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First Impression
어떤 사람을 처음 볼 때 느껴지는 이미지를 첫인상이라고 한다.
그 사람의 얼굴 생김새가 눈도장을 찍듯이 내 눈에 찍히면서 호감, 비호감을 판단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0.3초이고 3초면 첫인상이 결정된다고 한다. 그렇다고 첫인상만으로 그 사람의 전부를 아는 것처럼 판단해 버리면 드러난 빙산의 일각을 빙산의 전부로 아는 오판을 하게 된다.
첫인상이 좋더라도 그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와 표정, 태도, 목소리를 보고 듣다 보면 인상을 더 좋게 더 나쁘게 만들기도 한다. 첫인상에 있어 시각적인 요인이 55%, 목소리 등 청각적인 요인이 38%, 언어적인 요소가 7% 차지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오감으로 형성된 민감한 촉수들이 한 사람의 비언어적 태도를 스캔하는 데 따라붙는 느낌이 첫인상을 결정한다.
우리가 흔히 호감형이라 부르는 서글서글하고 웃음기 드리운 얼굴을 경계하는 편이다. 솔직히 말하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경계심을 손쉽게 푸는 정형화된 패턴 같은 그런 흔하디 흔한 표정은 보편적 간판일 경우가 많다. 두뇌적으로 진화가 잘 된 얼굴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사람은 누구에게나 무난하지만 어느 누구와도 깊은 관계를 맺지 않으며 상투적이고 표면적인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다 그런 건 아님을 항상 예외로 둔다.)
전에 다니던 직장 동료가 그랬었다. 그녀는 언제나 방긋방긋 웃는 얼굴에 싹싹하고 친절했다. 방어기제를 푼 내게 친절한 말투로 가까이 다가오지 않았고 늘 일정한 간격 그 너머에서 그런 얼굴을 띠고 있었다. 그녀의 태도는 직장에서의 직장 언어로만 사용되었다. 웃음기 어린 표면 깊숙이 공감을 나누는 일은 없었다. 어느 날 컨디션이 안 좋을 때 "오늘 안 좋아 보여요. 어디가 불편해요? " 사적인 관심은 일체 보이지 않았다.
직장 바로 아래 참새 방앗간 같은 분식집이 있었다. 출출한 퇴근 무렵 들러 떡볶이 튀김 순대 어묵을 자주 사 먹었다. "오늘은 내가 쏩니다." 서로 돌아가면서 내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녀는 얻어먹기만 할 뿐 지갑을 여는 일이 없었다. 서울에 집이 있고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도 동생들 용돈 주고 학비 대며 자취집에서 살았던 나보다 더 인색했다. 그때 알았다. 저 친절해 보이는 얼굴은 속내를 감춘 보호색이고 위장용이라고.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강아지와 달리 사람은 속내를 감춘다.
입은 웃고 있어도 눈은 눈빛으로 마음의 창을 내비친다.
'마흔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라는 말은 반복된 얼굴 표정이 긴 시간 살아오며 굳어버린 자기 인상에 변명은 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 거울을 바라본다. 내 얼굴은 모진 파도에 쓸린 조약돌인가. 비바람에도 깎이지 않는 못난 바윗돌인가.
인상은 이목구비 잘 생기고 못 생김을 구분하지 않는다. 마음을 담은 얼개에 얼비치는 심상을 엿보는 것이다.
세월의 때가 덜 묻은 청년의 얼굴은 인상을 구분 짓기 쉽지 않다. 다만 그 눈동자를 바라보며 마음의 안정과 깊이를 잰다. 눈동자를 이리저리 움직이는 사람은 바람에 흔들리는 깃발처럼 작은 자극에도 민감하고 마음이 얕아서 언행에 신중성이 떨어진다. 그만큼 믿음을 주고받기 어렵다. 고요한 마음이 실린 고요한 눈동자에 믿음이 자란다.
최근 아주 인상이 좋은 사람을 보았다. 성실하고 신중해 보이면서 겸손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는 내가 처음 보았을 때부터 두 번 세 번 볼 때마다 한결같은 태도로 일하고 있었다. 요즘 제철 맞은 토마토를 상자째 사서 먹고 있는데 토마토 상태를 살펴볼 겸 테이프 봉인 된 상자를 열어달라고 부탁하였다. 한 상자를 열어서 확인하고 나자 다음 상자도 열어주었다. 조용한 말투 약간 쑥스러운 표정으로 내가 고른 상자를 직접 카운터까지 들어주었다. 내 주위 사람들에게선 찾아볼 수 없는 그의 표정과 태도는 인사고과를 따박따박 받고 경쟁에 내몰리는 사무직 근로자에게선 이미 사라져 버린 인상이었다. 그의 순수한 천성과 자유의지로써 성실하게 일하는 직업 환경이 만나 좋은 인상을 지킬 수 있지 않았을까. 지금은 물품 관리 사원으로 일하지만 언젠가는 유통 분야 사장님으로 성공할 것 같은 그의 뒷모습을 응원한다.
나를 조이고 압박하는 환경을 만나면 누구나 인상을 찌푸리게 된다.
그럴 땐 그 차갑고 인정사정 모르는 금속 스패너를 풀고 숨통이 트여야 한다.
점점 조이고 조여져 나도 모르게 잡아먹히고 말 스패너에 길들여지고 있진 않는가.
길들여지길 거부한다면 그 쇠뭉치는 공구함으로 조용히 치우자.
나를 살게 하는 꽃 바람 새들을 데려와서 크게 한숨 내쉬고 나만의 고유한 분위기를 되살려보자.
그 분위기 누군가에게 통했던 걸까.
어제 카페 출입문 바깥에 자리를 잡고 주문벨이 울리자 안으로 들어갔다.
조각케잌 음료가 가득한 트레이를 받쳐들고 출입문으로 가려는데 무거운 문이 닫혀 있어 난감했다.
그때 주문 줄 서있던 한 외국인이 급히 다가와서 문을 열어주면서 내가 나갈 때까지 잡아주었다.
"땡큐"
"노프라블럼"
일행에게 가서 친절한 외국인이 문을 잡아주었다고 말하였다.
"그 문 아무나 잡아주는 거 아닙니다. 사람 봐가면서 해주는 거예요."
"그런가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