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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연우 Mar 21. 2024

봄바람에 흔들리는 그것

봄바람이 거칠게 분다.

꽃을 데려오는 봄바람은 거칠다.

저 멀리 남쪽에서 정결한 꽃길이 열리도록 싸리비로 빗질하나 보다.

뺨에 맞부딪는 얼얼한 바람에 마음까지 옹송그리게 된다.

라디오에선 겨울을 떠나보내는 마지막 '스노우맨(snowman)' 노래가 흘러나온다.


안녕, 스노우맨.

잘 가!

다정한 태양 아래 부풀어 오른 꽃들과 너는 어울리지 않아.

꽃가지를 네 머리 위에 찌르는 순간 너는 녹고 말 테니까.

며칠 전 강원도에는 봄눈이 엄청 쌓였다지?

일찍 핀 매화꽃을 네 얼굴에 꽂아주었더라면 너는 어떤 표정을 지었을지 궁금해.

진짜 행복했을 거야.

마지막 사라지는 외로운 길에 향기로운 꽃의 배웅을 받고서 빙그레 웃음을 지었겠지.


순백의 눈꽃으로 만들어진 너도 꽃이란 걸 잊지 마.

그래서 지상의 꽃들이 피어나기 전 성급히 사라지는 거잖아.

봄눈은 참 야속해.

소복소복 은백의 눈세상을 만들어 영원할 것 같다가도 하룻밤 자고 나면 흔적 없이 사라지니까.

새끼손가락에 건 맹세 따윈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질퍽한 눈물만 남기는 눈사람의 하룻밤 사랑을 누가 믿을 수 있을까.


어쩌면 거칠게 불어오는 봄바람은 눈사람의 슬픈 눈물을 달래기 위함 아닐까.

다시 돌아오는 한 해 끝자락 눈사람은 씩씩하게 우리들 앞으로 짜잔 나타나겠지.

잠시 사라졌다가도 나타나는 눈사람을 내 마음속에 넣어두기로 했어.

겨울이 빚어내는 고 순수한 사람 하나쯤 간직한대도 누가 뭐라고 하겠어.

눈사람이 녹고서 허전한 빈자리 봄꽃들이 채워줄 테니 서러워하지 않을래.


봄바람에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쓰다듬고서 조금씩 일렁이는 흔들림에 대해 생각해.

수평선을 긋는 물결의 파고가 점점 드높아지고 있어.

차 한 잔을 마시며 진정되길 기다려보는데 창 밖 벚나무도 몹시 흔들리고 있어.

자세히 보니 앙상한 가지마다 도톰하게 솟아오른 꽃눈들이 보여.

어머, 벚꽃들이 피려고 저리 몸살을 겪나 봐.


볼품없이 거무튀튀한 저 나무가 일주일 후 화려한 변신을 할 거라고는 지금으로선 상상이 안 돼.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그건 기적이야.

철사줄로 친친 감은 뼈대에 밀키핑크 드레스를 입힌 여왕이 탄생하는 거와 같아.

해마다 도래하는 기적을 앞둔 나무는 열병을 앓고 있는 거지.

발치에서 머리끝까지 수액을 끌어당긴 나무는 밤낮으로 미친 듯이 리허설 준비에 여념 없겠지.

그렇게 생명의 꽃을 피워 올린 나무 앞에서 평정심이 다 무슨 소용이야.


흔들리면 흔들리는 대로 흔들리다 보면 어느 정점에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올 테지.

궁극의 바다 수평선도 해안선에 끊임없이 철썩이는 파도에 의해 유지되는 거잖아.

창가에 꽃잎들이 어른거리는 봄날 문 딱 걸어 잠그고 정진하는 수행승을 '돌부처'라고 부르지.

아무도 다가설 수 없는 절벽에 아로새긴 돌부처와 다름없으니..

산문을 걸어 나와 꽃들에 취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인간의 마음인 것을..

아름다움을 향한 마음의 통로 그것만은 걸어 잠그지 말기를..


마음속에 한 컵 물이 있든 한 되 물이 있든 그것은 수평을 유지해.

때론 폭포수가 흘러서 넘치는 날도 있지만 말이야.

그 깊은 곳에 누가 돌멩이를 던지면 파문이 일어.

돌멩이를 삼킨 소란은 한 며칠 가겠지만 잠잠해지지.

문제는 돌멩이야.

썩어 없어지지도 않고 언제나 아프게 콕콕 쑤시지.

어떤 일이 계기가 되어 떠오를 때면 또 심란해져.


묵묵히 가라앉혀 모난 돌을 둥글게 둥글게 감싸 안으면 빛나는 진주가 되지 않을까.

생살을 아프게 파고든 돌멩이가 진주가 될 날을 꿈꾸면서,

오늘도 수평선은 봄 햇살을 얹고서 눈이 부시게 반짝거려.

해저에 가라앉은 눈사람은 깊은 잠을 서둘러 잘 테고.

다시 깨어나는 봄과 이제 잠드는 눈사람!

봄바람이 불어오고 있어.

조금은 부드럽게 저 언덕 너머로..






봄맞이 실내정원을 새로이 단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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