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내 생각인데요
나를 표현하는 법을 몰랐다.
그때는 ‘착한 사람’이라는 말이 순종적이고 말을 잘 듣는 사람을 뜻했다. 의견은 변명이었고, 질문은 말대꾸였다. 입을 다무는 게 예의였고, 참는 게 미덕이었다.
그런 세상에서 자란 아이가, 성인이 되었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자기 생각을 표현할 수 있을까?
표현하지 못하는 건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배우지 못한 결과일 뿐이다.
무작정 참는 게 착한 게 아니라는 걸 누군가 알려준 적은 없었다. 참지 않아도, 나를 표현하면서도 충분히 착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걸, 그땐 몰랐다.
요즘은 ‘참지 말라’는 시대가 되었다지만, 착함의 프레임은 여전히 남아 있다.
착하다는 말은, 가끔 배려보다 ‘만만함’의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나는 늘 착하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그건 대부분 말없이 다 받아주고, 불편한 기색 하나 내비치지 않는 나에게였다. 이상하게도, 내 의견을 말하면서 배려할 때는 ‘착하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같은 상황인데도, 내 의사를 표현하느냐 마느냐에 따라
착함의 기준이 달랐다.
착함은 본래 나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을 거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건 나를 억누르는 이유가 되었다.
우리는 착한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어느새 말하는 법을 잊고,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