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의 공간, 나의 일회용 여행 '카페'
<여행의 이유>에서 김영하는 호텔 예찬론을 펼친다.
'나는 호텔이 좋다.'
모든 인간에게는 살아가면서 가끔씩은 맛보지 않으면 안 되는 반복적인 경험이 있을 것이다.
:
'약발'이 떠나기 전에 이런 경험을 '복용'해야, 그래야 다시 그럭저럭 살아갈 수가 있다.
-김영하, [여행의 이유], 문학동네, 2019, 55쪽
김영하는 호텔을 좋아하는 이유로, 호텔은 집이 아니라는 점을 든다. 집에 있으면 안 보고 안 하고 싶어도 싱크대 설거지 감이 나의 주의를 자꾸 끌어당기고 거실에 어지러이 흩어져 있는 아이 장난감이 자꾸 신경을 거슬린다. 눈에서 멀어져야 마음에서도 멀어진다. 뭔가 보이면 멀어질 수가 없다.
호텔에 가고 싶다. 여행 가고 싶다.
그런데 삶은 그렇게 내 마음껏 움직여주질 않는다.
미국의 도시사회학자 레이 올드버그(Ray Oldenburg)는 저서 [The Great Place]에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는 별도의 공간으로 '제3의 공간'을 제시한다. 스타벅스 전 CEO 하워드 슐츠는 스타벅스가 가정과 직장 사이 제3의 장소로 사람들을 연결해 공동체를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행복심리학자로 유명한 서울대 최인철 교수는 행복해지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제3의 공감을 아지트로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제3의 공간의 특징을 5가지로 꼽았다.
1. 격식과 서열이 없는 곳
2. 소박한 곳
3. 수다를 즐길 수 있는 곳
4. 출입이 자유로운 곳
5. 음식이 있는 곳
-최인철, EBS 인문학 특강 [집과 일터가 아닌 제3의 공간이 있는 사람이 행복하다] 요약, 2016
이 모든 조건을 충족시키는 제3의 공간, 나만의 아지트 바로 '카페'다. 상처 가득한 집을 벗어나고 싶을 때 여행지 호텔에 갈 수는 없지만 카페는 맘만 먹으면 갈 수 있다.
카페에 가면 일회용 여행을 온 듯한 기분이 든다. 카페도 호텔처럼 공간을 내어준다. 커피 값을 지불하는 순간 커피를 받아 들고 주위를 돌아보는 순간 나는 카페라는 일회용 여행지의 합법적인 게스트가 된다. 테이블 위에 커피 트레이를 내려놓고 커피잔을 손에 쥐고 한 모금, 그다음은 창 밖 뷰가 괜찮다면 창 밖을 내다볼 것이다. 카페에 손님이 드문드문 있다면 그 손님들도 한 번씩 쳐다보며 커피도 한 모금 더. 카페 인테리어를 살피고 한 모금 더. 누군가와 카페에 같이 갔다면 그 누군가는 나의 커피의 거리보다도 멀다. 나는 가끔씩 커피를 함께 마시는 상대방이 아니라 나의 가장 근거리에 있는 커피를 유심히 쳐다본다.
카페에 가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제일 좋다.
정유정 작가는 [진이 지니], 에필로그에서 '시간의 어떤 순간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버트런드 러셀의 문장 때문에 1년간 준비한 소설을 엎었다는 이야길 한다. 시간의 어떤 순간,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순간, 카페에 가면 '아무' 상태에 빠진다. 그제야 '내'가 보이고 '시간'도 보이고 '행복'도 보인다.
일주일에 운동 몇 시간은 필수라고 의사들은 말한다. 건강을 지키고 더불어 수명을 연장시킨다고. 나는 감히 말한다. 일주일에 하루는 카페에 가야 한다. 그러면 건강과 수명 연장은 물론이고 행복해진다.
물론 집을 카페 삼아 홈카페를 즐길 수도 있다. 하지만 그곳은 어디까지나 '홈'이다. 카페아 아니다. 속지 말자. 카페는 카페고, 홈카페는 홈이다.
김중혁 작가는 [펭균 뉴스], <에스키모, 여기가 끝이야>라는 단편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돼. 어떤 때는 공간을 옮기는 것만으로도 많은 게 바뀌는 법이란다. 네가 할 일은 거기에서 여기로 이동하는 것뿐이야."라고 말한다.
그저 집에서 카페로 이동하면 된다. 그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