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이 방황하는 프로이직러 (3)
끝없이 방황하는 프로이직러 (3)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아쉽다.
시간 낭비 없이, 합법적으로
미국에서 6개월 동안 거주하면서
생활해볼 기회를 얻었는데
활용을 더 알차게 하지 못한 것 같다.
미시간의 시골 학교로 가게 되어서
활용이 어려웠다.
다음번에 기회가 온다면 다신 놓치지 않으리라.
어쨌든 긴 비행 끝에 미시간에 도착을 했다.
도착 했는데,
코가 시릴 만큼 엄청나게 춥고
눈이 무릎 높이만큼 쌓여 있다.
이건 다른 년도에 비해 별로 안 온 편이라고 한다.
사실 모자를 잘 안쓰는 편인데
여기 있는 동안에는 항상
찬 바람에 귀가 너무 시려워서
패딩에 달려 있는 모자를 쓰고 다녔던 것 같다.
칼바람을 뚫고
모든게 낯설었지만
대학교 교직원의 도움을 받아
어찌저찌 기숙사 등록과 수강 신청도 마쳤다.
내가 미국에 오기로 결심했던 이유인 마케팅 과목과,
미국이니 미술 수업도 하나 신청했다.
친구들은 암벽 등반, 요가 등
더 액티브한 과목들도 신청했다.
그리고
고대했던 마케팅 과목의 첫 수업날
나는 완전히 당황해 버렸다.
매주 교재의 한 챕터를 읽고,
교재에 나와 있는 질문들에 답변을 준비해 가서
랜덤으로 이름을 호명하면 반 아이들 앞에서 발표를 해야 했다.
그리고 4학년들이 수강하는 Product Marketing 과목인 만큼
팀 프로젝트도 있었다.
한국에서도 이런 수업은 상당히 빡센 편인데,
미국에서 미국 현지 원어민 친구들과 이 수업을 진행해야 한다니
민폐가 될 수도 있고
너무 부담스러웠다.
그래도 해야지,
내가 선택한 건데.
막상 열심히 하기로 마음을 먹고 바라보니
사실 내 영어 실력이 부족해서 그렇지
마케팅 수업이나 학생들의 실제 실력은 한국과 비슷했다.
캐나다와는 달리 미국은
영어가 기본 언어라는 생각이 있어서
외국인이 영어를 못하면 조금 안 좋게 보는 경향이 있긴 하다.
부족했기 때문에 더 열심히 준비해 갔고
어느정도 팀원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교수님도 나를 조금 달리 보기 시작했다.
시골이라 그런지 나이든 교수님들은 북한에 대한 질문이 좀
미국은 이렇듯 학생들이 매주 직접 참여하고
Art 수업에서도 내가 그린 그림에 대해 설명하고 의견을 주고받는 등
토론하는 수업이 많았기 때문에
점점 내 의견을 말하는 데 익숙해졌다.
그리고 그들도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느꼈다.
성격도 각양각색이고,
술이나 파티도 좋아하는 학생만 좋아하고
동양인들보다 내성적인 성격을 가진 이들도 생각보다 있었다.
단지 다양성의 나라인 만큼
조직보다 개인을 조금 더 중시하고 존중하기 때문에
본인 의견을 내는 것에 주저함이 없었다.
그리고
밖에서 이어폰을 꼽고
스웩있게 리듬을 타고 춤을 추며 걸어가도
누구 하나 이상하다는 눈길조차 안 주고 관심이 아예 없었다.
모든 문화에 장단점은 딸려오지만
이런 것들이
자아가 강한 나와 잘 맞는다는 생각은 어렴풋 들었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날 교내에 국제학생 페스티벌이 있었다.
교내에 있는 외국인 학생들이
본교 학생들과 동네 주민들에게
각 나라의 음식을 대접하고
나라를 소개하는 포스터를 만들어서 전시하는 행사였다.
음식은 한국 담당 선생님께서 준비해 주셨는데(?)
우리가 배정받은 한국 음식은
김치볶음밥이었다.
김치볶음밥... 맛있지만
알다시피 미국인들은 매워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결국 마감시간 1시간 전까지
옆 부스 쌀국수에 밀려 고전했고
나는 문구를 하나 써 붙였다.
"SPICY FOOD COMPETITION"
그리고 한국의 매운맛을 한번 느껴보라고 부추겼다.
결국 미국에도
승부의식을 자극하면 몰려오는
악동들은 무조건 존재하기에
친구들과 함께
줄을 서기 시작했고
마감 시간을 15분 남기고
모두 나눠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