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한번 어디서건 마주쳐요, 커피 내려 줄게요

커피는 다른 사람이 만들어 준 게 더 맛있는 법이죠

by 커피 읽는 여자

영화 <카모메 식당>에서 사치에씨의 카모메 식당에 들른 전 카페 사장이 커피 맛있게 만드는 법을 알려 주겠다고 나선다. '코피 루왁'이라는 비법 레시피를 알려 주고 그 레시피대로 커피를 내려준다.


맛있죠?
커피는 다른 사람이 만들어 준 게 더 맛있는 법이죠.


커피는 다른 사람 중에도 커피를 사랑하는 사람이 내려야 맛있다. 세상 모든 것들이 그럴 테지만, 특히 우리 몸에 직접 닿아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음식은 만드는 사람의 애정이 들어가야 제 맛이 난다. 음식을 만드는 사람의 손길에서 애정이 고스란히 전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기운일 테고, 맛으로 연결될 터이다. 카모메 식당의 전직 카페 사장이 사치에씨에게 알려준 비밀 레시피도 결국은 '애정'.


이렇게 애정으로 내려준 커피를 맛있게 마시는 손님을 바라보는 기쁨이란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사랑 고백에 성공한 느낌이랄까.


카페를 하면서 나의 이 사랑 고백을 열렬히 받아준 손님들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먼저 비 오는 저녁에 들렀던 군인 손님을 잊지 못한다. 군인 손님이 입고 있는 목폴라를 보니 겨울이었나 보다. 군인 손님은 커피콩을 원하셨다. '케냐'로. 부산이 집이라 휴가차 집에 다녀왔고, 부대에 복귀하는 길에 커피콩을 사 가지고 가려는 길이었다. 그런데 우산이 없어 비를 맞고 커피콩을 파는 집을 찾아든 것이었다. 손님에게 원두를 담아 주고, 케냐를 한 잔 내려 주었다. 세상에나! 커피를 이렇게 공손하게 마시는 손님은 처음이다. 사진에 담긴 모습처럼 공손한 자세로 커피를 정성껏 마셨다. 볼그레한 얼굴의 광대가 눈썹까지 올라간 상태로 맛있다며, 감사하다며 여러 번 인사를 하였다. 커피를 그토록 사랑해줘서, 커피를 그렇게 예쁘게 마셔줘서 고마웠다. 언제고 이 손님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우리 한번 어디서건 마주쳐요. 케냐 내려줄게요.



그리고 또 한 분, 오픈 시간에 슬며시 들르시던 중년의 손님. 그 손님은 CD를 종종 선물하셨다. 카페에서 틀면 좋을 만한 음악을 직접 선곡하고 편집한 CD였다. 손에 그냥 들고 오시는 게 아니라 주머니며 소맷자락에 넣어 오셨는데 그 온기가 지금도 기억난다. 그리고 어느 날은 부인을 대동하고 와서 부부의 사소한 언쟁의 중재자 역할을 맡기기도 하고, 이긴 사람이 커피 값을 내고 가곤 하셨다. 겨울 초입에는 집에서 만든 거라며 말랑말랑 먹기 좋은 곶감을 가져다주셨고, 한 겨울 감기에 쩔쩔매고 있을 때는 직접 만든 뱅쇼를 보온병에 담아다 주셨다.



그 따뜻한 교수님은 늘 '페루'커피를 드셨다. 페루 커피는 찾는 사람이 적어 자주 볶지 않았는데 교수님이 카페에 들른 날에는 교수님이 마실 페루 커피가 딱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단골손님이 페루 커피를 마시고 있는 그 손님을 보고 깜짝 놀라며 인사를 하는 것이 아닌가. 페루 커피 손님은 담담한 얼굴인데 단골손님은 뜨악한 얼굴이었다. 페루 커피 손님이 가시고, 단골손님은 내게 득달같이 달려와 말했다. 그분은 자신의 전공 교수님이시라고. 교수님이 그렇게 다정한 분인지 처음 알았다고. 자신이 아는 교수님은 냉혈인간이었다고. 이후, 둘은 종종 카페에서 마주쳤고 조금씩 그 오해를 풀어나갔다. 단골손님이 어느 날 말했다. "교수님이 좋아졌어요."라고. 그리고 그 단골손님도 페루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교수님은 내게 페루 커피를 마시며 이런 이야기를 하셨다.


다른 사람이 내리면 이 맛이 안나거든요.


카페를 그만두게 되었을 때 그 손님이 아른거렸고, 지금도 가끔씩 생각난다. 아직 그 학교에 계실까?


한번 어디서건 마주쳤으면 좋겠습니다. 페루 커피 내려 드릴게요.


나의 애정 손님들, 언제든 어디서건 꼭 다시 만나 커피를 내려드리고 싶다. 커피는 다른 사람이 내려주는 게 더 맛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