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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식작가 Aug 28. 2022

어머니는 즉석밥이 싫다고 하셨어

외식과 나의 이야기

  엄마는 즉석밥을 싫어했다


  어려서부터 우리 가족은 이곳저곳을 여행했다. 펜션부터 캠핑까지 섭렵한 우리 가족은 먹는 것에 늘 진심이었다. 어떤 여행에서도 즉석밥은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다. 엄마는 항상 생쌀을 들고 다니며 밥을 지었다. 엄마는 어쩔 수 없이 즉석밥을 먹을 때마다 특유의 맛과 향이 난다면서 썩 좋아하지 않았다. 

  엄마의 밥을 먹으며 자라온 나는 자연스레 즉석밥을 찾지 않았다. 솥에서 갓 지은 밥의 묵직한 열기는 그 어떤 것보다도 뜨거웠고 적수가 없었으니까.


  고등학교 때 요리를 배우면서 처음으로 밥을 직접 지었다. 비로소 나는 밥 짓기가 얼마나 수고스러운 일인지 알았다. 

  쌀을 씻고, 물을 맞추는 것은 기본이고 밥을 안치는 순간부터 꾸준히 관심을 주어야 했다. 까닥하면 탄내가 진동하거나 너무 일찍 뚜껑을 열면 설익기 일쑤였다. 그렇게 스무살이 된 나는 밥 짓기를 내려놓았다.   전기 밥솥이라는 훌륭한 가전이 있었지만 그보다 더 간편한 즉석밥을 택했다. 살면서 처음으로 내 돈으로 즉석밥을 구매했다. 




  자취생의 영원한 친구


  즉석밥의 비닐을 살짝 뜯고, 적당 시간동안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끝. 간단한 조리법 덕분에 나를 비롯한 여러 자취생들을 구원해주었다. 5분도 걸리지 않는 조리시간과 간단한 뒷처리는 이미 큰 장점이었다. 

  박스로 구매하면 개당 1,000원도 하지 않기에 그리 부담스러운 가격도 아니니 이보다 더 좋은 대안은 없어보인다. 날이 갈수록 커져가는 즉석밥 시장의 일등공신은 역시 자취생들이었다. 


  사실 이제 즉석밥은 자취생만의 절친은 아니다. 밥 짓기가 부담스러운 맞벌이 부부이나 밥에 큰 신경을 쓰지 않는 가정에서도 찾기 시작하면서 이젠 식탁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제품이 되었다. 

  가정집에서 햇반을 돌려 먹는다는 것은 원래 아주 어색하고 불편한 광경이었지만 요즘은 또 그렇지도 않다. '간편'하다는 장점은 생각보다 다른 모든 단점들을 상쇄시켜주었다. 

  1시간 가까이 걸리던 시간이 극적으로 단축이 되었으니 정신없는 일상에 스며들기 딱 좋았다.




  평생 밥만 먹고 산 한국인들이 끄덕인다


  내 자취방에 왔던 엄마가 정말 오랜만에 즉석밥을 먹었던 적이 있었다. 걱정과 달리 엄마는 잘 먹었다. 이제 그 즉석밥의 맛과 향이 많이 죽었다면서 먹을만하다는 평을 내렸다. 

  즉석밥을 밥솥에서 갓 지은 밥과 비교하는 것은 당연히 실례다. 하지만 한 끼 먹기에는 큰 제약이 없다. 솔직히 말하자면 맛있다고 해도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애초에 평생 밥을 먹으며 살아온 한국인들 입맛에 거슬렸다면 절대 지금의 위치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즉석밥은 흰쌀밥에만 머물지도 않았다. 흑미밥부터, 현미밥, 콩밥, 보리밥 등등 각종 베리에이션이 등장했다. 흰쌀밥의 높은 당은 당뇨 관련 질환에 치명적이었으며 잡곡밥의 풍미를 찾는 소비자들이 생겨나면서 즉석밥 업체들이 다양한 밥을 내놓기 시작했다. 

  당장 나부터도 흰쌀 즉석밥을 먹다가 흑미밥으로 종류를 바꿨다. 괜스레 건강을 챙기면서부터, 그리고 집에서 먹던 잡곡밥이 떠오르면서 생겨난 변화였다. 

  다양한 수요가 있었고, 그에 맞춘 다양한 공급을 하기 시작했다.




  편리함을 구매한다는 것


  전국에 수많은 솥밥집들이 매출을 올리는 이유는 밥에 대한 한국인에 대한 집착 때문이었다. 김이 펄펄 나는 뜨끈뜨끈한 맛있는 밥을 먹는 것은 큰 행복 중 하나이다. 즉석밥은 비교할 수 없는 맛의 깊이다. 

  하지만 즉석밥은 편리함을 구매한다는 개념 아래에서 성장할 수 있었다. 식품업이 단순히 맛으로 결정되는 싸움이었다면 즉석밥을 비롯한 많은 제품들은 시장에 나올 수 없었다. 

  국내 즉석밥의 시작이었던 CJ는 완성된 밥에 편리함을 끼워 팔았다. 어쩌면 편리함에 밥을 끼워 팔았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즉석밥을 포함한 모든 즉석식품은 나의 부모님 세대에게는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다. 급하게, 시간이 없어서 후다닥 한끼를 떼우는 것 이외에는 밥상에 올라와선 안 될 것이었다. 핵가족보다는 대가족이 많았던 시기, 밥솥에서 한 밥을 나눠 먹어야 식구라고 정의할 수 있었다. 

  즉석밥은 출시부터 성공적이었지만 곧바로 식탁에 올라오지는 못했다. 여행용, 비상용, 행사용 등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즉석밥 출시 20여년이 훌쩍 지나고, 즉석밥을 꾸준히 먹어온 세대들은 비로소 즉석밥에 대한 거부감을 거두어들였고 지붕 아래에 즉석밥이 등장했다.  




  적어도 나는 즉석밥을 놓아줄 준비가 안 됐다


  20대 시절 우리 엄마는 상상이나 했을까. 자기 나이대가 된 아들이 즉석밥으로 끼니를 떼운다는 사실을. 

  아무래도 내가 자취를 하면서 밥솥을 구매할 일은 없어보인다. 오뚜기밥을 먹던 내가 제품을 햇반으로 바꿀 일은 있어도 밥을 짓는 것은 도저히 상상 가지 않는다. 

  우리 세대가 가정을 이루고 사는 시기가 오더라도 단번에 즉석밥을 포기할 것 같지 않다. 아이의 이유식도 사먹는 세상에서 아이의 유무와 가정의 존재는 큰 걸림돌이 되지 못하리란 생각이 든다. 

  심지어 우리 세대가 가정을 이루고 살지도 잘 모르겠다. 


  성장중이던 즉석밥 시장은 코로나와 1인가구 증가라는 날개를 달고 더욱 몸집을 키웠다. 코로나가 잦아들었지만 사람들은 한 번 맛 본 편리함을 쉽사리 놓지 못한다. 어느새 다들 즉석밥의 충성고객이 되었다. 

  어떠한 음식이 인기를 끌어도 결국 한국인은 밥심이다. 빵과 면이 흐르는 시대에도 밥은 굳건히 그 위상을 드높혔다. 편리함을 추구하는 세상, 밥을 놓지 못하는 한국인에게 편리한 밥은 최고이자 최선의 선택이었다. 

  떨어질줄 모르는 즉석밥의 인기, 어쩌면 국내 외식시장에서 언젠가 가장 거대한 시장이 되지 않을까, 즉석밥을 가진 기업이 외식시장을 지배하지 않을까. 작은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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