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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식작가 Aug 17. 2022

나는 성수동이 좋다

외식과 나의 이야기

  숲이라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초라했던 서울숲


  외식을 공부하면서 상권은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었다. 상업상 거래가 이뤄지는 범위라는 사전적 정의를 가지고 있으며 사실상 손님을 끌어모을 수 있는 범위라고 생각하면 편하겠다. 때로는 외식업에서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하며 매장의 흥망성쇠를 결정하는 중대한 요인이 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성수동 상권은 상권이라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외식 상권이 전무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강북에서 손에 꼽히는 핫플레이스가 되었으며 서울 전지역으로 넓혀도 이만한 상권이 잘 없다. 성수는 왜 뜨거워졌을까


  오래전 외갓집은 성수동 주택촌에 자리하고 있었다. 외할아버지는 어린 내 손을 잡고 새로 생긴 근처 공원으로 나를 데리고 자주 놀러가셨는데 그 공원이 바로 서울숲이었다. 

  되짚어 보면 엄마를 비롯한 이모, 삼촌들은 서울숲이 흉물스럽다고 했던 것 같다. 서울숲은 숲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황량했고 앙상했다. 이제 막 심어진 묘목에 가까운 나무들은 울창하지 못했고 드넓은 공간에 드문드문 보이는 조형물과 놀이터 덕분에 어지간한 공원보다 푸르르지 못했다. 

  그래서 서울숲은 아이를 데리고 온 부모나 조부모들의 천국이었다. 방문객도 적었고 적당히 넓었으며, 아이를 놀게할 놀이터들도 많았다.


  외가는 10년 전에 이미 광진구로 터를 옮겼지만 나는 여전히 성수동에 놀러간다. 

  서울숲의 빈틈은 세월이 그 대부분을 메꿔주었다. 앙상했던 나무들은 어엿한 아름드리 나무들이 되었고 연못은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풋풋하다 못해 아린 맛이 났던 서울숲에 적당한 시간이 묻으면서 어엿한 숲으로 성장했다. 도시 한복판의 숲은 사람들을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기름 냄새 풀풀 나던 

  자동차공업단지는 잊어라


  성수동은 원래 서울 외곽의 자동차 공업사들이 즐비한 공단이었다. 늘 으슥한 분위기를 풍겼으며, 날카로운 굉음과 기름 냄새가 자욱한 동네였다. 

  하지만 서울숲이 들어서고 성수동은 변했다. 공업 단지는 야금야금 사라졌고 타워펠리스가 들어섰다. 한강뷰와 포레스트뷰를 한번에 잡는 이점 덕분에 동네의 가치는 단숨에 올라갔다. 

  공단이 빠지면서 성수동 주민들도 나의 외가처럼 이동했다. 빈 자리에는 카페들이 들어섰다. 숲 근처라는 이점을 활용하였고 제대로 먹혔다. 빨간 벽돌로 쌓아올린 80년대식 오래된 다세대 주택이었지만 레트로 열풍이 불면서 그 자체가 인테리어가 되었다. 

  카페를 찾은 소비자들을 먹이기 위해 식당들이 들어섰다. 배가 부른 소비자들을 위해 플리마켓과 팝업스토어가 입점했고 성수동은 변했다.


  아직도 성수동에서 건대로 넘어가는 구역에는 자동차 공업단지가 남아있다. 하지만 지금 성수동을 떠올리면 공단보다는 카페와 식당, 서울숲이 먼저 떠오른다. 

  동네에 노동자보다는 소비자가 더 많이 들락날락했고 성수동 상권은 강남과 비교해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 

  좁고 조밀한 동네에 소비자가 북적이면서 개성 넘치는 카페와 식당이 눈에 띄었다. 실제로 성수동에 가면 시그니처 음료를 가진 존재감 짙은 카페들이 여럿있다. 

  아무도 상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와 놀아주던 할아버지도, 서울숲을 마뜩잖아했던 외가 식구들도, 거기에 살던 그 누구도 성수동이 강북에서 가장 제일가는 상권이 되리란 것을.




