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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불

_국민 저항권

by 남연우


도랑물이 졸졸 흐르는 들길 옆에 바위 두 개가 나란히 놓여있었다.

지나가던 사람이 앉을 정도로 펑퍼짐하게 생긴 두 개의 바위는 동그랗게 홈이 파인 아랫부분을 제외하면 사이좋게 붙어있었다. 들판에서 일을 하던 농부들이 새참을 먹을 때면 이 바위에 앉아서 들바람을 쐬고 시원한 막걸리를 마시곤 했다. 농부들은 이 바위를 '너럭바위'라고 부르며 참 좋아했다.


너럭바위는 비 오는 날에 우산이 되어주었다.

논두렁에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개구리와 메뚜기들이 장대비를 피해 잠시 쉬어가는 은신처이기도 했다.

정말 고마운 바위였다.

동그랗게 홈이 파인 아랫부분 가장 안쪽에는 작은 불씨가 살고 있었다.

빗물에도 꺼지지 않고 북풍에도 날아가지 않는 소중한 불씨였다.


이 불씨가 일 년에 단 한 번 외출하는 날이 있다.

정월 대보름 보름달이 두둥실 동쪽 하늘에서 떠오르기 시작하면 마을 아이들은 이 불씨를 꺼내와서 짚불을 지폈다. 깡통에 담아서 둥그렇게 돌리며 놀 때 흐르는 달빛을 타고 불티가 날리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어른들은 그 불을 받아서 논두렁에 놓았다.

이렇게 하면 들쥐들을 쫓으면서 해충이 타고 액운이 타서 일 년 내내 병이 없고 재앙을 막아준다고 믿었다.


바위 아래 숨어 사느라 갑갑하던 불씨는 이때다 싶어 기세등등하였다.

작은 불꽃이 지푸라기를 먹고 이내 큰 불꽃이 되었다.

서로 한 몸이 된 불꽃은 어우렁더우렁 달빛도 먹어치울 기세로 하늘 높이 타올랐다.

너른 평야를 밤새 먹어치우고도 모자랄 식성은 아니었다.

무장승같이 시퍼런 납빛 바다에 가로막히고 들판 양쪽으로 흐르는 시냇물이 불꽃을 호시탐탐 감시하였다.

밤새 놀다가 제풀에 꺾이고 말 불꽃이었다.


때로는 여러 번 불려 다니기도 했다.

경칩이 될 때까지 마을 이장네 논두렁에 불려 다니고 윗마을 밭두렁 누런 잡풀을 태우며 작은 불을 지폈다.

할 일을 다 마친 불씨는 바위 위에 소곤소곤 떨어지는 봄비를 사랑했다.

밤을 새워 고요하게 속삭이는 빗물을 맞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했다.

만나서는 안 될 봄비를 멀찍이 떨어져서 지켜볼 뿐이었다.

손을 뻗어 내밀어서도 안되었다.

그렇게 했다가는 차디찬 잿더미로 사그라들 운명이었다.


경칩을 며칠 앞둔 3.1절 새벽 먼 데서 다급하게 호출이 왔다.

바위 바로 앞 논배미 주인집 수도권 사는 딸에게서 급히 상경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불씨는 자신의 소중한 분신을 떼어서 첫차를 타고 N의 집에 도착하였다.

N은 비장한 얼굴로 모자를 푹 눌러쓰고는 나를 작은 가방 안에 넣었다.

무슨 중요한 할 일이 있는 것 같은데 어디로 가는지 딱히 목적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N은 집 앞 버스 정거장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N과 비슷하게 간편복을 입고 운동화를 신은 사람들이 길게 줄지어 섰다.

버스 두 대를 놓치고 나자 N은 한 정거장 앞에 있는 버스 종점으로 뛰기 시작했다.

거기도 평소 휴일과는 다르게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가까스로 13석 남은 좌석 운 좋게 올라탔다.


경부고속도로 버스전용차로가 상경하는 버스들로 밀리기 시작했다.

N은 자꾸만 시계를 확인하며 어딘가로 문자를 여러 번 보냈다.

시청역에서 만나기로 한 친구와의 약속에 늦었기 때문이다.

을지로와 만나는 명동 뒷길에는 이미 지방에서 올라온 버스들이 끝없이 주차돼 있었다.

문경 1호차, 2호차, 대전, 춘천, 대구, 안동 1호차, 2호차, 거창 등등 출발지를 알리는 버스들의 행렬이 이어져 있었다. 한 시간 늦게 명동에 도착한 N은 인파를 헤쳐 친구와 만났다.

가랑비 속에 우산을 쓴 N은 뒤돌아서서 기다리는 친구 이름을 여러 번 불렀다.

