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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읽는 여자 Nov 27. 2023

산모님이 예쁜이 엄마였구나

말 한마디의 힘 

아이의 이름을 주로 부르긴 하지만, 이름만큼 '예쁜이'라는 별명으로도 자주 부른다. 아이는 태어나면서부터 '예쁜이'라고 불렸다. 아이에게 예쁜이라고 처음 부른 사람은 내가 아니라 신생아실 간호사들이었다.


출산 예정일을 며칠 앞두고 병원에 갔을 때, 의사는 초음파 사진에서 아기 머리크기를 보고 몇 번이나 체크를 다시 했다. 초음파 사진상으로 아기의 머리 크기는 18개월이었다. 첫째 아이를 자연분만으로 낳았고, 둘째 아이를 임신하는 동안 특별한 이상이 없었기에 둘째도 자연히 자연분만으로 낳을 줄 알았다. 그런데, 머리 크기가 너무 커서 자연분만으로 낳기엔 위험할 수도 있다며 수술을 권했다. 갑작스러웠지만 (실은 두려움이 더 컸지만) 출산 예정일에 맞춰 수술 날짜를 잡았다.


아침 8시 35분, 제왕절개로 아이를 출산했다. 자연분만으로 낳은 첫째는 아이를 바로 볼 수 있었는데, 수술로 낳은 둘째 아이는 세상에 나온 후 바로 보지 못했다. 나는 전신마취가 아닌, 하반신 마취를 선택했다. 척추에 마취 주사를 맞은 후, 하반신엔 감각도 없고, 누워있으니 수술 과정도 눈으로 볼 순 없었다. 하지만 마취되지 않은 뇌(지루한 걸 끔찍이 싫어하는 뇌)는 유일한 자극인 '청각'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마취된 하반신에 닿는 수술칼의 느낌은 몸이 아니라 '소리'로 느낄 수 있었다. 내 뇌는 수술 도구의 소리가 아닌 의사의 말을 간절히 원했지만 의사는 '수술'만 했다. 나는 여기 있는데, 나는 여기 없는 느낌. 그 하염없이 대책 없던 시간을 내 몸은 기억하고 있다. '말 한마디'만 해주었더라면...


'제발 뭐라고 말 한마디만 해주었더라면...'


정신은 초롱초롱한데 (내 몸을 자르고, 아이를 꺼내고 있으니 당연히), 나는 지금 무슨 상황인지 전연 몰랐다.


드디어, 말 한마디 없던 수술이 끝나고, 회복실로 옮겨졌다. 수술 끝나고 내가 제일 하고 싶었던 것은 '말'. 그런데 남편도, 엄마도 "힘든데 쉬어." 라며 침대 커튼을 꼼꼼히도 쳐준다. '아니, 나는 말 한마디의 대화를 나누고 싶은데...' 회복실에서 1시간 정도 쉬는 동안, 옆 침대에서 들리던 대화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나는 '말'이 고팠다. 


회복실에서 입원실로 옮겨질 때 신생아실을 들러 아기를 처음 보았다. 뭉클했고, 뭉클한 와중에도 아기의 큰 머리에 시선이 고정됐다. 나중에 보니, 내 아기보다 먼저 태어난 아기들보다 월등하게 컸다. 아기를 보자마자 내 머리에 떠오른 단어 '만두', 아기는 방금 찐 왕만두를 닮아있었다. 나는 그 순간 피식 웃고 말았다. 


'내가 낳은 왕만두 아기'


입원실로 옮겨와 나는 꼼짝없이 침대에 누워만 있었다. 하반신 마비는 하루가 지나야 풀린다고 했다. 소변줄을 달았다. 몸이 돌덩이가 된 것처럼 무거웠다. 내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아기를 낳았는데, 분명 아기는 바깥에 있는데, 내 몸은 분명 뭔가 크게 잘못된 것 같았다. 남편은, 애는 내가 낳았는데 뭐가 그리 고단하다고 코까지 골며 잠들었다. 심통이 난다.  


