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 캐슬린 비글로우

우리가 만들지 못하는 우리 이야기

by 꼬불이

넷플릭스에서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를 보는 내내 묘한 감정이 밀려왔다. 올해 최고작이라 생각했던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의 순위를 기꺼이 내어줄 만큼 개취저격한 작품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씁쓸했다. 이 영화의 설정 중 하나가 북한(?)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스탠리 큐브릭의 『닥터 스트레인지러브』가 1964년 냉전 시대 핵전쟁의 공포를 블랙코미디로 풀어냈다면,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는 그 공포를 지금, 여기의 언어로 다시 쓴다. 미확인 ICBM이 미국을 향해 날아오는 상황. 북한 근해에서 발사되었을 가능성. 하지만 러시아일 수도, 중국일 수도 있다. 영화는 끝까지 누가 쐈는지 밝히지 않는다. 그것이 요점이 아니기 때문이다.


핵전쟁 직전 112분. 그 시간 동안 각기 다른 개인들이 보여주는 반응들을 미시적으로 포착한다. 어떤 이는 가족과 마지막 시간을 보내려 하고, 어떤 이는 전면 보복을 주장하고, 어떤 이는 사랑하는 이에게 전화를 걸고, 어떤 이는 그저 임무를 수행한다. 세상의 종말 앞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민낯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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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핵전쟁을 다룬 스릴러는 이전에도 있었다. 2002년 『섬 오브 올 피어스』. 톰 클랜시 원작의 이 영화에서 네오 나치 테러리스트들이 볼티모어 풋볼 경기장에서 핵폭탄을 터뜨리고, CIA 분석가 잭 라이언(벤 애플렉)이 미국과 러시아 간 전면 핵전쟁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결국 오락영화로 소비됐다.


하지만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는 다르다. 『섬 오브 올 피어스』가 영웅 서사였다면, 이 영화는 시스템의 붕괴를 보여준다. 잭 라이언 같은 영웅은 없다. 미사일 방어 시스템은 실패하고, 암호화된 화상회의는 끊기고, 러시아 외무장관은 전화를 받지 않는다. 완벽하게 설계된 시스템이 한순간 무너진다. 사람들은 고함치고, 당황하고, 울고,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너무나 현실적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생각했다. 이런 이야기를 한국만큼 잘 만들 나라가 있을까? 분단국가로서의 특수성, 북한이라는 존재가 주는 현실적 긴장감, 그 긴장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 우리는 이 모든 것을 피부로 체감하며 살아왔다. 『JSA』, 『쉬리』, 『공동경비구역』, 『강철비』, 『아이리스^^』. 우리는 이미 이런 이야기들을 만들어왔다. 그런데 정작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 같은 작품은 미국에서 만들어졌다.



문제는 우리 플랫폼들이 이런 장르를 기피한다는 것이다. 너무 정치적이라고, 너무 민감하다고, 남북 관계나 일본의 눈치까지 본다. 정작 북한은 우리 삶의 가장 현실적인 위협이자 가장 초현실적인 존재다. 매일 뉴스에 나오지만 실감하지 못하는 이름. 그래서 더욱 이야기로 풀어내야 한다. 허구를 통해 진실에 다가가는 것, 그것이 픽션의 역할 아닌가.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가 탁월한 이유는 거대 담론을 개인의 이야기로 환원했기 때문이다. 핵전쟁이라는 추상적 공포를 "아이를 차에 태워 서쪽으로 달려" 라는 구체적 명령과 나란히 놓는다. 세상의 종말과 개인의 일상이 공존하는 그 아이러니. 큐브릭이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에서 보여준 그 블랙코미디의 정신을, 『섬 오브 올 피어스』가 액션 스릴러로 옮겼다면,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는 심리 스릴러로 진화시켰다.


19a170abb1d19c01c.jpg "아이를 차에 태워 서쪽으로 달려!" (개인적으로 이 작품 최고의 대사다)


한국 드라마와 영화는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다. 『오징어 게임』, 『기생충』,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우리는 인간을 그리는 데 탁월하다. 미시적 관찰과 보편적 공감의 결합. 그런데 유독 북한 이야기만큼은 조심스럽다. 정치적 올바름에 갇혀, 검열을 의식하며, 결국 가장 한국적인 이야기를 외국이 먼저 만든다.



넷플릭스는 한국 콘텐츠에 막대한 투자를 한다. 그런데 정작 가장 한국적인 소재는 피해간다. 북한, 분단, 전쟁의 공포. 이것들은 우리 삶의 배경음악이다. 익숙해서 듣지 못하지만 항상 흐르고 있는 소리. 그 소리를 이야기로 만들 때, 비로소 우리는 그것을 직면할 수 있다. 큐브릭이 냉전의 광기를 코미디로 만들어 사람들이 웃으며 두려워하게 만들었듯이.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는 훌륭한 영화다. 캐서린 비글로우는 112분 내내 숨 쉴 틈을 주지 않는다. 이드리스 엘바의 대통령은 결정을 내리지 못해 괴로워하고, 레베카 퍼거슨의 워커 대위는 냉정함을 유지하려 애쓰지만 결국 남편에게 전화를 건다. "아이를 차에 태워. 서쪽으로 달려." 로튼 토마토 81%, 메타크리틱 75점. 평론가들도 어느정도 인정한 수작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것은 우리가 만들 수 없는 우리 이야기다. 그 아이러니가 씁쓸하다. 언젠가 한국의 창작자들이 이런 이야기를 자유롭게 만들 수 있는 날이 올까? 검열과 자기검열을 넘어서, 북한을 소재로 한 진짜 스릴러, 진짜 인간 드라마를 만들 수 있을까?


큐브릭이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를 만든 건 1964년이다. 냉전의 한복판에서 핵전쟁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용기. 그로부터 60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다.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를 보며 깨달았다. 가장 현실적인 공포를 가장 대담하게 다룰 때, 비로소 우리는 그 공포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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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백미는 결말이다. 미사일이 시카고에 떨어지기 직전, 대통령은 보복 명령을 내릴지 망설인다. 전면 핵전쟁을 시작할 것인가, 아니면 인내할 것인가. 화면은 그가 입을 열기 직전 암전된다. 폭발 장면도, 결과도 보여주지 않는다. 그 무게를 관객에게 떠넘긴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섬 오브 올 피어스』가 잭 라이언의 영웅적 해결로 끝났다면,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는 해결 자체를 거부한다.


비글로우는 묻는다. 우리는 이 미친 게임을 계속할 것인가?


영화 속 대통령이 말한다. "팟캐스트에서 들었는데, 핵무기가 있는 세상은 다이너마이트로 가득 찬 집 같대요. 우리는 그 위험을 알면서도 계속 그 안에서 살고 있죠."


그래서 제목이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다.


영화는 누가 미사일을 쐈는지 밝히지 않는다. 북한일 수도, 러시아일 수도, 중국일 수도, 누군가의 실수일 수도 있다.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우리 모두가 이 다이너마이트 집 안에 살고 있다는 것. 그리고 언제든 불꽃이 튈 수 있다는 것.




한국은 그 집의 최전선에 있다. 우리야말로 이 이야기를 가장 절실하게 만들 수 있는 나라다. 하지만 우리는 침묵한다. 정치가 두려워서, 검열이 두려워서, 논란이 두려워서. 그 사이 미국이 우리 이야기를 먼저 만든다. 2002년에도 그랬고, 2025년에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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