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강아지 한 마리와 눈이 마주쳤다. 정확히 말하면 그 강아지가 나를 똑바로 쳐다봤고, 나는 그 시선이 무얼 말하는지 알았다. “돌봐 줄 사람이 필요해요.” 대사 한 줄 없는 그 순간의 대화. 눈빛만으로 충분했다.
인간은 왜 하얀 공막을 진화시켰을까.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에서 브라이언 헤어와 버네사 우즈는 흥미로운 답을 제시한다. 우리는 유일하게 하얀 공막을 가진 영장류다. 침팬지의 눈을 보면 색소만 보인다. 어디를 보고 있는지 알기 힘들다. 하지만 인간의 눈은 다르다. 하얀 공막이 뚜렷하게 보이도록 진화했다. 다른 사람이 아주 미세한 눈빛 변화까지 알아챌 수 있게 해주는 거다.
왜 이렇게 진화했을까. 저자들은 “자기-가축화 이론”으로 설명한다. 우리는 스스로를 가축화했다. 공격적인 개체보다 친화적인 개체가 더 많은 협력을 얻었고, 더 많이 생존했다. 그 과정에서 눈은 마음을 읽는 도구가 됐다. 진화의 어느 단계에서 우리는 ‘눈빛을 숨기는’ 존재에서 ‘눈빛을 드러내는’ 존재로 변한 거다. 인간과 함께 한 강아지들 처럼.
생후 9개월경 아기들이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가리키기 시작한다. 이 순간이 중요하다. 아기는 부모가 의도와 감정과 신념을 가진 존재라는 걸 이해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부모가 어디를 보는지, 무엇을 가리키는지 주목한다. 아기의 시선은 부모의 몸에서 옥시토신을 분비시켜, 서로 사랑하고 돌보고 싶은 감정을 만든다. 우리의 눈은 협력적 소통을 위해 설계됐다. 생존을 위해.
한 사람이 시선을 돌리는 방향은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려준다.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싶다거나, 어느 방향으로 이동할 준비가 됐다거나. 아기는 이를 통해 상대방의 행동을 예측하고, 함께 놀거나 안전하게 기다리는 행동을 조율한다. 유아가 언어를 배울 때도 마찬가지다. 부모가 내는 소리와 부모가 보고 있는 물체를 연결시킨다. 눈맞춤이 언어 이전의 언어다.
그런데 이 친화력에는 어두운 이면이 있다. 우리는 ‘우리편’에게는 관대하지만 ‘외부인’에게는 잔인할 수 있다. 같은 뇌 구조가 사랑과 혐오를 모두 만들어낸다. 내집단의 위협이 되는 외집단이 등장하면, 타인의 마음을 읽는 뇌 부위의 활동이 둔화된다. 서로를 비인간화하기 시작한다. 책은 이렇게 경고한다. 우리를 가장 관대한 종으로 만든 특성이 동시에 우리를 가장 잔인한 종으로 만들 수 있다고.
영상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나는 '눈동자' 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인물의 시선처리, 시선의 방향이 얼마나 많은 서브텍스트를 주는지. 강아지, 고양이 등 인간과 잘 지내는 동물들은 공막비율이 인간과 비슷하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과 눈을 맞추고, 그들의 마음을 읽으려 한다. 개가 늑대에서 갈라져 나온 것도 비슷한 이유다. 인간과 눈을 맞출 수 있는 개체들이 더 많은 음식을 얻었고, 더 많이 생존했다. 반면 눈을 보기 힘든 지렁이나 개미에게 감정이입하긴 힘들지 않을까?
드라마를 쓰다 보면 알게 된다. 배우의 대사보다 시선이 더 많은 걸 말한다는 것을. 카메라가 포착하는 눈빛 하나가 세 줄짜리 대사보다 강력할 때가 있다.
『록키』에서 에이드리언이 링 밖에서 록키를 바라보는 그 순간,
『그래비티』에서 라이언 스톤이 지구를 향해 눈을 돌리는 그 장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모든 게 전해진다.
서브텍스트란 결국 이런 거다.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것들. 눈빛, 시선의 방향, 잠깐의 머뭇거림. 인간은 수백만 년 동안 이 언어를 연습해왔다. 하얀 공막은 그 연습장이었다.
우리는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며 협력하는 법을 배웠다. 마음을 읽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그 능력 덕분에 네안데르탈인 등 다른 인류 종들이 멸종한 후 호모 사피엔스만 살아남았다.
브라이언 헤어는 말한다. 적자생존은 틀렸다고. 진화의 승자는 최적자가 아니라 다정한 자였다고. 다만 그 다정함을 어떻게 쓰느냐가 문제다. 좁아지는 내집단과 늘어나는 외집단. 이 상황이 극단으로 치달으면 다정함을 담당하는 뇌 부위는 기능을 상실할지도 모른다.
아침에 마주친 강아지는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다 알았다. 눈이 말했으니까. 그리고 우리 인간은 그 말을 듣도록 진화한 존재니까. 이제 질문은 이거다. 우리는 이 능력을 넓혀갈 것인가, 좁혀갈 것인가. 더 많은 존재와 눈을 맞출 것인가, 더 적은 [휴대폰 액정] [노트북 화면] 하고만 눈을 맞을 것인가.
답은 우리가 선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