첫날밤이 지나고, 다음 날 몸을 일으켜 보는데 아니, 내 몸인데 내 마음대로 제어가 안 된다. 몸이 일으켜 지질 않아서, 몇 번이나 허탕질을 했다. 세상에 나왔는데 엄마 품에 안겨 보지 못한 내 아기가 떠올라 눈물이 핑 돌았다. 신생아실에서 전화가 걸려온다. "아기 젖줄 수 있어요?" 아기도 보고, 젖도 주러 가고 싶은 데 갈 수가 없다. 몸을 움직여야 빨리 회복한다는 말에, 죽을힘을 다해 몸을 일으켜 본다. 발이 코끼리처럼 퉁퉁 부어서, 발바닥을 바닥에 온전히 댈 수가 없었다. 눈물이 핑 돈다. 몸도 마음도 엉망진창이다. 


또 신생아실에서 전화가 걸려온다. 몸 한 번 일으키는데 온 지구의 응원이 필요할 정도로 힘들지만, 발은 코끼리 발이라 실내화가 들어가지도 않지만, 태어난 지 이틀이나 된 내 아기를 이제는 보러 가리라 마음먹고 출동한다. 링거를 질질 끌고 신생아실에 들어간다. 벨을 누르고, "000 아기요." 간호사 선생님이 아기를 내게 건넨다.


"산모님이 예쁜이 엄마구나."

"네?"

"아기가 배고플 때 잠깐 울고, 분유 먹고 나면 혼자 놀다가 보채지도 안고 자요. 얼굴도 예쁜데 예쁜이가 예쁜 짓만 한다니까요."

 

제왕절개 수술실에서, 회복실에서, 입원실에서 말 한마디가 그리웠던 내게 간호사의 그 한 마디는 나를 울컥하게 만들었다. 내가 위에서 밝혔듯이 내 아기는 갓찐 왕만두를 닮았다. 그런 내 아기가 '예쁜이'라니... 나는 울면서, 웃고, 웃으면서 울었다. 


"예쁜이, 아가... 엄마야. 엄마 보고 싶었지. 너무 늦게 와서 미안. 만두라고 해서 미안. 예쁜이!"


링거를 꽂은 터라 아기를 안을 수는 없었지만, 나는 온 마음으로 예쁜이 아기를 안고 또 안아줬다. 내 아기는 머리 대빵 큰 왕만두가 아니라 예쁜이였다. 


'산모님이 예쁜이 엄마구나.'라고 했다. '산모님이 예쁜이 엄마구나.' 했다...... 그 말이 무한재생해서 들렸다. 


입원해 있는 동안, 신생아실 간호사들도 내게 예쁜이 간호사들이었다. 말 한마디가 그리웠던 내게, 왕만두 같은 내 새끼를 예쁜이라 부르는 간호사들이 예뻐 보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퇴원하는 날,


"예쁜이 이제 못 봐서 서운하네."


예쁜이 간호사들은, 우리 아기가 나와 함께 퇴원하는 날까지 예쁜이로 대우해 줬다.


나는 이 이야기를 아이에게 여러 번 해줬다. 예쁜이 신생아는 자라서 예쁜이 초등학생이 되었다. 왕만두 같던 아기는 머리가 크다 뿐이지 예쁜 아이로 잘 자라고 있다. 여전히 머리는 상위 1%, 크다.


어떻게 이렇게 예쁜 아이가 내 안에서 나왔을까... 아이는 늘 예쁘다는 말을 듣는다. 눈이 크고 얼굴이 예쁠 뿐 아니라 말과 행동을 예쁘게 한다. 무엇보다 마음이 예쁘다. 이건 다 신생아실 간호사들 덕이다.  


어쩌면 각인효과인지도 모르겠다. 마치 오리가 태어나 처음 본 물체를 어미처럼 계속 따라다니는 것처럼, 내 아이는 태어나 처음 들은 신생아실 간호사들의 '예쁜이'라는 말이 온몸에 각인되었던 듯싶다. 아이를 예쁜이로 각인시켜 준 아이 엄마는 신생아실 간호사들이다. 


말 한마디의 힘이다. 


"신생아실 간호사님들, '예쁜이' 잘 크고 있어요. 덕분에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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