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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연우 Oct 10. 2020

서라벌을 거닐다


석양빛에 물든 다보탑 흰 살결에 신라 여인의 홍조 띤 미소가 떠올랐다. 석가탑에서는 신라 화랑의 드높은 기상과 반듯하고 지적인 이마선 그리고 어깨선을 거느린 실루엣을 본다. 그 옛날 석공이 불국토에 가닿으려는 염원을 되새기며 돌을 쪼개고 다듬어서 저 하늘에 우뚝 세웠다. 그의 지극정성이 천지를 감응시킨 그 증거가 천 년 세월로 보증하고 있다. 새빨간 단풍빛이 막 스며든 불국사는 갈 때마다 이전에 못 본 것을 보게끔 새로운 눈을 열어준다.   

  

대릉원 돌담길을 따라서 황리단길 골목을 더듬어 들어간 으슥한 밥집에서 한 시간을 기다린 후에야 늦은 저녁을 먹는다. 어둑한 불빛에 주막집이 연상되는 그곳. 고만고만한 방이 딸린 한옥 칸칸마다 사람들이 빼곡하다. 마당 평상에 걸터앉아 한 끼 음식을 기다리는 간절함으로 치자면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게 없다.     


예약해둔 한옥으로 방향 지시등을 켠다. 저녁을 먹고서 입실할 거라고 미리 알려주었더니 주인장 왈 “오늘 예약하셨습니까?” 황당한 소리가 들려왔다. 영 찜찜하였다. 다시 전화를 걸어 무슨 착오가 생겼냐고 물었더니 내가 예약한 방이 중복되어 다른 사람들이 먼저 들어와 있다고 하였다. 그보다 더 넓은 방을 내어주겠다는 말이 미덥지 않다. 전액 선불, 묵는 날짜까지 찍어 입금해주었건만.     


작은 마을을 지나 농로로 접어든 밤길 헤드라이트가 밝히는 외길은 양쪽 사면이 모두 깎여나간 낭떠러지 같다. 아이들은 울상이 되어 이런 데를 예약한 엄마를 원망한다. 까딱 잘못하다간 논두렁에 처박힐 판 살얼음판을 걷듯이 지나간다. 칠흑을 묻힌 코스모스가 싱글벙글 환하게 반겨주는 펜션에 도착했다. 인적이 없다. 산바람에 오들오들 떨고 있는데 잠시 후 수염을 기른 주인장이 나타나서 쇳대를 건네준다.     


방바닥은 따끈히 데워져 있고, 땅속에 그대로 뿌리내린 듯 둥근 소나무 기둥이 큰방 한가운데 두 개 박힌 공간은 안정감을 주었다. 내벽은 황토로 꼼꼼히 채워져 있고, 뒤뜰을 내다볼 수 있는 한지를 바른 전통 덧문이 두 개 유리창과 이중으로 달려있었다. 오래된 자개 반닫이 위로는 황톳빛 이불이 시렁 위에 올려져 있다. 바보상자 TV는 없다. 방바닥에 눕자 노곤한 피로감이 말랑말랑해진다.   

  

눈을 뜨니 새벽이다. 이토록 잘 잤다니 신기하다. 나라는 사람은 낯선 곳으로 여행을 가면 99.99% 잠을 설친다. 아예 안 온다. 전날 피로를 못 푼 컨디션은 다크서클을 동반한 강행군을 의미한다. 그래서 늘 힘들었다. 기적적으로 예외를 허용한 이곳 황토의 힘일까. 내게 단잠을 선물해준 이 황토방에 정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처음 듣는 새소리에 이끌려 바깥으로 나가보았다. 나지막한 산자락에 안긴 들판 벼 이삭들이 굼뜬 빛깔로 추수를 기다리고, 탱글탱글 산소 탱크에 들어온 듯한 최상급 공기를 마셔가며 발걸음을 연못이 있는 황톳집 뒤편으로 옮겼다.     


이파리 처진 연잎 줄기가 아름다웠던 여름날을 갈색 책갈피에 끼운 채 떠나려 한다. 어디선가 송아지만 한 검둥개가 느린 걸음으로 다가온다. 내 발치에 코를 갖다 대며 킁킁거리더니 가버리는데 눈곱이 말라붙은 두 눈이 그렇게 온순할 수 없다. 선뜻 손을 내밀어 쓰다듬어 주지 못한 내 손을 탓하던 그때 위쪽에서 비질하던 소리가 멈추고 “차 한 잔 하시겠습니까?” 물어온다.     


다실로 가는 길에 난생처음 보는 녹차 꽃을 만났고 태양의 딸 금잔화, 보라색이 진한 구절초를 만났다. 예쁜 길을 따라 다실로 들어서자 주인은 벌써 찻물을 끓이고 있었다. 다실 벽면에는 항아리, 막사발, 다기들이 벽을 따라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었다. 그는 본업이 도예가였다. 이곳 경주에서 나는 흙을 직접 채취해서 쓰기 때문에 도자기 피부가 거칠거칠하다.     


