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17일, 전역 후 3주간 느낀 것에 대하여.
누구나 흔히 경험하는 20대 때의 삶에 대한 방황을 시작으로 입었었던 국방색 옷과 검은 군화를 벗어 던진 지 어느덧 약 3주가 지났다. 방황에 관한 정답의 작은 실마리라도 찾기 위해 떠났던 사회를 떠난 1년 9개월의 시간은 방황에 대한 생각을 지우기에는 충분했다. 밤낮으로, 휴일 없이 일하며, 선임들과 동기들, 후임들과의 인간관계를 위한 삶을 살았다. 군에 몸을 담으면서 배운 것은 크게 인간이라는 생명체에 대한 것과 나라는 사람에 대한 것, 두 가지이다. 수많은 사람들을 한 공간에서 함께 살게 했을 때, 인간은 서로 간의 거리감과 그 속에서 탄생하는 부산물들에 관하여, 끊임없이 고뇌하고 압박받는다. 그러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본인의 마음 한편에 피어난 고정관념을 마주치는 일도 다분하다. 누구는 그것을 '사람 보는 눈'이 생겼다고 말한다. 그치만, '아, 이 새끼는 조금 모자라는가.', 혹은 '존나 답답하네.'라는 험담을 상대와 10분밖에 말해보지 않고 떠벌리고, 하소연하는 장면들을 보면, '너 걔에 대해서 다 알지도 못하면서 왜 그렇게만 생각해?'라는 말이 목구멍을 뚫고 나오려고 하지만, 매번 참는다. 그 사람의 어떤 모습에서 과거의 내 모습이 보일 때도 있고, 그 사람의 심정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미없고, 힘들고, 지루하기만 한 군 생활을 보내는 사람들에게는 '모자른 사람'은 항상 그들의 혓바닥을 심심하지 않게 해주는 광대이기 때문이다. 혀를 함부로 놀리는 이들도 분명 본인이 하는 이야기가 좋지 않은 내용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누군가에게 공감을 요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게 하면, 본인이 하고 싶은 험담을 죄책감 덜고 할 수 있기에. 나 또한 이 일이 있기 전의 군생활 동안, 그러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그러다, 어느 시점에 고정관념으로 가득 차버린 내가 눈동자 속에 비친 모습으로 내 눈을 바라 보고 있었다. 그때 이후로, 고정관념과 사람 보는 눈 사이의 어딘가의 내 위치를 명확하게 하려고 나의 즐거움을 위한 사고를 버리고 관계에 있어서 필요하다고 느낀 감정에 충실했다. '냉정한 원칙은 큰 틀에 적용하되, 인간관계와 같은 작은 영역에서는 감정과 사랑으로 포용해도 살아갈 수 있다.' 이는 알베르 카뮈의 철학적 입장과 유사하다. 나는 군인이었지만, 그 전에 한 명의 인간이다. 각기 다른 양상을 는 계급사회 속 인간들은 알베르 카뮈의 철학을 일부분 학습하고 실천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는 꼭 계급사회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2025년 6월 17일. 수많은 부대원의 축하 및 감사 인사를 받으며 전역을 명 받았다. 고정관념을 의식적으로 견제하다 보니, 꽤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선임으로 남겨질 수 있었던 것일까. 확실하게 그렇다고 말하기에는 나는 아직도 내가 솔직하고 착하지 않다고, 그렇다고 나쁘다고 하기도 예매한 경계에 서 있다고 느낀다.
전역의 달콤함을 온몸으로 만끽한 나를 쉴 새 없이 가장 먼저 환영해 주는 것은 부대에서 적어 놓은 비현실적인 버킷리스트를 제치고 앞서 달려온 차가운 현실인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 요즘이다. 꿈같은 삶 속에서 연속적인 꿈들의 창조를 덮치려는 파도가 저 멀리서 서서히 조여 오는 것처럼. 21개월의 꿈속의 경험들이 인간적인 면모의 성장은 도왔으나, 방황하는 삶을 해결하기엔 짧은 시간이었던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든다. (딱히 군에 간 시점을 후회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사회가 정해놓은 길을 따라 걷는 것과 마음이 시키는 일을 하는 것. 전자가 싫어서 후자를 선택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전자의 삶을 잠시 내려놓고 후자로의 삶을 살아보고 싶은 것뿐. 나는 그저 나로서 살아보고 싶은 것뿐. 나는 무엇이 마음에 걸려 주저하고 있는가.
