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고백

2

by 꼬불이

다음 날부터 소은은 민우의 스토커가 되었다. 정확히는 감시자였다. 민우가 또 다시 자살시도를 하지 못하게 지키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선생님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소은은 매일 민우의 집 앞에서 기다렸다. 함께 학교에 가고, 함께 집에 돌아왔다.



"그럴 필요 없어.” 민우가 말했다.

"지금 하고 싶은 게 이것뿐이에요.” 소은이 대답했다.



세상이 끝나가는데도 일상은 계속되었다. 아니, 일상이기 때문에 더욱 소중했다. 함께 걷는 길, 함께 보는 하늘, 함께 나누는 침묵.



어느 날, 상점가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절망한 사람들이 상점을 부수고 물건을 훔쳤다. 민우와 소은은 손을 잡고 도망쳤다. 어느새 자연스럽게 맞잡힌 손이었다. 숨어든 곳은 텅 빈 유치원 운동장이었다.


"무서웠어?” 민우가 물었다.

"아니요. 선배랑 함께였으니까.” 소은이 대답했다.


그때부터 두 사람은 진짜 대화를 시작했다. 민우는 아빠인 우주비행사 성준에 대해 얘기했다. 자신도 아빠와 같은 우주비행사가 되고 싶었다는 이루지 못할 꿈에 관해서도.


"지금도 늦지 않았어요.” 소은이 말했다.

"2주 도 안 남았는데?”

"그럼 남은 시간 동안이라도 우주비행사가 되어 보세요. 마음으로라도.”


망설이던 소은도 자신에 대해 얘기했다. 무당인 엄마의 통제, 일진 아이들의 괴롭힘. 그리고 세상의 멸망. 그동안 짝사랑하고 있던 민우에게의 고백.


"용기 있었어.” 민우가 말했다.

"무서웠어요. 하지만 후회하고 싶지 않았어요.”


두 사람은 남은 기간 동안 많은 아이들이 그러듯 커플이 되기로 했다. 세상의 마지막을 함께 맞이하기로.




민우는 우주정거장에 있는 아빠와 통화하며 소은에 대해 얘기했다.


"좋은 여자친구가 생긴 것 같구나.” 아빠의 목소리에는 기쁨이 섞여 있었다.

"아빠. 지구의 마지막을, 우리의 마지막을 꼭 지켜봐 줘. 기록해 줘.”

"그래, 약속할게.”


다음 날 집 앞에 나간 민우는 소은이 없는 걸 의아해했다. 학교에도 오지 않은 소은이 이상하고 불안했다. 소은은 그 흔한 휴대폰도 없었다.


민우는 담임선생님에게 소은의 집주소를 알아내고 소은의 집으로 향했다.작은 한옥 형태의 집. 대문 앞에는 무당집임을 알리는 간판이 걸려 있었다. 안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징소리, 북소리, 그리고... 소은의 비명.

민우는 대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마당 한가운데 제단이 마련되어 있었고, 소은이 하얀 옷을 입고 누워 있었다.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소은의 엄마가 칼을 들고 있었다.


"뭐 하는 거예요!” 민우가 외쳤다.

"누구야? 내 딸에게서 떨어져!” 소은의 엄마가 소리쳤다.

"소은이를 놔주세요!”

"이 아이는 제물이야! 지구의 멸망을 막기 위한 제물! 어릴 때부터 이날을 위해 살아온 거야!”


민우는 소은에게 달려가 그녀를 깨웠다. 소은은 천천히 눈을 떴다.


"민우... 선배?”

"일어나. 같이 가자.”


소은의 엄마가 칼을 들고 달려들었다. 민우는 소은을 끌어안고 피했다.


"그게 사실이라고 해도, 저는 소은이를 죽게 할 수 없어요.” 민우가 말했다.


정신을 차린 소은이 민우의 팔을 붙잡았다.


