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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혜인 Jan 07. 2022

근사하고 맛있는 매개체

정착의 완성은 이웃이 만든다

 어제의 나는 비로소  익은 김치와 같았다. 터키에 와서 고된 정착과정이 나를 소금에 절여진 배추처럼 축축 쳐져있게 했다가 그나마 신랑의 사랑이 버무려져 버팀목으로 지내왔었는데, 어제는 집주인 아저씨의 가족들을 만나 따뜻한 마음이 발효되어 마침내 건강한 효소가  김치처럼 나는 정신적으로 건강해질  있었다. 신랑과 평생을 단둘이만 살아도 좋겠지만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그와 달리 나는 어딘가 신랑밖에 모르는 고립된 느낌이 있었다. 그런 내게 특별한 이웃이 생기고 나니 터키가 나에게 '살만한 ' 되었고 타지 생활이 두배로 즐거울 같았다. 해외여행에는 멋진 풍경이 필요하지만 해외생활에는 주변에 좋은 이웃과 친구가 필요하다. 더불어살기 위함이다. 정착을 위해서 집을 구하고 거주증을 받는게 끝이아니라 현지 사람간의 정을 껴야 비로소 마음까지 온전히 정착한거라 여겼던것 같다. 나는 아무리 멋지고 근사한 도시라도 쌀쌀맞은 사람들 틈에서 살지 못한다. 그만큼 내겐 주변환경만큼 주변사람도 중요하다. 타지에 와서 이방인으로 겉돌지 않고 현지인들처럼 살려면 나는 그들속으로 스며들어야 했다. 그래서 어제 만난 이웃들이 정말 특별했다. 단순히  건물 안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이웃이 되진 않는다. 진정한 마음의 교류가 있어야 이웃이 된다.  때문에 서둘러 퇴근해주신 집주인 아저씨가 감사하고, 음식과 함께 따뜻하고 편안한 시간을 보내게   할머니가 감사했고, 영어교과서를 가져와 터키어 과외를 해주던 나스가 너무 고마웠다. 그들의 선의와 정을 공유받았기에 나는 그들을 이웃으로 받아들일  있었다.


 다음날 이웃에게 보답을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내가 감사를 표현할  있는 제일 좋은 방법은 음식을 나누는 것이다. 디저트를 사드릴까 하다가 이왕이면 한국음식을 직접 만들어 드리면  의미 있을  같았다. 메뉴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자 신랑도 맛을 인정해준 잡채를 만들기로 한다. 외국인이 처음 접하기에 맵지도 않고 무난할  같았다. 그리고 잡채는 잔치음식이지 않나. 할머니께 기쁨을 드리고 싶었다. 처음 만드는 것도 아닌데 잡채를 만드는 동안 얼마나 설레었는지 모른다. 내가 만든 한국요리를 외국인에게 선보이는 것도 떨렸고, 할머니 가족의 입맛에 맞을지  맞을지도 염려되었다. 나의 마음이  전달되길 바라며 사랑과 정성을 갈아 담아 만들었다. 고기가 반인 느낌으로 아낌없이  접시 가득 담아두고 종이와 펜을 꺼내 들었다. 서툴지만 감사하다는 말과 한국음식에 대해 알려드리고 싶었다. 잡채는 한국의 전통음식이자 내겐 생일이면 엄마가 만들어주던 특별한 음식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엔 Heylin이라고 이름을 적었다. 헤일린은 전날 할머니께서 지어주신 이름이다. 터키어에는 모음이 서로 만나지 않는데  한국 이름 Hyein y e i  개의 모음이  번에 만나 어렵게 느껴지셨던 모양이다. 그래서 나는 할머니가 부르기 쉬운 Heylin 되었다.  그래도 사람들이 자꾸 나를 히아인이라고 불러서 얼핏 들으면 '하인'으로 들리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외국에서 불리기 좋은 헤일린이란 이름이 반갑고 마음에 들었다. 나는 할머니를 Anne(엄마)라고 부른다. 집주인 아저씨가 할머니를 안네라고 부르는  듣고 나도 따라 불렀다. 아들이 엄마를 부르는  당연한 건데 피도  섞이고 생김새도 다른 외국인이 할머니만 만나면 "엄마, 엄마"하고 부르니 할머니는 내가 예쁘셨을까? 접시에  잡채를 전달하고  이후, 할머니는 나를 정말로 손주처럼 예뻐라 하셨다. 나를 바라보시는 시선에애틋함이 느껴졌다. 아마 우리의 마음이 온화하고 따뜻한 것은 단순히 음식을 주고받아서가 아닐 것이다. 음식은 그저 서로를 잇는 매개체일 , 감사한 마음을 표현할  알고 정을 나누는 우리의 모습이 흐뭇한 것이다. 이튿날 할머니께서도 우리 집으로 요리를 가져다주셨다. 간이   몸에 좋다는 귀리가 들어간 밥과 닭고기 요리였다. 때마침 저녁식사를 준비하기 전이여서 할머니께서 주신 음식으로 신랑과 나는 든든한  끼를 채울  있었다. 배도 든든하고 마음도 든든한 감동의 먹거리였다.


 나는 할머니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지내고 싶다. 가족처럼, 친구처럼 이웃 이상의 돈독함을 가질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어느 날은 마트에 갔는데  조금씩  먹던 귤을 보자 "저거다" 싶었다. 터키는 과일을 한국처럼  크게 박스단위로 팔지 않는다. 봉지에 먹고 싶은 만큼 골라 담아서 소량으로   있다. 과일을  먹지 않는 신랑을  2 가구에는  좋은 시스템이었다.(나혼자 먹는다는 소리) 나는 주로   있는 만큼씩만 사서 그때그때 조금씩  는다. 그런데 이날은 평소보다 두배 이상으로 양껏 귤을 담았다. 누가 뭐라 하는 것도 아닌데 '귤이 많아서 나눠야 한다' 핑계를 만들어 할머니 집에 놀러 가고 싶었던 것이다. 물론 할머니는  사실을 모르시겠지만 나는 할머니와 친해지고 싶어 핑계가 필요했나 보다. 이제 막 새학기를 맞이한 아이들이  친구들과 친해지고 싶어 편지를 쓰고 먹을 것을 갖다 바치는 노력을 하는지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음식을 나누는 것은 서로를 친하게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리고 그것만큼 서로를 연결하는 좋은 핑계는 없다. 나는 오늘도 좋은 핑계를 들고 할머니댁으로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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