드디어 친구도 환히 웃으며 다가왔다.

두 사람은 명동 골목 밥집에서 뜨거운 돌솥비빔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때로는 격하게 웃으면서...


N의 마음과는 다르게 명동길은 90년대와 똑같은 일상이 되풀이되고 있었다.

맛있는 길거리 음식이 훈김을 날리며 일렬로 판매되고 있었고 사람들 특히 외국인들이 서서 음식을 먹으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는 풍경 외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마치 저편 광화문과 이편 명동 사이에는 칸막이로 분리된 평화로움이 깃들어 N의 마음은 여러 챕터 갈피를 바삐 넘기며 동요되었다.

지하도를 걸어서 시청역 지상으로 올라가자마자 거대한 인파 속에 곧 파묻혔다.


태극기를 든 수많은 사람들이 플라자 호텔 입구에 서서 비를 피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출발지 깃발과 태극기를 나눠 든 연세 지긋하신 노인분들이 많았다.

젊은이들도 많았다.

이 인파에서 유독 N과 같은 중년이 잘 보이지 않는다.

40 50세대는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우리 사회 중추를 떠받치는 이 모순된 사회를 가장 분개해야 할 그들은 거실에 편히 앉아 이 사태를 관망하면서 OTT서비스를 즐긴단 말인가.

다리 불편한 노인들이 새벽잠을 설치고 지방에서 버스를 타고 상경, 내리는 찬비를 우비로 맞으며 임시의자에 앉아서 시위에 동참하는 3.1절, 자식뻘 세대는 무엇하는가.


N은 비가 그치자 가방을 열어 고향에서 올라온 불씨를 가만히 놓아주었다.

불씨는 바람을 타고 옮겨 붙기 시작했다.

정의를 외치는 사람들 손에서 손으로, '핸드인핸드(Hand In Hand)' 노래에 맞춰, 활활 타올랐다.

시청역부터 광화문 광장, 종로, 서울역에 이르기까지 들불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대한민국 입법부, 사법부, 자칭 가족회사 운운하며 국민의 주권을 소쿠리로 나르며 가내수공업을 하는 어느 권력기관에 득실거리는 해충들을 태우며 들불이 활활 타올랐다.

1919년 민족대표 33인이 선포한 독립선언서 그때의 절실함으로, 민족의 정기를 이어받은 수많은 시민들이 오늘 그 뜻을 되새기며, 부패하고 썩어 문드러진 대한민국의 권력기관을 질타하였다.


두어 시간 서서 집회에 동참한 N은 인근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며 아픈 다리를 잠시 쉬었다.

서쪽으로 뉘엿뉘엿 기운 햇살이 옆창으로 비스듬히 들어오는 오후 햇살이 좋은 카페였다.

친구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고 집으로 돌아가려던 N은 발길을 돌려 광화문 광장으로 다시 갔다.

주위는 어두워졌고 불이 꺼진 빌딩 사무실에는 간간이 한두 개 창문에서 불빛이 새어 나왔다.

그새 지방에서 상경한 노인분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대학로에서 합류한 대학생들과 젊은이들이 자리를 가득 메웠다. 본무대는 저쪽 광화문 광장에 있고 N이 있는 시청 쪽에는 대형 전광판이 화려한 조명을 내보냈다. 전자바이올린, 플루트 무대가 이어지면서 분위기는 축제처럼 무르익었다.

영원한 젊음 YMCA 음악에 맞춰 댄스가 이어지고...


그날 밤, N의 고향 들길 바위 아래 돌아온 불씨는 생각했다.

중학생들도 연단에 올라 불의에 저항하는 목소리를 높이는데 이 나라 지식인들은 왜 그럴까.

현대는 하이브리드 전쟁이라는데 자국의 군사기밀 선거자료 개인정보까지 뚫리는 줄 모른 채 야금야금 침식당한 경제영토와 정보전에 의한 심리전술에 휘말려 속국이 되려 하는 대한민국의 위기를 보면서 몽매한 우물 안 개구리에 대하여 생각한다. 나라가 없으면 나도 없다. 애국은 나부터 실천하는 행위이다. 철통 같은 군사안보 토대 위에 나의 자유도 숨을 쉰다. 이번 한 번 만으론 부족하다. N이 다시 부르는 그날 지체 없이 달려가기 위해 에너지를 비축해야겠다. 여러 번에 걸쳐 국민 저항권이 태운 들불의 정화를 거쳐 새봄이 어서 와서 대한민국이 재건되는 그날, 불씨는 아무 걱정 없이 봄비 내리는 소리를 실컷 들으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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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jpg 국민 저항권이 들불처럼 인 3.1절 광화문 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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