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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물 Sep 19. 2023

결국엔 모두가 타인인 것을.

여름 징크스


오랜 친구 중 한 명은 여름이면 저를 걱정하곤 합니다.


유독 여름을 힘들어하고 여름이면 늘 몸과 마음이 아픈 시기를 보내곤 했거든요.


이번 여름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많은 이들을 떠나보낸 올여름이었습니다.


오래된 지인부터 짧은 시간이었지만 가까워지고 싶었던 사람까지.


너무 뜨거워서 오히려 차가운 순간들이 온몸을 훑고 지나갔습니다.


유독 사람을 좋아하고 따르고 기대는 저로서는 한동안 끼니를 거르는 시간도 다시 찾아왔었고요.


지금은 조금 덤덤해져서 써 내려가 봅니다.




오랜 친구들과 각자의 시간을 가지기로 했습니다.

연인도 아닌데 친구들과 각자의 시간을 가진다는 게 다소 생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제가 백수를 선택하면서 가치관의 차이가 비로소 드러났다고 해야 할까요.


백수 생활이 시작되고 연애에 대한 시각, 경제적 관념 등의 가치관의 차이가 틈을 벌어지게 하고 제 생활에 대한 갑론을박이 벌어지는 경우가 이어졌습니다.


주로 타박을 하는 쪽은 친구였고 저는 주로 듣는 쪽이었는데 극명하게 갈리건 시간을 중요시하는 저와 현실에서의 삶을 중요시하는 차이였던 것 같습니다.


어떻게 지내냐는 질문에 제 생활을 말하거나 간혹 힘든 일이 생겨 한탄을 하고 나면 여지없는 질타가 이어졌습니다.


질타는 비난의 화살이 되어 제게 내리꽂는 것 같았습니다.


결국 제가 먼저 손을 놓았어요.




철없이 사는 것처럼 보였던 것 같습니다.


오늘 기사에 SES의 바다가 슈를 향해 남긴 메시지를 보고  제게 조언을 하던 친구의 마음에 대해 생각합니다.


치열하게 달리던 저였던 순간에 때로는 대단하다며 엄지를 세워주고 언젠가는 조금 쉬엄쉬엄 하라던 친구가 제 백수 생활에 대해 냉정하게 현실을 지적하는 모습으로 다가오니 처음엔 덴 듯이 어쩔 줄 몰라하다 너무 아파 그만 손을 놓아버렸습니다.




때마침 이직 제의가 들어왔습니다.


나를 돌아보고 나를 위해서 쓰자고 마음먹은 시간이었는데 단칼에 돌아서는 친구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꼭 잘 못 살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조급해져 이것저것 따져보지 않고 제의를 수락했습니다.


동종업계 1위의 회사였지만 연봉도 일하게 될 팀도 선뜻 내키는 조건은 아니었지만 불안의 파도에 휩쓸려 선택한 것 같네요.


꼭 돈과 직장이 없어진 초라한 내 모습에 떠나가버린 것 같았거든요.


떠나간 오래된 친구, 성급한 선택이었다는 후회, 다시 일을 시작해야 한다는 압박감,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엉켜있는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즈음 여러 가지 사고를 치게 됩니다.


다시 술을 가까이하기 시작했고 나조차도 통제할 수 없는 감정을 해결해 달라고 알게 된 지 얼마 안 된 사람들에게 기대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그들 또한 떠나갔습니다. 전혀 받아줄 이유가 없는 사람들이었으니까요.


또다시 마냥 혼자 남겨진 것 같은 공허함의 빈자리에 오래도록 머물렀던 것 같아요.



다행히도 옮긴 직장의 업무는 익숙했고 강도도 높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는 운동하는 시간을 보장받는 곳이었습니다.


유리인형으로 소문이 난 건지 모두 친절히 정중하게 대해주셔서 조용히 업무에 집중하고 일과가 끝나면 퇴근하는 나날들입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시간을 무기로 폭주하는 듯이 보이는 저를 말리고 싶었던 친구의 마음도,

감정을 받아줄 순 없지만 나름의 방식으로 일으켜 주려했던 여러 사람 들고,


그리고 제 손으로 친히 떠나보내게 된 것도 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밑바닥에 떨어져 보면 주변이 정리된다. ' 와 같은 거창한 결말은 아니에요.


그저 서로가 손바닥을 마주칠 순간이 엇갈렸다고 생각합니다.




다 잃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고요.


여전히 제 곁이 무심히 있어주는 또 다른 이들이 있고,

이제는 제법 제 자신에게 집중하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는 것이 편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조금은 많이 느린 제 걸음이 어쩌면 답답하게 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이 또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한낮의 햇살은 따갑지만 가을이 온 게 느껴집니다.

그 말은 혹독했던 여름과 함께 징크스도 끝이 보인다는 거겠지요.

매년 올여름은 무사히 지나가길 비는데 올여름도 여지없이 태풍이 휩쓸고 간 자리에 제가 서 있습니다.


결국엔 혼자라는 사실이

어린 날엔 서러웠고

근래에는 쓸쓸했습니다.


그러나 가을이 오니 간사하게도 다시 설레네요.


혼자여도 뭐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좋은 두근거림이 찾아왔습니다.


결국엔 모두가 타인이란 것을 이제야 뒤늦게 깨달은 철없는 어른의 근황이었습니다.





설레는 계절이에요.


이 글을 읽는 여러분에게도 설렘이 찾아오는 계절이었아 면 합니다.


보잘것없는 제 글에 찾아와서 꼬박꼬박 라이크를 눌러주는 분들 항상 감사하다는 말씀을 언젠가는 드리고 싶었어요.


대단한 수확이 아니어도 더위를 식히고 다시 걸어갈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계절이 여러분 곁에도 찾아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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