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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식작가 Aug 24. 2022

괜찮아,
인스타그램에 올릴 사진은 건졌어  

외식과 나의 이야기 

  나의 인스타그램 답사기


  너만 계정이 없다며 빨리 만들어서 아이디를 부르라던 동기의 타박 덕분에 나는 인스타를 시작했다. 시끌벅적한 술자리를 찍어 올리고, 훌쩍 떠난 여행을 알렸다. 간만에 잘 받은 성적을 자랑하고, 동아리를 홍보 하기도 했다. 오래전 친구와 지인들의 소식들도 알 수 있었으니 이전 세대의 SNS의 역할을 잘 이어받았다. 

  그러다 깜짝깜짝 놀란다. 불안보다는 행복으로 뒤덮힌 인스타그램을 보면 피어오르는 이 묘한 기분은 뭘까. 여타 SNS보다 더 파괴적이고 더 지배적으로, 인스타그램은 그렇게 스며들었다. 


  다른 SNS들과 비교했을 때 인스타그램의 차별점은 감성과 트렌드다. 글보다는 사진에 중점을 둔 SNS이며, 읽히는 것 보다 보이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쏟아지는 컨텐츠 속에서 요약과 단축은 중요했다. 몇 개의 사진으로 하고자 하는 말을 연출해야했다. 그래서 지속성이 있는 '피드'는 물론, 휘발성이 있는 '스토리'에 올라가는 사진마저도 철저한 자기 검열이 필요했다. 편집도, 보정도 중요했지만 무엇보다 피사체가 가장 핵심이었다. 

  그래서 인스타에 올릴만한, 이른바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able)한 것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트렌드에 민감한 일부 외식 시장은 이미 인스타그램에 지배당했다


  꽤 많은 수의 소비자들이 인스타에 올릴만한 사진을 건지기 위해 매장을 찾았다. 인스타가 고객을 끌어들이는 핵심 요소가 된 것이다. 

  20~30대를 타깃으로 하는 외식 업체들은 인테리어에 많은 공을 들이고 음식의 외관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감성과 트렌디함으로 무장한 매장들은 빠르게 고객을 모을 수 있었다. 

  인스타를 보고 방문한 고객들이 다시 '스토리'나 '피드'에 올리면서 정보과 끊임없이 재생산되었다. 소비자들이 알아서 마케팅 도구가 된 것이다. 어느새 인스타는 가장 중요한 마케팅 수단이 되었다. 


  카페는 인스타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업종이다. 프랜차이즈가 아닌 개인 카페들은 차별점이 필요했다.

  전반적으로 맛의 상향평준화가 된 커피 시장에서 신규 카페들이 음료만으로 승부를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예쁘고 독특한 음료와 디저트, 분위기 있는 인테리어를 내세웠다. 심지어 포토존을 따로 꾸며 놓은 경우도 있다. 이제 국내 개인 카페 업계에서 인스타는 필요를 넘어 필수가 되었다. 

  사장님들은 인스타를 다루는 것에 능숙해야만 했고 매장에 방문한 손님뿐만 아니라 손님들의 인스타도 신경을 써야했다. 




  괜찮아, 인스타에 올릴 사진은 건졌어. 


  이른바 인스타에서 핫한 카페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 사진이 예쁘게 나왔고 디저트가 맛있어 보였다. 무엇보다 핫한 곳에 있었다. 웨이팅을 뚫고 다닥다닥 붙은 자리를 헤치고 음료와 디저트를 받았지만 괜찮다. 30,000원 정도 나왔지만 괜찮다. 저가형 카페에서 사먹을 수 있는 음료 맛과 냉동 크루와상을 데운 것 같지만 괜찮다. 음료가 예쁘고, 디저트가 볼만했고, 사진이 잘 나왔으니 괜찮다. 근데 사실 안 괜찮은 것 같다. 


  전통적인 외식업에서 '맛'은 불변하지 않는 절대 원칙이다. 마케팅을 비롯한 인테리어, 상권, 서비스 등 이 모든 것은 맛있는 음식을 만든다는 대원칙에 기반한다. 손님을 의자에 앉히기 위해선 온갖 수단이 필요하지만 꾸준히 의자에 앉히기 위해서는 '맛'보다 우선되는 것이 별로 없다. 

  하지만 인스타그램이 등장하면서 이 절대불변의 원칙을 깨고 성공을 거둔 매장들이 등장했다. 손님을 의자에 앉히기 위한 수단 중 하나가 인스타그램 마케팅이었다.그러나 생각보다 효과가 너무 좋아서 '맛'보다 우선되는 경우가 생겨났다. 물론 이건 일부의 경우지만 가끔은 일부가 전체를 대변하기도 하니까.


  이런저런 잡음이 있어도 인스타는 여전하다. 아직은 앞선 내 상황에서 괜찮아를 외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인스타를 보고 가게의 문턱을 넘긴했으니 소기의 목적은 이미 달성한 셈이다. 

  이 쓸모있음 덕분에 인스타그램도 포화상태가 되고 있다. 한창 유행했던 그리고, 조리돌림을 당했던 인더스트리얼 인테리어는 원래 산업과 공업의 느낌을 물씬 풍기는 모던한 인테리어였다. 그러나 점점 더 원초적인 공사장에 가까운 인테리어들이 등장했고 소비자들은 사진을 건지기 위해 그런 매장들을 찾았다. 

  다른 유행으로는 루프탑이있다. 루프탑에서 먹는 음식과 술, 커피는 인증샷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렇게 핫플레이스의 건물 옥상에는 온갖 루프탑들이 세워졌다. 




  지구 최후의 SNS, 인스타그램?


  나는 인스타그램을 잘 하지 않게 되었다. 항상 잘 살고있노라고 끊임없이 팔로워들에게 주지시켜줘야 하는게 생각보다 피곤한 일이었다. 

  인스타를 위해 만들어진 식당과 카페를 돌아다니는 것도 슬슬 지쳐가던 참이었으니 거기에 더하여 각종 이유들로 하여금 인스타를 멀리하게 되었다. 


  물론 나는 인스타그램의 덕을 톡톡히 볼 때도 있었다. 인스타그램 덕분에 오래된 노포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허름한 외관 덕분에 절대 들어가지 않았던 식당에 가게 되었다. 우리 동네에 숨어있던 맛집을 찾은적도 있었으며 여행지에서의 맛집 실패가 줄어들었다. 

  이미 실력을 갖추고 재야에 숨어있던 고수들을 끌어올리는데 큰 공을 세웠다.  


  재야의 고수들은 인스타가 아니었어도 그 자리에 오를만한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인스타가 지금의 위상을 잃는다면 거품이 꺼지듯 사라질 가게들이 있다. 비난하고 비판할 일은 아니다. 시대의 흐름을 읽고 파도에 타는 것도 엄연한 실력이니까. 

  하지만 내가 식당과 카페에서 바라는 것들이 종종 보이지 않을때가 있어서 아쉬울 뿐이다. 조금만 더, 아니 솔직히 조금 많이 맛과 서비스에 신경을 써줬으면 하는 바램이다.


  "인스타에 올릴 사진은 건졌는데 그래도 이건 아닌 것 같아"라고 말하는 소비자가 많아지기 시작하는 그 순간, 인스타그램 마케팅은 종말을 맞을 것이다. 

  내가 주문한 파스타와 커피가 피사체라기 보다는 다시 음식이라고 인식되고 더 이상 식당과 카페의 인테리어 속에서 사진을 찍지 않을 때, 우리는 새로운 SNS를 하고 있을지 모른다. 

  인스타그램는 인류의 마지막 SNS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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