전역 전에 스스로와 약속한 것은 딱 한 가지.
전역 후 남은 6월과 7월에는 여행을 위한 삶을 살아보는 것.
여행을 떠나기로 다짐하기까지 영향을 준 것은 다름 아닌, 2023년 7월 3일에 발매된 빈지노의 'NOWITZKI'(노비츠키). 굉장히 개인적인 내용의 가사들로 가득 채워진 노래들의 집합소임에도 불구하고 군 생활 속 고된 삶을 살았었던 내게 수많은 메시지와 조언을 전달해 준 앨범이다. 세상 속 다양한 경험을 찾아 떠나고 사랑하고 공감하며, 그 과정에서 새로움을 느끼며, 나를 알아가고 정답은 없지만, 본인의 길에 대한 확신을 갖는 삶을 입체적으로 머리속에 그려준 노래들이 여행을 결심한 이유이다. 여행을 떠나면 내가 모르는 내 모습을 찾고 내가 살아보고자 하는 인생을 대하는 방식을 구체화 수 있을 것 같았다.
꺼내 진짜 Monet 모니터가 아닌 벽에 걸려 있는 거로
모작도 다 짜져 나는 진짜를 원해
- Monet
내 To do list는 Maximalist 이런저런 게 날 가로막고 있어
몇 주째 엎치락뒤치락 마치 주짓수 주도권 놓치고 있어
- In Bed/Makgulli
내일 모레인 없어 지금을 즐겨 머리 긴 승려처럼 나는 Nirvana를 느껴
Rock star처럼 살다 가버릴 운명 잘 봐라 나같이 사는 놈
두 명 있으면 하난 짭이야 분명
- Travel Again(feat. Cautious Clay)
시발 콤플렉스 투성이라도 난 날 사랑해
- Coca Cola Red(feat. oygil)
틀에 처박혀 살았다면 뭘 해도 남다른 게 나오겠냐고 이게 내 과학
- 990(feat. Kim Ximya)
내 하루의 모양을 내 꿈이랑 싱크로를 맞출래 하루
탈출해 당장 슬럼프에서 맨날 똑같이 살지마 서울에서
뛰어내릴 준비해라 틀에서 너의 머리가 묶였다면 풀어헤쳐
- 단 하루
전역 후 첫 여행은 6월 27일. 목적지인 대만에 도착하기 하루 전, 오랜만에 한 아빠와의 산책이 나에게 다시 한번 고민거리를 던져준 시간이 되었다. 나를 가장 오랫동안 곁에서 본 남자가 내 삶을 다방면으로 고려하고 해주는 조언을 들었다. 그 조언들은 분명 나를 위한 것임을 알면서도, 동시에 나를 혼란스럽게 하기에 피하고 싶다. 나는 지금 여행을 통해 현실을 피하려는 도피자인가, 아니면 나를 잡아두려는 사회의 틀을 깨고 피어나려는 새싹인가.
대만 여행을 통해 몸소 알게 된 사실이 있다면, 대만 사람들의 몸에 밴 친절함과 시민의식의 몇몇 부분들이 우리나라보다 뛰어나다는 점이다. 그들의 예의와 예절, 친절함과 배려. 실질적으로 법의 강제력이 닿기 힘든 곳들을 주체적이면서 전체적으로 지켜 나간다는 것.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것들을 당연히 여긴다는 그들의 사고방식이 너무나도 훌륭하게 다가왔다. 좋은 직장에 다니는 것, 좋은 사람들을 곁에 두는 것, 지혜로운 지도자를 만나는 것, 훌륭한 통치자 아래에서 살아가는 것, 이 모든 것들이 자신의 인생에 중요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른 사고와 습관에서 하나씩 피어나기 시작할 수 있다고 확장해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바른 사람이 되는 것이 인생의 목표인 나로서는 이런 대만 사람들의 사고가 멋지게 느껴졌다.
