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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연우 Oct 07. 2020

인공지능(AI), 신의 한 수

*2016년 3월 작성한 글입니다.



집단지성을 프로그래밍하여 훈련하고 학습한 구글의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가 연이틀 이세돌 9단을 꺾는 이변이 일어났다. 5000년에 걸쳐 일군 인간 바둑을 2살 인공지능이 뛰어넘었다는 평가를 신문 헤드라인은 큼지막이 소개하였다. 인류의 지능을 대표하는 그가 간절히 이겨주기를 모두가 숨죽이며 지켜보았건만, 무거운 사명을 혼자 짊어진 그의 어깨가 무척 무거워 보인다.     


인공지능은 이미 인간 의사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질병을 진단하고 추상화부터 펀드매니저까지 손대는 곳마다 놀라운 성과를 이룩해나가고 있다. 무인자동차 시험 주행이 계속해서 가동되고 있고, 고성능 카메라를 장착하여 전후방 속도와 장애물을 고려하면서 기계는 자동차를 안전하게 제어하게 될 것이다. 생각해보라. 백미러로 바라본 뒤차의 운전석이 텅 비어있는 모습을, 그리고 차선 변경으로 빠르게 내가 타고 있는 차를 지나 사라지는 모습을.     


유령이 타고 있는 건 아닌지 섬뜩한 기분이 들것이다.

이런 일들이 곧 현실화, 일상화된다고 한다. 씁쓸한 기분과 두려움은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느끼게 되는 막연한 불안감 때문이다. 미래학자 커즈와일은 인공지능이 인간을 뛰어넘는 순간을 ‘특이점’으로 정의하였다. 인공지능 스스로 자기 자신보다 더 똑똑한 인공지능을 만들 수 있게 되면 초지능적 존재가 출현하게 된다는데 그 시점이 대략 2045년으로 내다본다고 한다. 내 살아생전에 그런 무서운 세상을 마주하게 될까 봐 소름 끼친다.     


사방이 유리거울로 번쩍이는 시공간에 들어선 인류가 허영이 비치는 환상 속으로 위험한 여행을 떠나게 되는 건 아닐까. 순수하고 정직한 자연의 품이 오래전부터 싫증 난 이들을 위하여 개발해놓은 폭력 게임에 몰두하여 가상현실을 현실과 착각하는 그들이라면 더 나은 인공지능의 출현을 어쩌면 반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조립된 관절 마디로 스스로 걷고 움직이는 로봇의 머리에 인공지능을 탑재하는 순간 기계 인간의 생일이 시작되는 거다. 이 또한 멀지 않은 이야기가 될 것이다. 만약 스스로 판단하는 기계 인간들이 인간의 명령을 거부하고 독자적으로 행동을 개시하면 어떻게 되는 걸까.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기계와 인간의 싸움은 영화 세트장이 아닌 지구촌 곳곳에서 실랑이는 애교이고 신개념의 전쟁을 선포할 수도 있다.  뜨거운 피가 솟구치는 이성과 감성의 인간에게도 나쁜 사람과 착한 사람이 있듯이 앞으로는 착한 로봇과 악한 로봇을 구별하는 방법을 우리 아이들이 배우게 될 것이다. 디지털 키드 이전 1900년대 출생자들은 구세대로 철저히 낙인찍힌 채 인공지능이 나돌아 다니지 않는 청정구역으로 찾아다니거나 불과 몇십 년 전 그 시절, 바로 지금을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생각할수록 숨구멍을 금속 스패너로 조여 오는 듯 갑갑함을 느끼게 된다. 기업들은 생산비 절감을 위하여 발 빠르게 인건비를 대체할 자동화 라인을 구축해가고 있다. 기계에게 일자리를 뺏긴 사람들은 거리로 내몰리고 양질의 일자리를 찾지 못한 구직자들의 입지가 급속히 흔들리게 된다. 아직도 교육 일선에선 암기식 주입교육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큰일이다. 기계가 도저히 넘볼 수 없는 인간만의 고유한 영역은 무엇일까. 참된 인간 양성 교육은 그것에 모든 초점과 역량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시 쓰기는 소중한 권리이자 자부심이다.     


거대한 언어의 바다에서 표류하는 낱말을 그물로 걷어 올려 내 생애를 통틀어 축적된 이성과 감성의 기억들을 원심분리기에서 채취하여 최적의 어휘들로 하여금 질서 정연하게 시상을 전개하여 완성하는 한 편의 시! 어떤 인공지능도 처리할 수 없는 인간의 고유영역 아닐까. 


물론 흉내는 낼 것이다. 표준국어 대사전에는 50여만 개의 단어가 수록되어 있다고 한다. 먼저, 주제에 해당하는 키워드를 검색하여 관련되는 인간들의 경험이나 이야기를 집약하고 중복되는 부분들을 제거하여 시의 형식 안에서 완성품을 만들어내는 일은 어렵지 않다.      


과연 그 안에 독창적인 글맛과 행간의 감성을 숨겨둘 수 있을까. 온 우주와 호흡하며 키워온 한 인간의 내력은 경우의 수로 한정되지 않는 무한대이다. 올곧은 감성의 숲에서 자라난 예술은 그래서 감동적이다. 기계가 좋아하는 숫자로 보상받는 영역이 아니기에 더 다행스러운 외로운 섬, 그 섬에 인공지능이 상륙할 날은 요원해 보인다.   

  

인간의 직관력이 숫자의 정확한 계산에 의한 투시력에 밀릴지라도 신의 한 수는 역시 인간 편에 서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고철 덩어리에 불과한 기계, 신은 기계를 만들지 않았으니까.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인간의 교만한 술책이자 위험한 장난감이 금기의 선을 넘어가지 않도록 잘 감시하고 관리해야 하는 숙제를 떠안게 되었다.    

 

이제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고도의 지능은 지구라는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 ‘별들의 운행 코드’를 읽어내려고 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뛰어난 외계 문명과의 충돌, 스타워즈는 예정된 각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인간을 제친 알파고가 신선들의 바둑돌에 흥미를 가지는 순간 지구별의 실존은 이미 운명의 결판을 기다리게 될 것이다. 


스페이스 X 창업주 머스크는 2030년 안에 8만여 명이 거주할 수 있는 화성 식민지를 만들겠다는 꿈을 꾸고 있다. 천체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인류가 멸종을 피하려면 100년 이내 다른 행성으로 이주해야 한다"라고 경고했다. 지난 2013년 네덜란드 마스원이라는 단체가 화성 이주민을 모집하자 돌아올 길 없는 편도 티켓임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에서 20만 명 넘는 사람이 신청했다고 한다.


그들은 무엇을 담보로 전 재산을 내걸고 위험하기 짝이 없는 저 너머로 이 한 몸 실을 각오를 하였을까. 수면 캡슐에 들어가서 우주잠을 자고 나면 영생하는 새로운 세상이 열리려나. 여기서 죽으나 가서 죽으나 매한가지 경이로운 우주구경이나 실컷 하고 죽자는 절박함을 얘기하기에는 아직 세상은 낙관론자의 편이다. 겉으로 보이는 단순함이 복잡한 신경망의 지배를 받듯이 아름다운 세상이 남아있는 한 선한 초월적 의지는 어디서나 건재하다. 우리는 그것을 자연이라 부르며 자연의 순리에 따르는 자연인이고 싶다, 언제까지나.     


     

ⓒ pixabay. 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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