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와 달을 띄우던 동쪽 하늘이 산산조각 나고 있다.
지난봄부터 타워크레인을 동원해 만들어지기 시작한 콘크리트 계단이 고공을 향해 한 층 한 층 발돋움한다.
어디까지 올라갈 참인지 아침 빛을 잠식하는 그 괴물이 철근을 심는 소리와 함께 몸집을 키울수록 숨이 조여 오는 괴로움을 느낀다. 이젠 말간 아침 하늘 위로 곱게 번지던 장밋빛 놀을 볼 수 없게 되었다.
저녁 하늘은 또 어떠한가.
쌀뜨물에 얼굴을 씻은 미색 보름달이 산 능선 위로 싱그럽게 떠오르면 마음이 덩달아서 환해졌었다.
그 밝은 광휘에 살그머니 내려앉은 눈꼬리 포근한 미소가 지어졌었다.
여름 밤하늘에 로즈골드 빛깔 눈부신 광채로 설레게 하던 화성을 만난 방향도 동쪽 하늘이었다.
메말라가는 감성에 이른 새벽 정화수 같은 물기를 적셔주고 이 도시에서 살아가는 기쁨을 잃어가는 요즘, 쨍한 남향 불볕이 사막의 신기루처럼 공허하다.
이 집에 이사 오고 나서 탁 트인 서쪽 하늘은 저 멀리 녹색 교회 첨탑에 신비로운 석양빛을 물들이면서 내 방 아이보리색 커튼을 핑크빛으로 염색했었다. 황홀한 이브닝 세레머니를 가로막고 어느 날 갑자기 공사가 시작되더니 25층 아파트가 들어섰다. 그 훼방꾼이 동쪽 하늘을 똑같은 방법으로 접수하고 있다. 동쪽 하늘이 나를 꿈꾸게 했다면 서쪽 하늘은 겸허한 안식을 주었었다.
공원을 낀 남쪽 하늘만 멀쩡하게 살아남아서 햇빛 쏟아지는 한나절을 적나라하게 직시한다.
하늘을 봐야 꿈을 꾸고 시를 쓰는 나 같은 사람은 어느 하늘 아래 기대어 살아가야 하나.
한낮의 호숫길은 대장간 쇠붙이를 제련하듯 습기를 머금고 달구어져 걷기 힘들다.
녹색 나무 그늘을 밟고 산속으로 들어갔다.
산길 오르막 초입에 요즘 보기 힘든 대나무 빗자루가 벚나무 둥치에 기대어 비스듬히 서 있었다.
장소와 어울리지 않는 쓰임새 퍽 인상적이었다.
초반부터 헉헉거리는 숨을 몰아쉬고 오르막길이 끝나는 지점에 올라서야 용도를 알게 되었다.
진갈색 시든 밤꽃이 떨어져 나뒹구는 길이 가지런히 쓸린 비질 자국으로 정갈했다.
그 자국은 길 양쪽 귀퉁이를 따라서 빗살무늬토기처럼 나란히 빚어져 있다.
이 구역만 잠시 그러다 말겠거니 여겼는데 비질 흔적은 2km 조금 안 되는 산길을 걷는 내내 이어져 있다.
나무뿌리가 비죽비죽 뚫고 나온 가파른 오르막길, 평탄한 길, 내리막길도 내 집 앞마당같이 누군가의 정성스러운 손길이 산길을 환하게 닦아놓았다. 맨발로 걷는 사람들이 안전하고 깨끗하게 걸을 수 있도록 누군가의 배려 같았다.
산길 바닥에는 꿈틀대며 기어 나온 지렁이, 살갗을 아프게 파고드는 돌멩이들, 사람 식겁하게 놀래키는 벌레들이 많아서 전에 맨발로 걸을 때면 항상 고개를 푹 숙이고 걸었다. 왕개미 한 마리도 밟지 않으려고 피해 다녔다. 착한 심성을 지닌 누군가의 따듯한 배려로 다음번에는 나도 갑갑한 신발을 벗고 맨발로 맨땅의 감촉을 느끼고 싶다. 선명한 비질 자국을 남기면서 허리를 숙여 이 더위 구슬땀을 흘렸을 그분의 노고에 감사드린다.
