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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펭귄 Sep 19. 2023

마스크 정글 속에서

서바이벌

한국에서 치과를 가는 일이란, 일단 치통이 시작되면 근처 치과를 검색하고, 바가지를 씌우지 않는 곳, 되도록이면 양심치과를 찾아 조금 먼 거리도 마다하지 않고 찾아가 치료를 받는 거였다. 스케일링은 1년에 한 번 아니면 2년에 한 번 가까운 치과에서 받았다. 나는 유독 치과 소리와 냄새를 무서워해서 진료시간 동안 등뒤가 흥건할 정도로 식은땀을 흘리곤 했다. 치과의 입장에서 보면 나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뜨내기에 엄살을 부리는 환자였을 것이다. 지금은 Dental assistant로 일하며 상황은 완전히 전복되었다. 



호주에서 치과는 General과 Specialist로 분류된다. General에서는 스케일링과 체크업, 때우기, 크라운, 일반적인 케이스의 신경치료 와 발치가 이루어진다. 신경치료와 발치의 경우 환자의 신경과 뼈조직이 일반적이지 않은 경우이거나, 환자가 함께 병행하고 있는 치료의 종류가 너무 많아 전문의의 소견이 필요할 때 Specialist로 환자를 연결해 준다. 임플란트도 한 곳에서 다 하는 게 아니라 Genral과 Specialist가 서로 레퍼럴을 써가며 진행된다. 예를 들면 임플란트 발치는 Specialist에게서 받고 따로 General을 방문해서 치아 스캔을 하는 방식이다. 


내가 일하는 곳은 General로 멜번의 중상류층이 모여 있는 지역 중 하나에 위치하고 있고, 개원 한지는 20년이 넘었다. 그래서인지 80% 이상의 환자는 오랫동안 여기 치과 선생님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곳이 나의 첫 번째 직장이라 다른 치과와 비교하지는 못하지만 큰 틀에서는 다르지 않을 것 같다. 하루에 정기 검진을 받으러 오는 환자가 꽤 많은데, 한 명 당 30분 정도 할당된다. 그 시간 동안 치과선생님은 환자의 생활이 어떤지 혹시 더 복용하게 된 약물이 있는지 점검하고 구강상태를 점검한다. 구강 건강도 개인의 스트레스와 생활환경에서 받는 영향이 지대하므로. 

환자의 차트에 이런 사항이 기록되어야 하기 때문에 때로 대화는 꽤 길어지고 정말 시시콜콜한 환자의 사적인 이야기도 듣게 되기도 한다. 치과 선생님과 환자사이에 형성된 라포(rapport)와 신뢰 때문인지, 가끔 동네의 미용실에 앉아서 의도치 않게 듣게 되는 쇼킹한 사건들보다 더 굉장한 이야기를 접하게 되기도 한다. 호주에도 일하는 아들 딸 부부를 위해 손자 손녀를 돌보느라 심신이 지친 할머니 할아버지는 꽤나 흔해서, 육아 스트레스로 이를 갈게 돼 노쇄한 치아에 금이 가거나 턱관절 통증에 시달리는 경우도 많다. 생로병사의 무게는 국적을 가리지 않는다. 

치과선생님은 이 30분 동안 구강상태를 보고 다음 정기 검진일을 3개월 이후로 할지, 6개월 이후로 할지 결정하고, 방문 당일 날 다음 검진날 예약 해버린다(그리고 90% 이상의 환자는 이 예약날 검진을 위해 방문한다). 때로는 치과 선생님이 치실, 치간칫솔, 전동칫솔 사용을 교육하고 치아의 구조나 잇몸염증을 설명하는데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치료를 해야 하는 경우, 환자와 충분한 커뮤니케이션을 거쳐서 유기적으로 치료 계획을 세운다. 그도 그럴 것이 환자마다 보험회사에서 받는 혜택도 다르고, 예를 들어 크라운 한 개 가격이 평균 $2000 정도 (한화 165만 원 정도)이기에 이러한 소통을 거치지 않고는 환자와 신뢰를 쌓아 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좀 더 속으로 들어가 내 개인적인 근무환경으로 치과를 보자면, 5명의 치과 의사, 2명의 치위생사, 2명의 매니저 겸 리셉셔니스트, 그리고 나를 포함한 6명의 덴탈 어시스턴트가 근무하고 있다. 인종으로 보면 나를 포함 3명은 아시안, 나머지는 모두 코카시안이고, 나이대는 40대에서 60세 사이이다. 100% 여성의 성비로 이루어져 있고, 나를 제외한 모든 직원들은 여기서 서로 알아온 지 15년에서 20년 이상이 되었다. 나는 41세임에도 가장 나이 어린 직원이고 무엇보다 나는 그들과 달리 이민 1세대이다. 그들은 모두 자녀가 있지만, 나는 자녀가 없다. 내가 여성이라는 점을 빼면 이렇다 할 공통점을 찾기 힘들다.

