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설악의 품에 들다
"산이 좋아, 바다가 좋아?"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언제나 명징했다.
"바다가 좋아."
왜 그런지 다시 물어보면 바다 근처에서 태어난 태생적 이끌림 때문이다.
탁 트인 들판 건너 바다가 바라보이는 조망을 눈에 넣고 자라왔기에 산들이 겹겹이 막아선 산골에 들어가면 갑갑함을 느낀다. 하루이틀도 그러한데 계속 살라고 하면 병이 도질 것이다.
확고부동한 그 생각에 약간의 균열이 일어났다.
어둑한 밤바다에서 자신의 존재를 비추는 조도 등대는 연근해 수많은 어선들과의 거리를 좁혔다, 늘렸다 외톨이로 지낸다. 물에 잠긴 어둠을 물리쳐 뱃길을 밝혀주는 가로등에 뱃사람들은 고마워하지만 아무도 가까이 다가오지 않는다. 자신의 빛과 그림자놀이에 지쳐 해가 뜰 무렵 등대 불빛은 사라져야 한다.
이마에 부착한 야광등을 끄고 눈을 붙이러 갈 때 바라보는 일출도 매일 지켜보면 시큰둥하다.
빛날 수 있는 깜깜한 밤이 좋았다.
등대가 서 있는 섬은 새들이 많아서 조도(鳥島)라 부른다.
똥만 잔뜩 싸고 가는 새와 섬이 무슨 상관이라고 새 이름을 붙이는가.
돌이 많은 생김새 그대로 돌섬으로 개명신청을 하고 싶다.
갯바위에 부딪는 파도 말고는 종일 외로운 내게 친구가 생겼다.
사람들은 내 불빛이 미덥지 못했던 걸까.
닻을 내려 둥둥 떠있는 초록색 등대가 뭍 가까이 생겼다.
친구는 나보다 키가 작고 온몸으로 파도에 휩쓸리지만 깜찍하고 귀엽게 생겼다.
나는 희멀건 불빛 친구는 오렌지색 불빛 우린 이만큼 떨어져 지내도 서로의 심정을 낱낱이 알아준다.
가로막는 방해물이 없어 오히려 외로운 바다는 물결 위로 반사되는 불빛을 보면서 안부를 묻는다.
잔잔하게 부서지는 빛이 찰랑거리면 안녕하구나!
성난 파도에 담긴 불빛이 몹시 흔들리면 심란하구나!
엊그제 돌풍에 상처 난 데는 없는지, 겨드랑이를 살살 간질이는 봄바람에 기분은 어떠한지, 해무에 젖은 달빛이 작은 유리창에 흠뻑 스며들어 야근을 빼먹고 네게로 달려가고 싶었다고, 근처 바위에는 요즘 연갈색 햇미역이 많이 자란다고, 성질 고약한 괭이갈매기가 먹고 남은 생선 뼈다귀를 흘리고 갔다고...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이 조잘거린다.
밤새 해바라기 꽃을 피우는 속초아이(대관람차), 망사리를 띄워놓고 아침 바다 깊숙이 물질하는 해녀들의 부드러운 몸짓, 물굽이에 허물어지는 바다 기슭 단단한 갑옷을 입고 막아 선 바위들의 중첩된 오브제, 망망대해 바다는 언제나 마지막 도달하는 결론이었다. 한 일(一) 자 수평선을 그어놓고 해석을 강요하는 바다는 난해한
질문지를 면전에 둔 막막한 결론이다. 그 깊이를 알아내기에는 흘러온 강물의 내력이 필요하다.
발 빠른 연둣빛 새순의 행렬이 능선을 타고 오르는 설악으로 갔다.
산이 깊어 골도 깊은 시냇물이 봄가뭄에 메말랐다.
울산바위 암릉이 능선 너머 턱 하니 걸터앉은 과연 명산이었다.
완만한 이음새를 거부하는 바위들이 봉우리를 뚫고 드센 성정으로 솟아올라 하늘을 찔렀다.
오랜 세월의 풍화작용을 한사코 물리친 저 지독한 산세를 보면서 바다가 정의하지 못한 결론을 산은 알고 있지 않을까, 뚝심 있는 칠현(七賢)의 철학이 저 봉우리마다 간직되어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깊고 푸른 강물의 발원지는 등장부터 남다른 것이다.
시냇물을 따라서 비룡폭포로 가는 평탄한 길을 걷는다.
두 눈이 서늘해지는 초록빛 강물 옆에 눈이 부시게 새하얀 꽃이 피어 만발하였다.
그 꽃나무 아래 둥근 바윗돌이 있어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어떤 한 무리의 사람들은 나무를 보고서 이팝나무 꽃이라고 말하고 성급히 지나갔다.
