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를 켜면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화려한 썸네일, 3~5초짜리 영상들이 끝없이 스크롤된다.
날개 돋친 고양이, 우주를 배경으로 춤추는 로봇, 번개를 뿜는 용. 모두 AI가 만든 것들이다.
어제도 봤고, 오늘도 보고, 내일도 볼 영상들. "와, 대단하다"는 감탄은 이제 3초도 못 간다. 4초째부터는 다음 영상으로 넘어간다. 그리고 그 다음 영상도, 그 다음 영상도 비슷하다. 현란한 CG, 화려한 색감, 놀라운 디테일. 그런데 이상하다. 아무것도 기억에 남지 않는다.
광고주들이 눈치챘다. "굳이 제작사에 수천만 원 줄 필요 없잖아?"
그래서 공모전을 연다. 상금 500만 원. 응모작은 5천 개. 광고주는 웃는다. 5천 개 중에 하나만 건져도 대박이니까. 심사위원들은 밤새 영상을 본다. 그런데 점점 지친다. 다 똑같아 보이기 시작한다. 화려한 기술, 멋진 이펙트, 그런데 뭔가 빠져있다. 뭘까?
사람이다. 사람 냄새가 안 난다.
"AI 영상으로 월 500만 원 버는 법" 이라는 제목의 강의가 올라온다. 수강생들은 희망에 부푼다. "나도 할 수 있어!" 프롬프트 작성법을 배우고, 편집 기술을 익히고, 며칠 밤을 새워 첫 작품을 올린다. 조회수 47. 좋아요 2개. 그중 하나는 엄마.
댓글 하나. "기술은 좋은데 뭔가 아쉽네요." 뭐가 아쉽다는 건지 본인도 모른다. 그냥 아쉽다. 마음이 안 움직인다.
문제는 간단하다. 너무 쉬워졌다는 것. 누구나 만들 수 있으니 모두가 만든다.
공급이 폭발한다.
작년 이맘때만 해도 AI 영상 제작자는 몇 백 명이었다. 지금은? 몇 만 명이다.
그런데 광고주는? 여전히 그 숫자다.
수요는 그대로인데 공급만 천 배로 늘어났다. 경제학 교과서 첫 페이지에 나오는 그래프가 현실이 된다. 공급 곡선이 수직으로 치솟고, 가격은 바닥으로 곤두박질친다.
"10만 원에 해드립니다!" "저는 5만 원이요!" "저는 무료로 일단 만들어드릴게요!"
이제 누가 이기나? 제일 싸게 부르는 사람. 아니, 정확히는 아무도 못 이긴다. 다 같이 진다.
공모전은 계속 생긴다. 화장품 브랜드, 자동차 회사, 음료 회사. 모두가 AI 영상 공모전을 연다.
"우리 제품을 AI로 표현해보세요!"
응모작들이 쏟아진다. 심사위원들은 처음엔 신기해한다. "오, 이거 괜찮은데?" 그런데 50개쯤 보면 피곤해진다. 100개쯤 보면 짜증난다. 200개쯤 보면 포기한다. 다 비슷하다. 테마는 있다. 테크닉도 있다. 그런데 캐릭터가 없다. 누가 나오는지, 왜 나오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 그냥 예쁘거나 멋진 무언가가 화면을 스쳐간다. 5초 끝. 그게 다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결국 스토리다.
록키가 위대한 이유는 권투를 잘 해서가 아니다. 빈민가 건달이 챔피언과 맞서는 용기 때문이다.
그래비티가 명작인 이유는 우주가 아름다워서가 아니다. 딸을 잃은 여자가 다시 살아갈 이유를 찾아가는 여정 때문이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가 가슴을 치는 이유는 복싱이 멋있어서가 아니다. 아버지와 딸이 될 수 없었던 두 사람의 비극적 사랑 때문이다.
스토리텔링. 캐릭터. 빙산 아래 숨겨진 서사. 그게 컨텐츠의 전부다.
그런데 지금 쏟아지는 AI 영상물 중에 그런 걸 가진 작품을 본 적이 있나? 나는 없다. 화려한 용이 나와서 불을 뿜는다. 그래서? 그 용은 누구고, 왜 불을 뿜고, 무엇을 원하는가? 모른다. 아무도 신경 안 쓴다. 그냥 용이 멋있으면 됐다고 생각한다.
미래 도시를 배경으로 로봇이 걷는다. 그래서? 그 로봇은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고, 무엇을 느끼는가? 역시 모른다. 그냥 도시가 멋있고 로봇이 간지나면 됐다고 생각한다.
아니다. 그게 전부가 아니다. 사람들은 멋진 걸 보고 싶어하는 게 아니다. 마음이 움직이는 걸 보고 싶어한다.
AI 영상의 미래는 두 갈래로 나뉠 것 같다.
하나는 홍수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수많은 개인들과 소규모 업체들. 단가는 계속 떨어지고, 경쟁은 점점 치열해진다. 비슷비슷한 퀄리티, 비슷비슷한 아이디어. 누가 먼저 만들었는지도 모를 판박이 영상들. 살아남으려면 더 싸게, 더 빠르게 만들어야 한다. 밤샘 작업은 기본이고, 수익은 점점 줄어든다.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모른다. 어쩌면 1년, 어쩌면 6개월. 그 전에 지쳐서 그만두거나, 아니면 다른 직업을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
다른 하나는 진짜 게임 체인저들. 넷플릭스가 투자할 만한, 극장에서 상영될 만한, 사람들이 돈 내고 볼 만한 작품을 만드는 이들. 기술만으로는 안 된다. 스토리가 있어야 하고, 감정이 있어야 하고,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 캐릭터가 살아 숨쉬어야 하고, 빙산 아래 서브텍스트가 흐르고 있어야 한다. 관객이 5초 후에도, 5분 후에도, 5시간 후에도 기억할 만한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쉽지 않다. 그래서 가치가 있다. 그래서 살아남는다.
누군가는 분명 곧 만들어낼 것이다. 텐트폴에 가까운 AI 영상물을. 그리고 그것은 분명 사람 냄새가 풍기는 스토리를 담고 있을 것이다. 주인공이 있고, 장애가 있고, 초목표가 있고, 변화하는 캐릭터 아크가 있을 것이다.
화려한 CG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걸 아는 사람. 기술은 도구일 뿐이고, 진짜 무기는 이야기라는 걸 아는 사람. 그 사람이 판을 바꿀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수천, 수만 명은 그저 구경꾼이 될 것이다.
지금 당신이 만들고 있는 그 5초짜리 영상은 어느 쪽인가? 내일이면 잊힐 조회수 100짜리인가, 아니면 10년 후에도 회자될 작품인가?
AI는 도구일 뿐이다. 망치가 아무리 좋아도 집을 짓는 건 사람이다. 프롬프트를 아무리 잘 써도 이야기를 만드는 건 결국 당신이다.
기술에 취해 본질을 잊으면 안 된다. 사람들이 원하는 건 화려한 영상이 아니라 마음을 울리는 이야기다. 그걸 잊는 순간, 당신은 5천 명 중 하나가 된다. 차별화는 기술이 아니라 이야기에서 나온다.
함께 하실 분은 일단 수다나 떨어 봅시다.
*사족 / 돌고래가 조만간 내놓을 AI 활용 컨텐츠가 무엇일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