 

근무를 시작한 지 며칠 후, 이 환경이 가지는 의미를 파악하고 나서, 직장생활을 어떻게 해야 할지 전략을 세워야 했다. 전 남편을 거치지 않고 호주 사회에 들어가 생으로 부딪히는 게 처음이라서, 성공적인 사회생활을 하겠다는 생각은 아예 접었다.  최소 분란을 만들 않는 사람, 선을 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사실 호주 사회가 가진 사람과 사람 사이의 선은 여전히 나에게는 미지의 영역이었다. 한국에서 갈고닦아왔던 사회적 기술은 호주에서의 나를 오히려 미숙한 사람으로 만들었기에, 인간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행동 만을 하기로 했다. 이를테면 가장 plain 한 사람이 되는 것. 시간을 지키고 정직하되, 일을 너무 열심히 하지도, 또 너무 안 하지도 말고, 어떤 사건에 대해 내 의견을 피력하지도 말고, 먼저 친절을 베풀고, 칭찬을 하고, 불평은 금지했고, 긍정적인 말만 하기로 했다. 선을 넘지 않도록 농담도 되도록 하지 않기로 했다.


개인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호주사회의 벽은 있지만 그래도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하는 건, 직장 동료의 연륜이다. 나이 많은 여성에게서 느껴지는 특유의 편안함이 있다. 다들 풍부한 경험이 있어서인지, 하나하나 처음부터 배워나가는 나를 격려하고, 기다려 준다. 내가 실수를 했을 때도, 실수 자체만을 보는 게 아니라 실수를 하게 된 환경을 다각도로 보고, 네가 이런 이런 점 때문에 그런 식으로 생각했을 테지만, 이 경우는 이게 맞아라고 이야기해 준다. 그렇게 말해 주는 동료의 말을 들으면 실수를 했어도 주눅만 드는 것은 아니라 확실히 안정감이 더 드는 게 사실이다.   


치과에 일하기 시작하면서 나의 생계는 안정되었고, 삶을 지킬 수 있게 되었다. 하루의 근무를 시작하지 전, 우리 모두는 안전안경과 마스크를 쓰고 환자를 맞이할 준비를 한다.  동료들과 틈틈이 스텝룸 키친에 모여 식탁에 놓여 있는 젤리와 초콜릿(이율배반적이지만 항상 설탕범벅의 간식이 놓여있다)을 먹어치우며 어젯밤 무슨 요리를 했는지, 넷플릭스의 드라마는 뭘 보고 있는지 자잘한 이야기를 하고, 웃고, 실망하고, 가끔은 분노하고, 저녁에 웃는 얼굴로 집으로 돌아간다.  


나는 책상 앞 벽에 '무채색 같은 사람이 되자'라는 메모를 붙여 놓고 매일 자신을 상기시켰다. 무채색이란 색상이나 채도는 없고 명도의 차이만을 가지는 색이다. 흰색, 회색, 검정 같은. 그 메모는 이런 자신의 틀을 벗어나기 위한 방편이었다. 미술 공부했던 흔적이 전반적인 성격으로 남아있는, 좋고 싫음이 비교적 분명한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했던 나를, 하루하루 조금씩 지워 나가기 위해 노력했다. 매일 받아들이는 새로움과 바쁨 속에서 어쨌든 부가적으로 내면의 고통도 함께 지워지는 것 같았다. 

사실 이게 자기 학대에 가까운 행동인지 아니면 자아를 벗어나게 하는 새로운 변화인지 아직 나는 잘 모르겠다. 시간이 좀 더 흐르면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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