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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가 이끄는 아이리스의 작전팀은 고려항공기 폭파를 성공적으로 임무 완성했다. 현준은 마지막까지 본인의 임무가 핵테러란 사실을 몰랐다. 현준의 임무는 한 남자를 어떠한 CCTV 화면에도 잡히지 않게 양양공항의 주차장에 세워진 승합차에 오르게 하는 일이었다.
레이는 그 남자를 깍듯이 대접했다. 레이는 그 남자를‘권영춘’이라고 불었다. 그는 북한 정권의 실세인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었다. 게다가 그는 공중폭발한 고려항공기에 탑승해 있어야 하는 인물이었다.
이제껏 현준이 맡았던 임무는 특정요인에 대한 암살이었지 항공기 폭파와 같은 대량살상이 아니었다. 뭔가 잘못돼 가고 있었다. 게다가 수하물 창고에서 봤던 그 여자. 그 여자를 본 뒤로 현준은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새벽, 핵테러 사건으로 인해 공항, 항만의 경계가 삼엄해 졌다. 현준과 일행은 권영춘을 데리고 일본으로의 밀항을 시도한다. 그러나, 승희와 준호, 상현의 추격을 받고 쫓기게 된다. 쫓고 쫓기는 상황에서 몇 명의 아이리스 요원들이 사살된다. 그리고 레이와 권영춘을 먼저 보낸 현준은 혼자서 쫓아온 승희와 마주하게 된다.
현준을 본 승희는 일순 굳어 버린다.
권총을 쥔 승희의 손은 힘없이 아래를 향한다. “...현준씨?”
하지만 현준.. 아니 켄은 대답대신.. 들었던 권총의 방아쇠를 당긴다. 복부에 총상을 입은 승희는 그 자리에 쓰러진다. 승희를 내려다보는 현준의 시선엔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낯섦. 현준이 뒤돌아서는 순간, 피 묻는 승희의 손이 현준의 발목을 잡았다.
“...혀... 현준씨...”
켄(현준)은 이 여자가 자신을 다른 누군가로 착각한단 생각이 들었다.
“처음 듣는 이름이야.”
라고 말한 현준은 쓰러진 승희의 숨통을 완전히 끊으려는 듯 다시 권총을 겨눴다. 하지만 급히 달려온 준호가 한 박자 앞섰다. 준호가 쏜 총에 옆구리를 관통 당하곤 서둘러 몸을 피하는 현준. 달려온 준호는 부상이 심각한 승희를 보호하며 현준을 더 이상 쫓지 않는다.
앰블런스로 급히 호송되는 승희는 자신을 엎고 뛰느라 셔츠가 피범벅이 된 준호에 게 사력을 다해 말한다.
“약속해. 넌 그 사람.. 못 본거야.”
승희는 의식을 잃는다.
***
현준은 레이, 권영춘 등과 합류한다. 레이는 현준의 부상을 임시로 치료해 준다.
밀항선을 타고 일본으로 향하는 세 사람. 현준은 출혈에 의한 고열에 잠깐잠깐 의식을 잃는다. 그때마다 현준은 자신을 현준이라고 부른 승희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리고 아주 짧게, 몇년전에 있었던 승희와의 추억을 떠올리는데...
“왜 그래? 켄. 안 좋은 꿈이라도 꿨어?” 다가온 레이가 물었다.
현준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얼버무렸다. 왠지 승희에 대한 이야기를 레이에게 하지 않는게 좋을 것 같단 느낌이 있었다.
이틀이 걸려 일본 홋카이도의 오시마 반도까지 오는 동안, 현준은 내내 승희에 대해 생각했다.
‘누구지? 나를 아는 사람인가?’
총에 맞고도 현준의 발목을 잡았던 그녀의 표정은.. 애잔함 이었다.
‘총을 쏜 나에게 왜 그런 표정을 보였던 거지?’
현준은 머리가 복잡해 졌다. 레이는 그런 현준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북해도에서 현준은 레이, 권영춘과 헤어진다. 혼자서 아키타의 료칸으로 돌아온 현준. 총상은 깔끔하게 관통해서 더 이상의 치료 는 필요 없었지만 염증에 의한 고열이 지속됐다.
돌아온 현준을 료칸의 식구들이 반갑게 맞이해 준다. 조촐한 저녁 파티. 현준은 몸이 안 좋다는 핑계로 코사쿠가 권하는 사케를 마다한다. 눈치 챈 리에는 현준의 방으로 조용히 찾아와 현준의 상처를 소독해주고 해열제를 준다. 현준을 보는 리에의 시선은 안쓰러움. 현준도 리에의 시선을 느꼈지만 마음을 열진 않는다. 약에 취해 잠든 현준을 한동안 지켜보는 리에. 현준의 머리카락을 넘겨보고 현준의 뺨을 손등으로 느껴보던 리에는 문밖의 인기척을 느끼고 방문을 열어본다.
현준의 방 밖에는 저번처럼 현준의 뇌파등을 체크하기 위한 의료팀이 코사쿠와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현준은 꿈을 꾼다.
들것이 실린 듯 흔들리며 옮겨지는 자신의 옆에 레이가 보였다. 레이는 현준을 내려다보며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머리에 총상’ ‘우리쪽은 아닙니다.’ ‘출혈이 심각합니다.’ ‘동공 반응도 느려지고 있어요!’
그러다 현준의 머릿속에 갑자기 파고드는 승희의 웃는 얼굴.
제주도에서 총상을 입었던 현준은 아이리스 요원인 레이에 의해 일본으로 옮겨진다. 일본에는 이미 현준의 수술을 집도할 최고의 의료팀이 대기중이었다.
제주도에서 일본의 미군기지 까지 오는 두 시간 동안.. 현준은 몇 번이나 심장이 정지했었다. 레이는 현준을 살리기 위해 수혈과 아트로핀 등을 사용했고 아트로핀이 현준의 몸속에 퍼질때 마다 현준은 승희의 얼굴을 떠올렸다.
“외상성 뇌손상이 심각해!”
“우후방측두부로 뚫고 들어간 총알은 전두엽 직전에 박혀있다.”
“일시적이 아닌.. 영구적 기억상실이 올수도 있어!”
“이 남자의 인생이 지워진다. 그래도 해?!”
일본의 미군 병원에 도착한 현준은 수술실에서 거기까지 들었던 것 같다. 마지막 순간에 현준은 간절하게 기도했다.
‘사랑하는 승희를... 기억할 수 있게...’
하지만 총알을 빼내는 뇌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현준이 의식을 찾았을 땐 현준은 깨어나기 전의 어떤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당신은.... IRIS 입니다.”“지금부턴... 우리와 함께 합니다.”
현준은 꿈에서 깨어난다. 누워있는 자신의 곁에 밤새 현준을 간호한 듯 한 리에가 몸을 구부린 채 잠들어 있었다. 리에에게 담요를 덮어준 현준은 밖으로 나왔다. 꿈을 기억해 내려 애썼다. 분명 꿈속에서 봤던 그 여자의 모습은.. 현준의 인생이 다시 시작된 날 이전의 기억 같았다.
하지만 당분간은 누구에게도 그 얘기를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런 현준의 모습을 먼발치에서 보던 코사쿠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