"소은아!" 엄마가 소리쳤다. "저 남자애를 따라가면 더 이상 내 딸이 아니야!”


소은은 눈물을 흘리며 엄마를 바라봤다. 그리고 결심한 듯 고개를 저었다.


"엄마... 미안해요. 하지만 저는 살고 싶어요. 세상이 끝나는 마지막 날까지요.”


소은은 민우와 함께 집을 나왔다. 엄마의 울부짖는 소리가 뒤에서 들렸지만, 돌아보지 않았다.






이후 소은은 민우의 집에서 생활했다. 민우의 엄마 지영은 마치 딸처럼 소은을 대해주었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점점 가족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아쉬움 남기지 않고 꼭 해.” 지영이 소은에게 말했다.


이제 마지막 날까지 며칠 남지 않았다.



소은과 민우는 마지막으로 학교에 갔다. 세상의 마지막 2일 전이었다.

학교 선생님들이 아주 작은, 미리 하는 졸업식을 준비했다. 3학년 전체 중 마지막까지 학교에 온 것은 아홉명. 민우의 담임선생님이 민우와 친구들에게 졸업장을 주었다. 기쁨과 아쉬움으로 가득한 졸업식장이 눈물로 젖었다. 소은도 함께 울었다. 민우의 졸업을 함께 볼 수 있어서 기뻤다.


집으로 돌아오던 중 민우가 물었다. "졸업선물 안 줄 거야?”

소은은 미소 지었다. "사실 주고 싶은 게 있어요. 내일 줄게요.”




마지막 1일 전.


민우와 소은, 그리고 지영은 함께 바다로 향했다. 지영은 집을 나서며 열쇠로 현관문을 잠그는 자신을 발견하곤 웃었다. 내일이면 세상이 사라지는데 문단속을 하는 자신이 우스웠다.


세 사람은 바다에 가서 평화로운 바다를 봤다. 꽤 많은 사람들이 바다에 와 있었다. 마치 새해 해맞이를 하듯 가족들과 함께 바다로 온 사람들이었다. 소은은 민우를 데리고 사람들이 없는 해변 일각으로 향했다.


"선물이 뭐냐고 궁금해 했잖아요." 소은이 말했다.


민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소은은 조심스럽게 민우에게 다가가 살짝 입맞춤을 했다. 살아서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해보는 입맞춤.


"이게... 선물이에요.”


민우는 놀란 표정으로 소은을 바라봤다. 그리고 미소 지었다.


"고마워.”


두 사람은 세상이 사라지기 마지막 순간에 서로를 알아보게 된 것을 아쉬워하면서도, 모른 채로 죽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D-Day.


소은은 민우의 휴대폰을 빌려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민우네 식구와 바다에 온 것을 말했다. 말없이 듣고만 있던 소은의 엄마는 끊기 전에 소은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눈물이 터졌다. 소은은 전화를 끊기 전에 고맙다고 말했다.


바다에 모여 해맞이를 기다리듯 하늘을 보는 사람들과 민우, 소은, 그리고 지영.


어떤 이들은 휴대폰으로 하늘을 찍으며 기다리고 있었다.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 웃는 사람들. 큰 소리로 살면서 미안하다고 말 못한 사람들에게 미안하다고 소리쳐 사과하는 사람. 각자의 미련을 버리고 최후를 맞으려는 사람들의 행동은 가지각색이었다.


하늘이 붉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먼 바다에 소행성이 떨어졌다. 바다는 빌딩 몇 개를 합친 것 같은 높이의 파도로 변해 해변을 덮쳐왔다. 민우, 소은, 지영은 서로의 손을 꼭 잡고 파도를 기다렸다.



"다음 생에 만나자.” 민우가 소은에게 속삭였다.

"약속해요.” 소은이 대답했다.



거대한 파도가 그들을 덮쳤다. 하지만 세 사람은 끝까지 손을 놓지 않았다.


그들의 마지막 순간은 사랑으로

함께. Together.

가득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