  레트로에 조금만 더 집중해보자


  성수동이 지금의 위치에 도달한 것에는 서울숲을 비롯한 여러 요인이 있지만 레트로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성수동 카페거리와 그 사이사이 골목을 들어가보면 대단히 정갈하고 세련되었다는 느낌을 받기 힘들다. 영원히 색을 잃을 것 같지 않는 새빨간 벽돌로 켜켜이 쌓아올린 빌라들과 오래된 저층 아파트, 색이 바랜 창문들이 우리를 반긴다. 

  하지만 이게 웬걸, 소비자들은 그 분위기에 이끌려 성수동을 찾았다. 레트로를 바탕으로 조금만 뜯어고쳐서 지저분한 것만 깔끔하게 다듬었다. 

  현재와 공존하는 잘 갈무리된 과거. 그리고 이것은 곧, 뉴트로라고 불리었다. 너무 세련되어 불편하지도, 너무 낡아서 불안하지도 않았다. 


  빨간 벽돌 빌라에 화려하게 수놓은 네온사인과 새파란 하늘은 생각보다 장관이었다. 길 옆에는 서울숲에서 뻗어나온 나뭇가지들이 있었고 과거와 공존한 현재를 소비자들은 좋아했다. 

  흐름을 잘 타고났다고 해야할까. 외갓집은 이런 빨간 벽돌집이었다. 집 구조가 생생히 기억난다. 옥상까지 있었으니 아마 재개발되지 않았다면 루프탑 딸린 유명한 커피집으로 재탄생하지 않았을까. 

  어찌되었건, 뉴트로는 성수동 열풍에 한 몫을 했다. 소비자들은 이런 성수동의 광경과, 성수동에 있는 나를 인스타에 올리기 위해서라도 한 번쯤은 성수동에 찾았다.  




  나는 성수동이 좋다, 

  조금은 오래 갔으면 좋겠다.


  나는 성수동이 좋다. 내가 알던 성수와는 사뭇 다르지만 그 익숙한 향수는 나를 어린아이로 돌려놓는다. 할아버지와 손잡고 놀던 서울숲을 이제는 연인과 손잡고 거닐기도 한다. 

  손에는 슬러시를 들고 외갓집 옥상에서 고기를 구워먹던 성수에서 나는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속이 꽉찬 새우버거를 먹는다. 

  골목이 지루해지면 쪽문을 타고 들어가 서울숲에서 푸르름을 본다. 저녁으로는 갈비골목에서 갈비를 구워 먹어도 좋다. 나는 성수동이 죽어가는 골목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경리단길의 성공신화는 모두가 알고 있다. 외국인들과 로컬들만 찾았던 독특한 분위기의 식당과 카페에 호기심을 느낀 소비자들이 골목을 찾았다. 

  길은 활발해졌고 그 대가로 월세가 올랐다. 감당할 수 없는 월세에 견디지 못하고 경리단길의 구성원들은 자리를 떠났다. 그 자리에는 트렌드만을 좇는 획일적인 식당들이 들어왔다. 소비자들을 불러모으던 가게들이 사라지자 발길은 뜸해졌고, 길은 쇠락했다. 

  나는 성수가 이 절차를 밟지 않았으면 한다. 불행히도 성수동의 땅값은 강북에서 손에 꼽을 지경이 되었고 강남과 비교해도 차이가 크지 않다. 그렇다면 성수는 이대로 쇠락한 동네가 될까.


  나는 경리단길과 성수가 조금 다르다고 생각한다. 경리단길은 그곳에 속한 구성원들이 경리단길 자체였고 그것을 구성했다. 

  하지만 성수는 이미 존재하는 공간에 구성원들이 채워졌다. 서울숲이 성장하고 공단들이 지나간 자리는 세월의 긁힘이 있다. 한국적이며 땀방울이 떨어졌던 공간은 포근하다. 포근한 공간은 이렇게 어엿한 상권을 이루었다. 구성원들은 아직 자리를 이탈할 마음이 없어 보인다. 

  가장 큰 이유는 지극히 자본주의적이게도 장사가 잘 되어서겠지만 성수가 좋아서 떠나지 않는 구성원들도 있다고 나는 믿고 싶다. 사실 경리단길의 쇠락을 예측한 이는 많지 않다. 그래서 성수도 어느 순간 잊혀진 동네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성수동이 오래 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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