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보기 터질 듯 말랑말랑한 풍선은 취급주의 손길이 필요하다.
부드러운 촉감에 이쪽을 누르면 저쪽이 삐죽 저쪽을 누르면 이쪽이 삐죽거린다.
잘 삐지는 삐죽이를 놀려주는 그 재미에 양쪽을 꽉 움켜쥐었다간 터지기 일쑤다.
누구보다 자유롭고 독립적이지만 실은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실에 묶여있다.
세상에 처음 태어난 날, 쭈글쭈글한 몸에는 솜털투성이 무언가 꽉 막힌 설움으로 밤새 울었다.
말간 서광이 창문에 서려 있었고 울다 지친 폐부에는 흐느낌에 지친 약간의 공기가 머물렀다.
조금은 부푼 몸으로 이리저리 뒹굴었다.
그런 풍선의 모습을 본 가족들은 딸랑이를 쥐여주었다.
딸랑거리는 방울 소리에 맞춰 재롱을 피웠다.
두 발을 버둥거리며 종일 누워있던 풍선은 서서히 일어서는 법을 알게 되었다.
몸 안에 신선한 공기가 들어오면서 탄력이 생겼다.
문턱을 넘어서 바깥으로 나가보았다.
광주리에 담긴 봄볕이 흘러넘쳐 감나무 가지에 연푸른 새싹이 돋았다.
풍선을 낳아주신 엄마는 이쁘게 분단장을 하고서 오일장에 풍선을 데리고 나들이를 하였다.
샛노란 꽃들이 가지런히 핀 개나리 아래 병아리들이 한 줌 봄 햇살을 헤적이며 노는 시장 어귀에는
뻥튀기 할아버지가 튀밥을 튕기고 있었다.
엄마는 옥수수를 담은 자루를 풍선에게 주면서 기다리라고 말하고는 장을 보러 가셨다.
한 줄로 기다랗게 늘어선 자루 순서로 보아 한참 기다려야 될 것 같았다.
"뻥~" 소리에 놀라 귀가 따갑고 지루해진 풍선은 시장 구경을 나섰다.
참빗 성냥 방울이 달린 고무줄 이태리 타올을 파는 방물장수, 이빨을 드러내놓고 웃는 아귀 참가자미 오징어 고등어를 파는 어물전, 봉황이 수 놓인 베개를 파는 알록달록 이불가게, 꽃무늬 몸뻬바지를 파는 옷가게, 빨간 사과 한 궤짝을 놓고서 흥정하는 엄마의 모습도 보였다.
옥수수 자루를 지키라고 한 엄마 말이 생각난 풍선은 시장 어귀로 돌아서다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
돌부리에 걸려 살갗이 벗겨졌다.
막 울음을 터뜨리던 그때 살그랑 봄바람이 불더니 풍선의 몸이 살포시 떠올랐다.
땅에 발을 디디려고 발버둥 쳐봐도 어디론가 둥둥 떠밀려 갔다.
유리창이 빛을 입어 번쩍거리는 어떤 건물 입구 향나무에 풍선을 묶은 무명실이 덜컥 걸리고 말았다.
그곳은 시골에선 보기 드문 지프차가 한 대 서 있는 면사무소였다.
풍선은 나무에서 내려오려 몸을 이리저리 비틀었으나 소용없었다.
울기 시작했다.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그 소리를 들은 어떤 아저씨가 손을 뻗어 감긴 실을 잘라주었다.
혼쭐이 난 풍선은 나무에서 내려와서 엄마를 찾아 뛰기 시작했다.
고소한 냄새가 폴폴 풍기는 방향을 따라서 뻥튀기 할아버지를 찾아가자 엄마가 보였다.
그새 한껏 부푼 강냉이 자루를 들고 엄마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눈물을 닦고 엄마에게 뛰어가자 엄마는 어디 갔었냐며 따끈한 강냉이를 한 주먹 건네주셨다.
달달한 강냉이들이 입 안에서 살살 녹았다. 눈물이 말랐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엄마는 더 튼튼한 동아줄을 풍선에게 묶어 주었다.
