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위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공릉천을 내려다본다. 탁한 물줄기가 S자를 그리며 흘러가고, 갈대밭 사이로 하얀 왜가리? -정확하지 않다- 한 마리가 느릿느릿 걸어간다. 한강처럼 복작대지 않는 이 길이 좋다. 조깅하는 사람도, 강아지 산책시키는 주민도, 심지어 나처럼 자전거 타는 사람도 많지 않다. 그냥 적당히 한가롭고, 적당히 외롭다.
한강 자전거도로를 탈 때면 늘 긴장한다. 앞에서 갑자기 멈춰서는 사람, 예고 없이 튀어나오는 아이들, 이어폰을 끼고 직진하는 자토바이들, 기차놀이 하는 십여대의 로드 라이더들. 모든 게 예측불가능하다.
반면 공릉천은 다르다. 여기서는 속도를 조절할 수 있고, 멈춰서 풍경을 바라볼 여유도 있다. 저 멀리 북한산자락이 보이고, 억새가 바람에 일렁이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도시 한복판에서 이런 한적함을 만날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공릉천 자전거 도로를 달리다 보면 갈대와 눈이 마주친다. 정확히는 갈대가 나를 먼저 본다. 바람이 불 때마다 수천 개의 고개가 일제히 나를 향해 끄덕인다. 마치 “백수 아재~ 오늘도 왔는교~" 하는 것 같다. 나는 페달을 천천히 밟는다. 갈대 사이로 흐르는 바람소리를 들으려면 아주아주 천천히 가야한다.
갈대가 이곳의 진짜 주민이다. 갈해전술, 일단 숫자로 밀어부친다. 봄에는 연두색 새순으로 시작해서, 여름에는 짙은 초록으로 무성하게 자라고, 가을이면 노랑노랑 바람에 날린다. 겨울에도 꿋꿋하게 서 있다가, 다시 봄이 오면 새로운 생명으로 돌아온다. 사계절 내내 이 강변을 지키는 파수꾼들이다.
갈대밭 사이로는 작은 오솔길들이 보인다. 너구리나 꿩이 다니는 길 일까?
가끔은 예상치 못한 만남도 있다. 1미터가 넘는 뱀이 자전거 도로를 유유히 횡단한다. 나는 평생 본 뱀보다 공릉천 자도에서 본 뱀이 더 많다. 처음엔 깜짝 놀라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손에 식은땀이 났다. 하지만 뱀은 나를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 그냥 자기 갈 길을 가고있었다.
두 번째 만남에서는 조금 더 침착했다. 자전거를 멈추고 뱀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렸다. 그 녀석은 정말로 느릿느릿했다. 아마 이 세상에서 가장 여유로운 존재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세 번째 만남부터.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으려 시도했지만 생각보다 빨리 수풀로 사라져 쉽지않았다. 이상하게도 뱀을 만날 때마다 공릉천이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한강에서는 절대 경험할 수 없는 일이었다. 거기서는 사람만 만나니까. 여기서는 뱀도 만나고, 왜가리도 만나고, 이름 모를 새들의 지저귐도 들을 수 있다.
공릉천 자전거길을 달리다 보면 자꾸만 이런 생각이 든다. 도시와 자연이 어설프게 만나는 경계선에서, 뱀은 자기만의 속도로 도로를 건너고, 갈대는 계절의 리듬에 맞춰 자라고, 왜가리는 물고기를 기다리며 서 있다. 모든 것이 느릿느릿하다. 그리고 그 느림 속에서 진짜 여유를 배운다.
뱀발: 그나저나 송촌교까지 연결되는 공사구간은 언제 완공되는 건지. 매번 지나갈 때마다 “공사중” 표지판만 덩그러니 서 있고, 공사장비들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뱀도 갈대도 다 좋지만, 자전거 타는 사람 입장에서는 제대로 된 도로가 필요하다. 파주시!! 일 해라!! 뱀보다 느려서 되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