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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펭귄 Oct 01. 2023

Hang in there

견디기

유난히 감정이 깔리는 날이 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사람들 사이로 숨어버린다는 게 이민의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않는 날. 유난히 친구와 가족이 그리운 날이다. 날씨가 유독 화창한 날, 약간은 덥지만 신선한 바람이 불고 하늘이 너무 맑고 파란 날, 바깥에서 무언가 해야 할 것만 같은 날, 혼자 산책을 하며 외로움을 느낀다.

외로움은 두려움일까, 꼼짝을 못 하겠다. 말려들면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움츠려진다. 


그런 이유로 사실 겨울에서 봄으로 변해가는 계절이 두렵기도 했다. 곧 여름이 될 테고 바다가 늘 옆에 있고 활달하고 활동적인 호주 사람들의 즐거운 표정을 보게 될 테니까. 겨울은 적어도 어둡고 두터운 색의 외투로 몸을 감싸고 칼바람에 미간을 찡그린 사람들을 보며 나도 무표정으로 나의 갈길을 갔다. 

이질감, 이걸 느끼지 않으려면 지금의 내가 해체되고 새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 

동질감,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이곳에서 느낄 수 없는 느낌이다. 이방인으로서 살아가는데 가장 명확하게 선을 그어주는 느낌이다. 나는 다른 사람으로서 그들 가운데 섬처럼 존재한다. 


시간은 모든 걸 무너트리고 부식시킨다. 시간은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 좋은 쪽으로든, 안 좋은 쪽으로든. 서서히 부서지는 사람의 육체처럼, 남편을 좋아하던 감정도 옅어졌고 허물어졌다. 과연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지는 것은 있는 걸까? 

그래도 시간밖에는 희망을 걸어보는 수밖에 없다. 모든 것에 익숙해지는 때가 올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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