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있었다.
어디에나 굽어보는 빛이 있었다.
정면으로 곧게 비치는 빛살은 자신을 불투과시키는 물체에 닿으면 반사되어 비켜간다.
꿰뚫고 지나가면 상처가 됨을 알기에 직선이면서 부러지는 법을 안다.
부러진 직사광선이 흘러넘쳐 빛은 떠돌이가 된다.
점점이 떠도는 빛의 입자들이 콧잔등에 내려앉아 부드러운 음영을 만들고 누군가의 엄격한 얼굴도 때로는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빛은 그림자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다.
안락의자를 끌어당겨 사색에 잠긴 철학자의 어깨 위에서 명암을 저울질하며 등 뒤에 깔리는 고독을 존중한다. 그것은 시시각각 기쁨과 슬픔을 오가며 웃음과 울음이 되는 시소타기이다.
사월의 찬란한 꽃그늘이다.
살랑거리는 꽃잎에도 부서져버리는 잔떨림이다.
잔잔한 떨림을 거부하는 경직성은 추락할 일만 남았다.
떨리며 진동하고 고민하며 하늘거림은 부드러움의 증거이다.
지금 이대로의 느끼는 감정 그대로 투명하게 내비친다.
자신의 처지에 갇혀 감정을 숨기거나 속이는 두 얼굴은 돌아서면 일그러지는 표정이 된다.
봄바다는 온 하늘을 끌어안는 빛의 수용체였다.
반짝거리는 물비늘에 돌기를 달고 빛을 포섭하느라 안달이 났다.
물 분자에 입자 단위 빛을 싣고 고요하게 찰랑거렸다.
성내며 할퀴던 겨울은 물러갔고 태풍을 데려오는 여름은 아득하다.
근심을 모르는 어린아이의 몸짓으로 달려와서 주름치마를 펼치는 모성의 해변에 안겨 슬며시 넘어진다.
그 동작이 재밌는지 스르르 물러서더니 또 달려와서 넘어진다.
어떤 물결은 꿈쩍 않는 갯바위를 간지럼 태우며 허연 거품이 인다.
물러섬과 나아감이 서로 교차하며 해송 저 너머 세상이 궁금하지만 그저 자신의 그릇에 담겨 출렁거린다.
봄바다는 온순하다.
물수제비 띄운 조약돌이 찌릿하게 스쳐가는 아픔도 연푸른 내향성 깊숙이 담금질 무지갯빛 잉크로 시를 쓴다.
살아가는 일은 다듬어 정렬된 문장과 문장 사이 괄호를 만들고 가야금 산조를 타듯 즉흥연주를 허락해야만 한다. 순리에 따르면서도 가끔 일탈의 기쁨을 누려볼 만하다.
만선의 뱃머리를 선회하는 바다의 사냥꾼 갈매기들도 휴식을 아주 소중하게 여긴다.
한 무리의 갈매기들이 수면 위로 봉긋 솟은 테트라포트 끝부분에 앉아서 봄바다가 내어주는 행복을 느긋하게 감상하고 있었다. 돈에 미친 인간들보다 그들의 모습이 더 우아하고 부러웠다.
그들의 세계는 질서 정연하였다.
모두 한 방향을 바라보며 묵시적 규율을 따르고 있었다.
수평선을 오가는 교역에 관세를 부과하며 시끄럽게 떠드는 인간들을 질타하듯이...
봄바다는 허물을 벗어던진 자연스러움으로 저 멀리 닿지 못할 수평선을 그리워하기보다는 발자국을 남기는 은모래 해변을 거닐며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도록 이끈다.
드넓은 바다와 나 사이 경계를 오가는 파도 외엔 아무도 없다.
청정한 이 바다에 투척한 폐그물을 걷어내고 투명한 마음 한 올 건져 올린다.
밀물이 들어왔다.
농도가 낮은 쪽에서 높은 쪽으로 용매(물)가 이동하는 삼투압처럼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싶다.
용질은 이동하지 못하고 물만 이동하는 반투막은 물 샐 틈을 허용하는 것이다.
나의 아집에 헐거운 구멍을 뚫어 빛이 통과하는 프리즘을 만든다.
봄볕이 농익은 오월의 밀밭을 타작하는 테스의 얼굴도 일찌감치 그을렸다.
단순한 노동에 피부를 기꺼이 내어주는 적극성이야말로 삶에 대한 열정과 수용성 아닐까.
자의로 스며듦.
타의로 그을림.
인생은 그렇게 스며듦과 그을림이 촘촘히 직조되어 완성되는 미완의 작품이다.
하나의 생각을 머금은 물방울이 땅에 떨어졌다.
물기가 말라서 비실비실하던 나무가 그 물방울을 받아 마셨다.
나무는 금세 생기를 되찾았다.
연한 새순이 돋았고 미색 향기로운 오얏꽃들이 피어났다.
며칠 후 꽃잎이 떨어진 자리에 녹색 작은 열매가 달렸다.
황금 태양에 그을린 열매는 무럭무럭 자라올라 붉고 탐스러운 자두가 되었다.
한 방울의 물이 꽃으로 피어나 열매를 맺듯이 물기가 맺혀 머금고 볼 일이다.
내 안에 고인 한 움큼의 바다가 한 방울의 눈물이 된다.
흘러내린 눈물은 짭짤하다.
눈물을 머금은 시선이 사랑을 키운다.