흔하디 흔한 이팝나무 꽃이 계곡 깊은 설악에 평지보다 빨리 필 수야 없는 것이다.
나는 어떤 기대감에 부풀어 서둘러서 그 꽃 가까이 코를 디밀었다.
한눈에 직감한 귀룽나무 꽃이었다.
2015년 봄 정선에서 커다란 이 꽃나무를 처음 보았을 때 상서로운 기운에 사로잡혔었다.
그 느낌 그대로 은은한 향기를 머금은 꽃나무는 멀리서도 한달음에 나무 앞으로 발걸음을 끌어당겨 기분을 좋게 만드는 매력을 뿜어낸다. 봄철 피는 귀룽나무 꽃은 순수함과 희망을 상징한다.
사랑과 우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데 적합한 이 꽃을 선물함으로써 상대방에게 진실한 감정을 전해준다.
순수한 기쁨과 축복의 언어를 전달하는 귀룽나무 꽃을 손에 들고서 새로운 미래에 대한 희망을 북돋운다.
시베리아로 가는 횡단열차에 고단한 몸을 구겨 넣은 닥터 지바고에게 어느 새벽 감미로운 바람결에 묻어온 꽃향기도 귀룽나무 꽃이었다. 그는 꽃향기를 맡고서 어떤 새로운 기대감에 부풀었다.
인생 중년에 이르러 새로운 모험은 필요치 않다.
고요히 여울져 흐르는 길에 내 품에 다가온 귀룽나무 꽃향기를 맡는 이 봄이 수평선으로 흐르고 있었다.
육담폭포를 지나 비룡폭포를 찍고 구백 계단을 천천히 올라갔다.
가파른 경사에 헐떡이는 숨을 난간을 붙잡고 한 걸음씩 쉬엄쉬엄 오른다.
바다가 들려주지 않은 칠현의 철학 또한 이 한 걸음부터 시작된다.
한 걸음이 과정이요, 한 걸음이 전개되어 구백 걸음에 이르면 어떤 결론에 도달한다.
빨리 간다고 모든 걸 말해주는 결론이 아니지 않은가.
내 몸이 허락하는 만큼 숨을 마시고 내쉬고 뻐근한 관절에 산소를 전달해 가는 하늘 그리고 천국에 오르는 계단길. 차를 타고 주차장으로 들어오던 길이 저 아래 작은 점으로 내려다보이고 귀룽나무가 사는 시냇가는 보이지 않게 되었다. 숨찬 이 길의 끝에는 토왕성폭포가 기다린다. 3단에 걸쳐 320미터 길이 폭포를 보기 위해 까마득한 높이에 매달려서 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룡폭포에서 시끄러운 소리를 내다가 하산한다.
소수의 사람들만 오르내리는 구백 계단에서 외국인들이 내국인들보다 많은 편이다.
그들은 무얼 보았던 걸까.
심오한 표정으로 이미 어떤 결론에 도달하였다.
드디어 토왕성폭포 전망대에 이르렀다.
물길은 메말라서 명주실 여러 가닥 희미하게 나풀거린다.
폭포는 산의 감정이다.
산의 내밀한 감정을 물길을 열어 내려보낸다.
상수지청(上水之淸) 하수지청(下水之淸),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은 감정은 인간애가 퍼올린 눈물 한 방울의 따스한 힘으로 되살아나 얼어붙은 심장을 다시 뛰게 만든다.
심산유곡 얼음 아래 한숨 틔운 시냇물이 졸졸 흘러 봄이 되듯이...
아주 높은 산꼭대기 능선 저 물길의 시원은 어디일까?
첩첩산중 저보다 더 높은 산이 흘려보낸 물길을 저 산봉우리가 이어받은 설악의 순리를 본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무한 경쟁 내몰리는 줄세우기 게임에서 이탈하는 자연인들의 삶이 더 자연스러운 것임을.
그리고 내 앞에는 첩첩이 포개진 바위 위로 허공에 뿌리내린 소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거처가 다른 지상 최고봉 일인자는 바위와 소나무였다.
바위 암봉 하나하나 작은 산봉우리를 형성하였다.
구백 계단 끝에 도달한 결론은 십장생(十長生)이었다.
그들의 언어는 바람과 별빛, 나는 아무 것도 아닌 미물이었다.
저 아래서 목메던 것들이 다 부질없게 여겨졌다.
나는 가고 없어도 저들은 영생을 누리면서 억겁의 세월을 만든다.
서로의 비밀을 내통한 산과 바다는 하나였다.
"산이 좋아, 바다가 좋아?"
"산도 좋고 바다도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