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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이 지나고, 민철로부터 연락이 왔다.
"현성아, 연결됐어. 5분 후에 백악관에서 전화할 거야."
상황실의 모든 사람들이 긴장했다. 현성은 손바닥에 땀이 나는 것을 느꼈다. 5분 후, 전화가 울렸다.
"안녕하세요."
대통령의 목소리는 침착했지만, 현성은 그의 손이 떨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소행성 충돌 발표를 30분만 미뤄주실 수 있겠습니까?"
"이미 언론이 대기하고 있고, 준비도 모두 끝났습니다. 미룰 수 없습니다."
"대통령님, 4개월이면 충분한 대비를 할 수 있습니다. 소행성을 막을 수 없다면 최대한 많은 생존자들과 인류의 미래를 위한 준비라도 할 수 있게 해주세요."
"그것은 각국이 알아서 할 일입니다."
"기습적인 발표는 전 세계적인 혼란을 가져올 것입니다. 정부의 통제가 불가능해집니다."
"이해합니다만, 결정은 번복할 수 없습니다."
현성은 급히 메모를 써서 대통령에게 건넸다.
'ISS의 권성준 우주인. 유일한 생존자. 기록 보존.'
대통령이 메모를 읽고 고개를 끄덕였다.
"대통령님, 제안이 있습니다." 한국 대통령이 말했다.
"들어보겠습니다."
"현재 국제우주정거장에 우리나라의 권성준 우주인이 혼자 머물고 있습니다. 그는 소행성 충돌 과정을 목격하고 기록할 수 있는 유일한 생존자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요?"
"그의 기록을 통해 지구를 재건할 수 있습니다. 미국이 그 역할에 도움을 주시기 바랍니다."
현성이 또 다른 메모를 건넸다.
'핵 미사일 기지, 지하 벙커, 인류 문명 보존, 4개월간 준비'
"미국의 핵 미사일 기지와 지하 벙커에 인류의 미래를 위한 데이터를 보존해주세요. 씨앗, 종자, 문명 복구를 위한 컴퓨터, 기술 자료... 4개월 동안 최대한 많은 것을 준비하자는 겁니다."
미국 대통령이 침묵했다.
"흥미로운 제안이군요."
"우리도 최대한 협력하겠습니다. 하지만 그러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갑작스러운 발표는 모든 것을 불가능하게 만듭니다."
다시 침묵.
"10분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상황실의 모든 사람들이 숨을 죽이고 기다렸다. 현성은 시계를 보며 초를 세었다. 300, 299, 298... 5분이 지나고,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다시 연락이 왔다.
"발표를 취소하겠습니다."
상황실에서 안도의 한숨이 터져나왔다.
"대신, 제안하신 계획을 구체화해야 합니다. 내일 우리 팀을 보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대통령님."
전화가 끊어지고, 상황실은 잠시 정적에 빠졌다.
비서실장이 말했다. "일단 위기는 넘겼지만, 이제 시작입니다."
현성은 창밖을 바라봤다. 서울의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아무것도 모른 채 일상을 시작하고 있었다.
미국 대통령의 발표 취소 소식이 전해진 다음 날, 현성은 급히 가방을 챙기고 있었다.
"여보, 갑자기 여행이라니?" 수진이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어제... 어제 하루 종일 정말 중요한 일들이 있었어. 그걸 겪고 나니까 깨달았어. 우리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지." 현성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는 아내와 딸의 손을 잡았다. "앞으로 몇 개월 동안... 아니, 아마 삼 사 개월 가까이 집에 거의 못 들어올 것 같아. 미국과 함께 엄청난 프로젝트를 시작해야 해.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프로젝트가 될 거야."
수진은 남편의 표정에서 심각함을 느꼈다. "무슨 일인지는 못 말해주는 거지?"
"미안해. 하지만 이것만은 확실해. 지금 이 순간, 너희와 함께 있는 게 가장 중요해."
현성은 가족과 함께 강원도의 작은 펜션으로 향했다.
"아빠, 이거 어떻게 만들어요?" 서연이 밀가루 반죽을 하며 물었다.
"이렇게..." 현성은 딸의 작은 손에 자신의 손을 겹쳐 반죽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수진이 토마토소스를 만들며 웃었다. "우리 딸이 아빠하고 피자 만드는 게 소원이었는데, 드디어 이뤄지네."
그동안 현성은 이런 소소한 행복들을 놓치고 살았다. 국가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가족을 소홀히 했다. 하루 전, 세상의 운명이 결정되던 그 순간 이후로 더욱 그랬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시간이 없었다.
"아빠가 그동안 바빠서 미안했어, 서연아."
"괜찮아요! 아빠가 중요한 일 하는 거 알아요."
현성의 가슴이 먹먹해졌다.
저녁이 되어 직접 만든 피자를 먹으며 맥주를 마셨다. 수진과 서연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이런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이제야 깨달았다.
해가 지고 밤하늘에 별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현성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저 멀리서 다가오고 있을 소행성을 상상해봤다.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그것은 분명히 지구를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유독 밝게 빛나는 별 하나가 현성의 눈에 들어왔다. 권성준 우주인이 있는 국제우주정거장일까? 마지막 순간까지 그에겐 사실이 전달되지 않을 것이다. 자신만 살아남고 모두가 죽는 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 들일까?
홀로 우주에서 인류의 마지막을 지켜볼 그의 심정은 어떨까?
현성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4개월 전 그날 밤, 민철로부터 온 메시지가 하나 있었다.
[현성아, 너 덕분에 인류에게 기회가 생겼어. 고맙다.]
현성은 미소를 지었다. 정말 잘한 것일까? 약 4개월의 시간을 벌어주긴 했지만, 결국 종말은 피할 수 없었다. 다만 조금 더 준비할 시간을 얻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 순간, 가족과 함께 별을 바라보는 이 순간만큼은 완벽했다.
"여보." 수진이 현성의 손을 잡았다.
"응."
"고마워."
"뭘?"
"이런 시간 만들어줘서."
현성은 아내의 손을 꼭 쥐었다. 그리고 서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하늘의 별은 여전히 밝게 빛나고 있었다. 아름다웠다. 그리고 슬펐다. 현성은 마지막으로 중얼거렸다.
"우리가... 최선을 다했지."
별빛이 그의 얼굴을 비췄다. 40년을 살면서 가장 평화로운 밤이었다. 그리고 인류에게 주어진 마지막 평화로운 밤 중 하나였다.
내일이면 모든 것이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들에게는 서로가 있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