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어디에 있을까?
숫자로 옷을 입은 달력 칸에는 해야 할 일들의 기록이 시간이 흘러간 뒤 가라앉은 잔해처럼 남아있다.
돌고 도는 시침과 분침은 늘 그 자리 기계적 조리돌림만 당한다.
흐르는 강물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 시간을 어디에 가면 찾을 수 있을까.
과거 미래는 절벽 저 아래 떨어진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면 시간은 무한대로 열린다.
무념무상의 순간, 저 너머 우주까지 열리는 확장성은 시간의 비밀을 말해줄 수 있다.
무념무상이란 생각에 아무런 걸치적거림이 없어야 한다.
어떤 대상에게 사로잡힌 집착도 없어야 하고 미움도 없어야 하고 불안이나 망상은 저 멀리 사라져 고요한 상태 즉 감정의 기복이 제어된 잠잠한 상태이다.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은 수평선 위로 아침해가 비치는 고요함을 마주할 때 하늘이 열리고 우주가 열린다.
그런 시간을 마주하면 일엽편주에 올라탄 마음은 공간의 제약을 벗어나 어떤 사로잡힘의 사슬을 다 끊어낸다. 무한한 시공간이 허락하는 것은 결국 마음에 달렸다.
나를 짓누르는 불편한 마음의 짐은 벗음이 마땅하다.
과부하 걸린 무게에 짓눌려 이리저리 휘청이다 보면 부정적인 그림자에 지배당한 자신의 모습은 망가져버린다. 말(正言)이 아니면 듣지를 말고, 길이 아니면(非道) 가지를 말아야 한다.
이 또한 평소 자신의 신념이 굳건할 때라야 가능한 일이다.
신념이 없다면 그 분별조차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 신념을 지키고 정언과 비도를 가리는 데 장미의 계절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그 아침 돌덩이 얹은 걸음이 무거워 무작정 걷고 있었다.
몇 번의 비바람에 아카시아 꽃은 지고 있었고 이따금 들리는 뻐꾸기 울음이 내 흐릿한 의식에 슬몃 끼어들어 감각을 명료하게 일깨워주었다. 동해 바다에서 정면으로 비쳐든 아침해가 언덕을 약간 후텁지근하게 달구고 있었으나 소금기 실린 맑은 바람이 기분을 살살 달래면서 불어와 상쾌하였다.
고개를 들어 불빛을 잠근 새하얀 등대를 훑고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는데 건너편 어떤 집 울타리가 눈에 띄었다. 시골에서는 보기 드문 노란 장미들이 그 집 울타리를 벗어나 흰 구름이 낀 하늘 가까이 깃발처럼 흔들렸다. 오월의 아침 해와 노란 장미는 서로의 단짝같이 어깨를 두드리며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어떤 기대감에 부풀어 장미가 있는 그 언덕길로 걸음을 옮겼다.
그 집 입구에 들어선 나는 경이로운 감탄사를 내뱉고야 말았다.
흰 조약돌이 깔린 그 집 마당에는 현무암 판석이 주인의 발걸음을 따라 세 줄 나란히 징검돌처럼 놓여 있었고 마당 양쪽으로는 앉기 좋은 둥그스름한 괴석과 함께 이 아름다운 계절을 축복하는 작약 샤스타데이지 분홍낮달맞이꽃들이 장미와 더불어 정원을 마법의 공간으로 진정한 휴식의 쉼터로 숨 쉬게 만들었다.
경사진 공간의 낙차를 비호하려는 듯 철제 울타리 앞으로는 사다리꼴 측백나무들이 보기 좋게 자라고 있었고 바닷가 언덕에 어울리는 화이트 외벽 건물은 본채와 별채 두 채가 서 있었는데 바다 전망을 내다보는 통유리창이 동쪽 벽면을 차지한 박공지붕 별채 앞에는 이국적인 야자수 두 그루가 하와이안 무드를 연출하였다.
집주인의 취향이 보통 까다롭지 않았기에 내가 꿈꾸던 내 취향에 적중하였다.
자연에 거스르지 않고 주위의 풍경에 그대로 스며든 집은 거기 기거하는 사람의 내면을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숱한 오해와 불협화음을 야기하는 언어란 침묵을 동반하지 않으면 허물어지고 말 폐가와 같다. 먼지를 씻어내고 모난 데를 다독여주는 물살같이 살아가다 보면 집 앞 무성한 측백나무들이 동해에서 불어오는 태풍을 막아주고 내 마음의 성난 파도도 저절로 가라앉는다. 풍경을 간직한 집은 살아가며 마음을 다스리는 데 평정심을 북돋운다. 그런 집에 기대어 안식을 누리고 행복을 누릴 수 있다면 집에 매기는 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게 된다. 돈이 모든 것을 평가하는 비정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돈의 잣대로 관계를 저울질하는 사람과의 인연은 다 끊어내고 싶다. 나의 의식주를 해결하고 나면 한 사람의 영적 성장을 키우는 가치를 추구하고 실천하는 데 남은 생애 매진해야 하지 않을까.
해풍을 좋아하는 팽나무들이 서식하는 평범한 해안 기슭을 오래전 눈여겨본 눈썰미, 그 기슭에 도로가 생기고 땅이 제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다린 인내심, 때에 이르러 가슴속 로망을 현실로 구현한 안목이 한데 어우러져 그 언덕에 꼭 들어맞는 그 집은 정면으로 떠오르는 아침 햇살과 보름 달빛을 꿈결 그대로 흡수하는 집이 되었다. 그 집에 기거하는 집주인은 바깥으로 드러난 깔끔하고 세련된 감각과는 달리 이 터에 집을 짓기까지 50년을 기다린 노인들이라고 한다. 그들은 이곳을 별장으로 쓰는 서울사람들이라는 얘기도 들었다.
누군가의 꿈은 노년에 이르러 이루어진다.
또 어떤 이의 꿈은 그보다 빠른 청년기 중년에 이루어지기도 한다.
꿈이 빨리 이루어지면 행복을 더 빨리 누리는 것이므로 그만큼 인생의 행복지수를 더 오래 더 크게 누릴 수 있어 좋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꿈을 꾸는 그 시간 또한 행복한 시간이다. 가늘게 뜬 두 눈의 속눈썹 위에 미래의 모습을 물안개 잠기듯 그려보며 싱긋이 미소 지을 테니...
푸른 바닷가 언덕 카사블랑카는 내 오랜 꿈이었다.
누군가의 꿈을 지켜보면서 노년에 이른 그분들의 행복한 생활을 응원해 주고 내려왔다.
언젠가는 시간이 흘러 내 꿈도 이루어지는 날이 오려나.
상상 속의 그날, 나도 밀짚모자를 쓴 노인이 되어 호미를 들고 정원의 풀을 메고 있으리.
지금처럼 베란다 장미를 가꾸며 아파트에 살아도 괜찮으리.
어디에 살건 시간의 확장성을 믿으며 신념을 지킬 수 있다면 괜찮으리.
_정일근
피리를 만들기 위해 대나무 전부가 필요한 건 아니다
노래가 되기 위해 대나무 마디마디 다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다
가장 아름다운 소리는 마디 푸른 한 마디면 족하다
내가 당신에게 드리는 사랑의 고백도 마찬가지다
당신을 눈부처로 모신 내 두 눈 보면 알 것이다
고백하기에 두 눈은 바다처럼 넘치는 문장이다
눈물샘에 얼비치는 눈물 흔적만 봐도 모두 다 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