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더듬어보면 '빙수 전문점'은 역사가 길지 않다. 빙수하면 팥빙수가 전부였다. 마트 아이스크림 코너에서 보는 빙수 아이스크림과 시장에서 갈아주는 빙수가 내 기억 속 대부분이었다.
언제부턴가 빙수 전문점이 생겨났고 우유 얼음에 각종 토핑이 들어간 화려한 빙수들이 등장했다. 싸구려 팥빙수는 옷을 바꿔 입으면서 신분이 상승했다. 꽤 고급 디저트같은 태가 났다. 그럼에도 그 가격은 비싸도 20,000원을 넘지 않았다. 결코 저렴한 가격은 아니었지만 보통 2~3명이 나눠 먹으니까 부담 없이 사먹기에는 충분했다.
몇 년 전부터 인스타그램을 타고 망고가 가득 담긴 빙수가 보였다. 신라호텔에서 판매하는 애플망고빙수였다.
언론도 신라호텔 망고빙수를 조명했다. 20,000원 선에서 출발한 애플망고 빙수는 금세 50,000원까지 올랐다. 언론은 오만원짜리 빙수를 판다고 묘하게 가시가 담긴 기사를 찍어냈다.
하지만 노이즈 마케팅이 됐던걸까 아니면 이미 인스타에서 스멀스멀 퍼진 인기 덕분일까, 소비자들은 아랑곳 않고 애플망고빙수에 열광했다. 호텔에서 애플망고빙수 먹는 사치를 누렸고 사진으로 남겼다.
팔수록 손해를 본다는 말, 사실일까
물가가 상승하면서 오만원이었던 빙수값은 팔만원으로 껑충 뛰었다. 그럼에도 애플망고빙수는 꾸준히 소비되었다. 사치와 향락의 상징이 되었다는 일각의 비판은 소비자들의 구매욕을 떨어뜨리지 못했다.
많은 이들이 들어 보았겠지만 신라호텔의 망고빙수는 생각보다 그 가격이 합리적이라고 한다. 제주산 애플망고만을 사용하며 그 중에서도 최상품만 사용하기에 망고 값만해도 상당하고 부수적인 재료비를 더하면 식재료 원가가 80,000원의 대부분을 차지 한다는 것이다.
거기에 인건비와 각종 비용을 더하면 오히려 팔수록 손해를 봤지 빙수를 팔면서 대단한 이익을 취하지 않는다는 사실.
많은 사람들이 제주산 최상품 애플망고의 값을 보면서 이러한 주장을 납득했다. 신라 정도의 국내 최고 호텔이 다른 장난질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믿음과 얼추 맞아들어가는 애플망고의 값, 그것을 맛 본 사람들의 간증이 섞이면서 신뢰도는 올라갔다.
그렇다면 왜 수익성이 높지 않은, 심지어 손해를 본다고 추측되는 메뉴를 신라호텔은 판매하는 것일까. 석학들이 모인 국내 굴지의 호텔이 고작 빙수의 수익성 하나 예측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집단인가.
그놈은 미끼를 던진 것이고,
우린 그 미끼를 물어버린거야
전에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신라호텔에서 애플망고빙수를 파는 이유는 서민들에게 호텔 체험을 시켜주기 위함이라는 글. 듣는 서민 빈정 상할 수 있지만 따지고 보면 생각보다 그럴듯한 이유였다.
신라호텔은 5성급 호텔로 큰맘을 먹지 않는 이상 평범한 직장인이 아무렇지 않게 가서 돈을 펑펑 쓸 수 있는 곳이 아니다. 호텔룸부터, 다이닝과 신라호텔 웨딩 서비스 등은 국내 최상급이다. 우리 같은 소시민들이 자주 가기 힘든 곳이다.
따라서 몇 만원의 값어치를 하는 애플망고빙수는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호텔 체험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몇십, 몇백을 쓰지 않고도 호텔의 내부에서 호텔 시설을 이용하고, 최고의 서비스를 누리면서 입을 호강시킬 수 있는 꽤 좋은 수단인 것이다.
물론 기업은 이런 인도적인 이유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망고빙수는 좋게 말하면 호텔이 베푸는 체험의 기회, 자본주의적으로 말하면 미끼 상품인 셈이다.
1차적으로 소비자가 망고빙수를 먹으러 왔다가 호텔에서 다른 소비를 하게 된다면 이미 의도는 적중한 것이다. 당장이 아니더라도 애플망고빙수를 물꼬삼아 추후에 호텔에서 다른 소비를 할 수도 있다.
또한 소비자들은 애플망고를 먹으면서 호텔 투어를 하고, 품질 좋은 빙수에 만족하면서 '신라'라는 브랜드를 머릿속에 확실하게 각인시킨다.
이러한 각인은 요즘들어 더 중요해졌다. 코로나 덕분에 '호캉스'가 트렌드로 떠오르면서 소비자들은 휴가비를 털어 5성급 호텔에 머물고 싶어했다.
신라호텔도 당연히 그 대상이었다. 신라가 서민들에게 호텔 체험을 시켜주면서 그 서민들은 큰맘 먹고 호텔 투숙을 결정했다. 빙수를 먹으며 가졌던 긍정적인 경험은 호텔이 자신을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변했다.
호텔 서비스를 '찍먹'해보면서 몸소 체험하는 것. 아무리 5성급 호텔이 좋다고 하지만 말로 듣고, 사진으로 보는 것은 한계가 있다. 내가 직접 겪으면서 호텔 브랜드에 친숙해지는 것만큼 좋은 기회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신라호텔 망고빙수는 최고의 미끼인 셈이다.
아직 우린 순순히 미끼를 물고 있다
가격이 올라갔음에도 소비자들이 망고빙수에 열광한 것은 신라호텔이 설득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 설득에 넘어갔다. 큰맘 먹고 돈을 쓰고 싶은 날, 기분 좋게 한 번 가고 싶다. 한 입 가득 망고와 얼음을 퍼서 입에 잔뜩 넣으면 기분이 안 좋을 수가 없다.
내 입에 들어가는 것이 같은 무게의 소고기보다 비싸다는 것을 알면서도 개의치 않을 것 같다. 물론 신라호텔이 지금처럼 가격대비 맛과 서비스의 질을 유지한다면.
우리가 순순히 미끼를 문 것은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최상품의 제주산 애플망고를 사용하고, 깔끔한 위생, 그에 걸맞는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라는 확신. 신라의 망고빙수는 '프리미엄' 제품군의 절정에 위치하고 있다. 하지만 프리미엄이라는 단어는 무게감이 있다. 단 한 개라도 어긋나면 소비자는 프리미엄 소비의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 신라호텔의 성장세는 당연히 망고 빙수 때문만은 아니다. 하지만 SNS 세대들에게 신라를 강력히 어필 할 수 있었던 것은 빙수의 공이 크다. 그들은 소득 대비 씀씀이가 크기 때문에 잠재 고객이 충분히 될 수 있다. 애플망고빙수는 절대 신라입장에서 손해보는 장사가 아니다.
신라는 애플망고를 꾸준히 그들의 미끼로 쓸 수 있을까. 어설픈 미끼는 오히려 물고기를 도망가게 한다. 언제까지나 먹음직스럽고 탐스러운 미끼가 될 수 있을까. 미끼가 도려 낚시꾼을 해하지 않을까.
우리는 물고기. 단순하지만 정확하다. 맛있는 것을 먹고 싶고, 손해보고 싶어하지 않는다. 아직은 빙수라는 미끼를 물고 있지만 언제든 등을 돌릴 준비가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