차를 마실 때 그는 친절하게도 아침에 갓 딴 녹차 꽃을 한 송이씩 넣어주었다. 하얀 꽃잎이 찻물과 만나자 향그런 내음이 피어오른다. 감미롭다. 수염 탓에 나이를 종잡을 수 없는 그는 무서운 중학생 딸이 있다고 한다. 나는 착오를 해주신 덕분에 너무 잘 잤다고 아침 인사를 하였다. 차를 마시면서 그는 땡전 한 푼 없이 한옥을 직접 짓게 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손님도 까다롭게 받는 편이어서 이곳 분위기를 해치는 사람이 오면 환불을 해주어 내보낸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실수로 내가 다시 전화를 했을 때 긴장했다고 한다. 역시 첫인상 또한 만만치 않다며, 센 여자를 쥐락펴락 웃기기까지 한다. 차 대접을 받고 일어설 때 보니까 창가에 미끈한 망원경이 남서향 하늘을 조망하고 있었다. 지난여름에 본 화성 대접근에 대해 당장 말하고 싶었지만 꾹꾹 참았다. 별 이야기까지 해버리면 그의 궤도 속으로 이끌려 내 길을 헤맬 것이 분명하다.     


내가 좋아하는 한옥, 도자기, 별까지 3종 세트를 모두 현실로 구현하며 사는 사람 처음 본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소비를 미덕으로 알고 행복과 적당히 타협하면서 남이 만들어놓은 세계에 자신의 의지를 구부리며 살아가는 반면 그는 자신이 있어야 할 곳에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순하디 순한 검둥개를 데리고 살아간다. 자신만의 별천지를 구축한 그의 고집과 세계관과 우주관에 박수를 보내며 남산으로 향한다.   

  

소나무 숲이 우거진 산 아래부터 속세의 기운이 차단되어 신성하다. 조금 올라가자 바로 머리가 없는 불상이 나타났다. 만약 나에게 이목구비가 사라진다면? 또렷한 감각으로 얻어지는 지나친 분별을 경계하라는 한 말씀이 다가왔다. 또 다른 메시지는 부처의 상에 의존하지 말라는 것이다. 마음 바깥에 있는 불상에 빌어 봤자 하소연에 불과하다. 복은 나 스스로 실천해서 불러들이는 것. 진정한 부처는 마음속 꺼지지 않는 금강석 위에 앉아 계신다.  

   

경주 남산은 흙산에 크고 작은 바위가 듬성듬성 섞여 있어 지루할 틈 없는 산이다. 인내심을 가지고 오르노라면 적재적소 탁 트인 서라벌 들판이 무르익은 황금색 불국토의 모습을 보여준다. 햇볕 쬐는 자연 입석(立石)에는 체온이 흐르듯 따스한 부처님이 숨어 웃고 계신다. 그래서 더 오를 만하다. 어떤 곳은 아찔한 바위 절벽에 불상이 조각되어 있다.     


어떻게 저런 곳에 매달려 조각을 하였을까. 안전을 담보하는 장비도 없던 그 시절 목숨 걸고 절박한 심정으로 새겼을 부처님 모습! 천년 고도 신라는 부처님의 율법이 다스리는 도덕국가였기에 오래도록 번성하지 않았을까.     

금오봉으로 향하는 능선에서 ‘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이 급경사를 이루는 바위 절벽에 앉아계셨다. 투명한 가을 햇살이 불상을 더 성스럽게 비춰주었다. 문화재 해설 안내판을 읽어보던 중 내 눈을 의심케 하는 글자가 들어있었다.  

   

‘입체감 없는 신체표현, 거칠고 치졸한 옷주름 선 등으로 보아 9세기 불상양식을 반영하는 거대 불상이다.’ 해설 도입부에는 ‘거대한 바위벽에 6m 높이로 새긴 이 불상은 남산에서 2번째로 큰 불상이다.’라고 소개돼 있다.     

‘치졸하다’의 사전적 정의는 ‘유치하고 졸렬하다’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우리 문화재를 졸작 취급하고 있는 것이다. 언제 끊어질 줄 모르는 동아줄에 매달려서 불상의 옷주름을 섬세하고 우아하게 표현할 만큼 한가로운 시공간이 아니지 않은가. 석공은 식은땀을 흘리면서 불상의 얼굴 표현에 심혈을 기울였으리라.     


선조의 피땀 어린 예술작품을 옷주름을 트집 잡아 생채기를 내서야 되겠는가. 9세기 작품의 특징을 치졸한 옷주름에서 발견한 그는 얼마나 치졸한 사람인가. 영어 안내문이 없는 것이 천만다행이다. 우리 문화재를 아끼고 보존해야 할 후손들의 의식 수준이 이럴진대 21세기 우리의 문명이란 보잘것없는 기계문명들이다.     


문제점을 알고 있음에도 수수방관하는 것은 수동적 승인이다. 경주시청 홈페이지에 민원신청을 하였다. 그러자 국립공원관리공단에 접수되었고, 답변을 받았다. ‘꾸미지 않은 소박한 멋을 의미하는 치졸미의 뜻으로 사용하였으나, 안내판의 내용으로 보면 충분히 오해의 여지가 있어 해당부분은 조속한 시일 내에 수정하겠다.’라는 답변이다. 참 다행이다.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완만한 구릉 위에 자리 잡은 월성은 이제 한창 발굴조사를 벌이고 있었다. 천 년 훨씬 이전 어마어마하고 놀라운 문명이 서라벌 벌판에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먹고살기 바빴던 후손들은 그 터의 쓰임새도 모른 채 선조들의 DNA가 고스란히 담긴 퇴적층 위에 대충 집을 짓고 살아왔다. 토양 표피층에 흩어진 유물을 주워도 이 정도인데 심층부에는 얼마나 찬란한 꽃씨들이 숨을 죽이며 기다리고 있을까. 흙이 묻은 꽃씨들을 파내고 털어내어 빛을 보게 하는 것이 먹고살 만해진 우리들 역할이다. 이 가을 경주는 고색창연했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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