착한 마음은 선행으로 이어질 때 그 가치가 빛난다.
마음은 마음 안에 갇혀 있길 좋아해서 바깥으로 표현되려면 강한 의지와 실행력이 있어야 한다.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 하겠거니 미루는 마음 귀찮은 마음을 기꺼이 물리고 솔선수범해야만 가능하다.
약간의 용기와 리더십이 필요하다.
큰딸이 고3 다닐 때 일이었다.
난데없이 교실 증축 공사를 한다면서 딸이 다니는 교실 5층을 폐쇄하고 운동장으로 임시 교실을 만들어 이주한다는 안내문이 고지되었다. 급하게 임시 교실이 만들어진 운동장으로 가보았다. 여름철로 접어든 컨테이너 박스 안에는 에어컨, 시청각 시설이 구비되어 있었다. 문제는 땅에서 올라오는 열기와 소음이었다. 점심시간 타과 학생들이 운동장에서 떠드는 소리가 고스란히 들렸고 운동장을 가로질러 본관 화장실 이용이 불편하였으며 비가 오는 날에는 컨테이너 박스를 두드리는 천장 빗소리에 학습에 대한 집중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영어 듣기 평가 시험날 비가 오면 어떻게 될지 우려스러웠다.
그런데 학부모 대표 엄마는 학교 눈치를 보면서 아무 대책을 제시하지 않았다.
대입이 불과 몇 달 앞으로 다가오는 시점 비싼 수업료 내고 다니는 예고 3학년 학생들에게 이런 부당한 대우는 학부모로서 수용할 일이 아니었다. 단톡방에 불만만 와글와글 들끓었다. 내가 나섰다. 학부모 측 요구사항을 정리하여 학교 측에 미팅 날짜를 잡았다. 그날 교장선생님 이사진 고3 담임선생님들이 참석했던 것 같다. 뜻을 같이하는 여러 엄마들이 동참하였고 나는 메모지에 정리한 내용을 일어나서 말씀드렸다. 내 얘길 들은 교장선생님은 말이 통하는 사람 같았다. 충분히 이해하였고 언제까지 학교 측 입장을 제시하겠다고 말씀하셨다. 며칠 지나지 않아 답변이 돌아왔다. 운동장 임시 교실을 교무실로 사용하고 1층에 있는 교무실을 헐어 3학년 교실로 사용할 것이며 공사기간이 며칠 걸린다는 내용이었다. 그때까지만 양해해 달라고 하였다. 약속은 즉각 이행되었고 아이들은 편하게 1층 교실을 사용하게 되었다.
불의를 정의로 되돌리는 힘 역시 착함에 있다고 본다.
내가 속한 다수의 집단의 일은 나의 일이기도 하다.
내가 미루면 남도 미룬다. 그렇게 미루는 사이 누군가는 피해를 보게 된다.
몇 해 전 분당 정자교 보행로 붕괴 사고도 사고 전 금이 가는 전조증상이 서서히 진행됐다고 들었다.
그 길을 자주 다니는 보행인들이 관할 구청에 적극적으로 신고하고 민원을 접수했다면 안타까운 인명사고는 예방할 수 있지 않았을까.
반환점을 찍고 돌아오는 벼랑길 철조망 너머 주황색 나리꽃 서너 포기가 피어있었다.
일주일 전에는 벼랑길 아래에서 진홍색 하늘말나리꽃들이 군락을 지어 피어있는 모습을 보았다.
어여쁜 꽃들은 손 닿을 수 없어 아스라이 애태우는 곳에 홀연히 피어난다.
위험을 무릅쓰고 위태로운 곳에 피어날 때는 가까이 다가오지 말라는 경고 아닐까.
강렬하게 내리쬐는 칠월의 자외선에 주근깨를 콕콕 박고 고개 숙인 얼굴마저 매혹적이다.
철조망에 기대어 조각 난 하늘을 비질하는 나리꽃들이 내 모습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