키가 담장만큼 높이 자라고 싶은 풍선은 떡갈나무 숲에 보랏빛 노을이 찾아오면 배드민턴을 쳤다.
키가 크려고 발바닥이 근질거리면 큰집 담장 위에 올라서서 펄쩍 뛰어내렸다.
지구본을 빙빙 돌리면서 위인전을 읽었고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라는 사람을 알게 되었다.
풍선의 몸이 둥근 것도 빙글빙글 도는 지구를 닮아서 그런 거라고.
언젠가는 집 앞 7번 국도를 따라서 토끼가 그려진 아성여객 버스를 타고 더 넓은 세상으로 떠날 거라고.
먼지 섞인 잿빛 바람이 몹시 불어오던 날에 풍선은 미루나무가 서 있는 신작로 끝 소실점을 향해 고향을 떠났다. 큰 바람에 실려 대관령을 넘고 넘어 도착한 곳은 사람들과 자동차가 북적거리는 서울이었다.
청년이 된 풍선은 열심히 공부하였다.
암소가 비비는 고향 언덕 살구나무에 연분홍 꽃들이 만발하면 꽃물 든 편지지에 그리움을 띄워 보냈다.
그러고도 허전함이 맴돌면 보도블록 비집고 핀 민들레를 유리컵에 담아서 해 지는 저녁 창가에 떠오르는 별들을 초대했다.
어딘가에 속해 있지만 어느 곳에도 정착하지 않는 헤르만 헤세의 크눌프처럼 풍선도 시인이 되었다.
변두리에 살면서 산에 깃든 녹색 멧비둘기가 되었고 잔잔한 호숫가에 가서 그 바다 수평선을 떠올렸다.
오래전 엄마가 묶어놓은 동아줄은 두고두고 끊어지지 않았다.
몸부림칠수록 오히려 여러 겹 더 단단하고 질긴 매듭이 되어 자신을 옭아맸다.
어느 곳을 가더라도 줄곧 따라다니는 그 심줄은 풍선의 생명이었고,
고향의 파도 소리가 해안을 강타하는 맥박처럼 들렸다.
자신을 과소평가 옹졸해짐은 풍선이 작고 작아져 숨을 쉴 수 없고 어떤 열기가 차올라 바람이 들면 과잉팽창으로 터질 수도 있는 양갈래 생존을 두고서 중용의 미덕을 늘 고민하면서 살아가야만 했다.
풍선을 가두는 끈에 묶여 답답한 날에는 주저앉아서 눈가에 글썽글썽 맺히는 글을 썼다.
상상력이 허용하는 중력을 벗어난 노랑 풍선은 늪지를 벗어나 가뿐히 계곡을 날아올랐다.
산맥의 정수리가 보일 때쯤 결박한 끈은 모두 끊어지고 자유로운 빛과 한 몸이 된 풍선은 하늘 그 자체였다.
관대한 자연은 흔하디 흔한 오염의 길을 외면한 채 자신의 천성과 순수함을 지닌 이들에게 이따금 하늘을 나는 날개를 달아주었다.
노랑 풍선은 민들레 홀씨를 몸에 붙이고 오월의 봄날, 훌쩍 떠날 궁리를 한다.
멀리 더 멀리 오베르 쉬르 우아즈 평원에 닿는 그날을..
아주 멀리 날아가지는 마.
돌아올 귀로는 기억해 둬.
중력을 영영 벗어나면 다신 못 돌아올지도 모르니까.
바람을 좋아하는 너는 새하얀 감꽃이 떨어지는 달밤 쓰라린 바늘을 찔러 바람을 뺐다지.
핏물이 번져 스르르 빠지는 바람은 네 심장 붉은 파도 위에서 돛단배를 띄웠지.
네 신념은 너를 피안의 섬으로 이끌어 줄 테지.
마침내 툭 끊긴 실과 더불어 풍선은 보이지 않을 테고.
내 안에 갇힌 바람이 언젠가는 나를 구원해 줄 거라 믿어.
바람은 믿음
바람은 사랑
바람은 우정
바람은 예의
바람은 인내
너를 자유롭게 해 줄 거라 믿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