 입으면 언제나 젊은 아버지
톳을 키우며 새봄으로 설레는 바다
한재 바닷가




















매거진의 이전글 어떤 만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