대만을 여행하면서 느낀 또 다른 점은 그들의 삶에는 상대적으로 대한민국에 비해 여유가 있어 보였다. 길거리를 보고 있으면 사람들의 생활습관을 알 수 있다. 타이완의 수도인 타이베이(Taipei, 臺北)에 머물렀음에도 매장들의 오픈과 마감 사이의 시간이 짧고, 그래서 그런지 저녁에는 거리와 버스에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물론 클럽이나, 지하철에 퇴근하는 사람들, 놀러가는 사람들 등 꽤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비해 적었다) 항상 느끼지만, 한국 특유의 '빨리빨리' 문화는 마치 내가 잘 살고 있다는 생각에 쉽게 빠지게 만드는 것 같다. 물론 시기마다, 그리고 사람에 따라 삶의 우선순위가 다르겠지만, 서두르는 발걸음이 실질적으로 자신의 삶에 긍정적으로 도움이 되는 행동인지, 아니면 이 또한 그저 사회의 흐름 속에서 목적의식 없이 흘러가는 행위 중 하나인지 나는 확실하게는 모르겠다.
20대의 첫 해외여행을 되돌아봤을 때, 대만의 맛있는 음식을 먹고 유명한 자연 명소와 야경을 보는 것도 물론 좋았지만, 대만의 길거리 풍경을 보며 산책하는 것과 하루의 일정을 끝내고 호텔로 들어와 땀에 찌든 옷들을 벗어두고 샤워 후 침대에 걸터앉아 맥주 한 캔과 노래를 들으며 잠에 드는 것이 가장 좋았던 것 같다. 꿈속에서 현실에 대해 짧은 생각을 하면서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 약간의 괴리감과 너무나도 편한한 포근함과 함께 공존하는 시간. 그 시간 속 내 귀에 들리는 것은 창밖의 오토바이 소리, 방안의 에어컨 소리, 그리고 염따의 '살아숨셔4'.
이 또한 작사가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은 노래들로 가득 차 있지만, 오랫동안 상상했던 여행을 즐기는 나의 모습보다 과거의 삶을 되돌아보고 앞으로와 관련하여 환경의 변화와 주변인들의 삶 등의 몇몇 요인들로 인해 조금은 현실적인 걱정들을 한 내 모습과 이 노래의 주인과 완전히 똑같지는 않지만, 감정의 유사성을 바라보았을 때, 꽤 높다고 느꼈는지, 왠지 모르게 여행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버스 안에서 계속해서 듣게 되었다.
난 아무렇지 않은 척 했지만 두려워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난 절대로 안 부러져 내 마음은 무적인 줄만 알았어
- 갓생
전부 다 바람에 바람에 바람에 날려버리고 싶어
나도 싫은 나가 있어 내가 싫은 내가 있어
- 윽!
아 슈발 나 이렇게만 살다가 돌아가실 수는 없잖아 자전거만 타다가
난 브리옹과 이디야에서 얼음 부시다가 뭐든 만들기로 했지
돈 Call me
- 더콰이엇
거울아 거울아 누가 제일 잘 나가니 말해봐 당장
- IE러니
늘 래퍼라고 나를 소개하는데 제대로 된 앨범도 하나 없는 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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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아빠의 책상 앞에서 나는 약속을 했지 서른
너무 늦은 건 아닌가 어른
이 되어 버렸더라고
다시 한번 제대로 해보겠다고
한 번이라도 잘못되더라도 상없어 이건 나의 길이기에
널 다시 만나러 갈라고
- 그때 우리는
2025년 7월 7일. 이틀 뒤 제주도로 홀로 떠난다. 지금의 심정으로는 이번 연도는 한국이 원하는 삶을 살고 싶지 않다. 군대 가기 전 몇 개월, 군대에서 1년 9개월, 그리고 전역하고도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는데, 이거 하나는 명확하다. 다르게 살아보지 않으면 정말로 땅을 치고 후회하겠다는 것. 어떻게 해도 미련이 남겠지만 그만큼 새로움을 남기고 싶다.
(분명한 정답이 없는 곳에서 정답을 찾고 있는 내가 가끔은 안쓰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