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버스 터미널, 심야 버스를 기다리며 하이에나처럼 커피집을 찾는다.
전주에서 일을 하던 그 시절, 커피 배우러 서울 가는 버스 안에서야 옆사람 눈치 보며 늦은 점심으로 김밥을 먹었다. 카페를 차리려 돈을 모으고 있어 궁핍하기도 했고, 식사할 시간도 없기도 했다. 돈도 시간도 없는 메마른 청춘이었다.
김밥이 소화되기도 전에 서울에 도착해 다시 지하철을 몇 차례 갈아타고 커피 아카데미에 근처 커피 가게에 갔다. 커피 선생님이 운영하시는 커피 하우스 본점. 진한 핸드드립 한 잔을 마시고서야 버스에서 먹은 김밥이 소화된다. 우습게도 밥 한 끼 보다 비싼 선생님 가게의 커피는 앞 뒤 안 가리고 사마셨다. 잠시 후면 커피 배우러 갈 텐데 아카데미에 가면 공짜 커피 마실 수 있는데도 굳이 커피 하우스에 들러 정식으로 커피 한 잔을 사 마셨다. 함께 커피를 배우던 사람이 타박했다. 왜 굳이 커피를 사마시냐고. 그것은 일주일간 열심히 산 나에 대한 배려였고, 내가 그토록 사랑하는 커피 한 잔에 대한 나의 존경심이었다.
선생님네 진한 드립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오늘 하루의 2막을 시작한다. 일주일을 기다리고 기다린 커피 수업.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내 직업은 방송작가. 데일리 라디오 프로그램과 일주일에 한 편씩 방송되는 휴먼 다큐멘터리 텔레비전 프로그램 , 주말에도 라디오 프로그램을 하고 있었고, 게다가 대학원에도 다니고 있었다. 그 시절, 차를 몰고 가다 횡단보도 앞에서 꾸벅 졸다 뒤차의 클랙슨 소리에야 겨우 정신을 차렸고, 누가 나 좀 받아 줬으면 하는 정신 나간 생각을 하며 미친듯한 스케줄로 하루하루 죽어가고 있었다.
그때 만난 것이 '커피'였다. 커피를 마시는 순간의 위로가 날 버티게 했고, 그 위로를 내 손으로 배워보고 싶었다. 그래서 바늘 하나 들어갈 자리 없는 스케줄에도 전주에서 서울로 커피를 배우러 다녔다. 2년여... 그 시간은 내게 모진 일상을 견디게 했다.
미친 듯이 커피를 만들었다. 너무 좋아서...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커피를 마시고 또 마셔보며 맛을. 감각을 익혔다. 선생님이 나중에 그러셨다. 너무 열정적이어서 무슨 질문을 할지 두려우셨다고... 덕분에 본인도 많이 배웠노라고......
수업이 끝나면 심야 고속버스를 타야 했는데 버스표를 끊고 나면 -그 야심한 시간에 방금까지 커피를 미친 듯이 마시고 왔는데- 하이에나처럼 고속버스 터미널 안의 커피집을 찾아 헤맸다.
버스에 오르면 잠이 쏟아지는데도 커피는 마시고 싶었다. 커피는 마시고 싶은데 잠은 자고 싶고... 커피 한 모금, 고개가 떨어지고... 깨면 다시 커피 한 모금... 오늘 배운 커피 복기... 그 미친듯한 그 밤이 내 커피 인생의 가장 찬란한 시절이지 싶다.
지금도 밤이면 커피는 마시고 싶은데 잠은 자고 싶어 갈등한다. 커피의 찬란이 내게 아직 떠나지 않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