소금의 힘으로 정화된 눈물이 혼탁한 세상을 씻어준다.
눈물을 모르는 눈은 매정하다.
매과 날짐승의 눈은 비정하다.
눈물에 씻긴 맑은 눈으로 뒤돌아보면 나보다 여리고 나보다 아픈 사람들이 보인다.
투병하는 남편을 돌보는 친구의 여린 등그늘이 보이고 어제와 오늘이 똑같아서 오늘을 어제라 말하는 엄마의 남루한 기억에 날개를 달아주고 싶다.
피는 물보다 진하고 눈물은 피보다 진하다.
극소량 눈물을 희석하는 물은 피보다 진하다.
그간 내 것을 고집하느라 물로 스며드는 삶을 제대로 살지 못했다.
머금은 물이 적어서 물기를 잃을 때마다 비틀거렸다.
메마른 심정은 쉽게 그을렸다.
누군가의 부정적인 말에 그을려서 타버리기 직전이었다.
신문고를 울리는 심장을 잠재우기 위해 개울물 소리를 듣고 우산에 내리는 빗방울 소리를 들었다.
산골 일백 년 된 아궁이 연기에 그을린 새카만 서까래를 보았다.
그을음을 한 겹 벗겨내면 새살이 돋는 서까래처럼 그을음은 희망적이다.
때로는 누군가의 대패질에 깎여나가다 보면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게 된다.
당시 아픔은 죽을 것 같은데 말이다.
색채와 농도가 진한 언어에도 그을렸다.
나답지 않은 색을 입은 물이 잠시 어디로 흘러가야 할지 몰라 망설였다.
구불구불 작은 물길이 열렸다.
불을 먹어치운 물이 그을음을 씻어준다.
머금고 흥건해진 물길이 강물이 된다.
강물 건너 큰불이 났다.
강풍을 타고 강물을 비화로 날아오른 불길은 건너편 산으로 줄달음질했다.
전후세대 나로선 처음 보는 살풍경이다.
영덕에 진입하자마자 검게 타버린 산이 시작되었다.
7번 국도 오른편 내륙에서 번진 불길이 해안 쪽으로 넘어가서 왼편 산도 다 태웠다.
그 밤 바닷가 어촌이 얼마나 다급했을지 짐작된다.
인도네시아 국적 외국인 선원 수기안토 씨가 경사가 가파른 언덕길을 뛰어다니며 노인 7명을 업고 300m 떨어진 방파제로 뛰어다녔다고 한다.
"할매, 산에 불났어요. 빨리 대피하세요."
벚꽃길은 이쯤에서 절단 났다.
영덕-청송-안동-의성까지 고속도로를 달리는 내내 검은 산이 이어졌다.
석탄을 채굴하는 지하갱도가 연이어 무너져내려 지상으로 적나라하게 노출된 듯 환한 대낮과 대비되는 어둠이다. 이 봄 산골짜기 진달래꽃 복숭아꽃 살구꽃 만발한 무릉도원이 한순간 지옥으로 변해있었다.
나지막한 구릉 위에 펼쳐진 그림 같은 과수원도 꽃들을 잃고서 시름에 잠겼다.
바람은 아무 죄가 없다.
해마다 늘 불어오는 그 바람이었다.
그 바람은 꽃바람, 꽃들의 행진을 북으로 밀어 올렸고 꽃가루가 날리는 중매쟁이였다.
바람을 불쏘시개 만든 한 사람의 손에서 화마가 시작되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이틀 전 내린 봄비가 검은 눈물을 흘렸다.
대재앙을 바라보는 눈길이 아파서 시선을 거두었고 텅 빈 허공이 헛헛하였다.
영동고속도로로 갈걸 후회했다.
푸른 숲을 잃어버린 산은 계절이 멈추었다.
둠스데이 최후가 저런 모습 아닐까.
저 산에 깃들어 살던 개구리가 돌아오는 데 12년이 걸리고, 개미는 13년, 멧새는 20년, 나무는 30년, 삵은 35년, 토양은 100년이 걸린다고 한다.
남은 생이 얼마 남지 않은 노인들은 절망을 안고 한 번 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화마를 입은 지역이 너무 광범위하여 처참하다.
영동지역과 울진산불을 경험하고 나서 우린 어떤 대책을 준비하였던가.
봄철 입산통제 및 산불 방화자에겐 중형을 마련해두었어야 했다.
맛 좋은 의성 청송 사과 구경도 못하게 생겼다.
쭉 뻗은 당진영덕고속도로로 고향 가는 길을 좋아했었다.
몇 해 전 그 길을 따라서 고향으로 가던 봄이 생각난다.
찬란한 햇빛을 얹은 구릉 위에는 천재의 영감을 떠올리며 마땅히 피어있어야 할 사과꽃이 천연덕스럽게 피어있었다. 기암괴석이 자리 잡은 주왕산 산자락에는 잘생긴 소나무들의 푸른 기상과 절개가 서려있었다.
산세가 완만해지는 영덕 지품면으로 들어서자 화사한 연분홍 복사꽃들이 고흐의 아몬드꽃처럼 은은한 광명과 기쁨을 주었다. 그 모든 것이 환영이고 거짓말이라고 악마의 혀가 속삭이듯 시간이 멈추었다.
씻지 못할 죄를 지었다.
자연은 과연 용서해 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