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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소주가 전통주면 안되나?

외식과 나의 이야기

by 식작가

국민의 술, 소주


한국을 대표하는 술이 뭐냐고 누가 묻는다면 나는 주저않고 소주라고 답할 것이다. 한국인이 가장 많이 마시는 술이며 가장 손쉽게 구할 수 있다.

시원한 소주를 먹으면 달큰한 맛이 아주 살짝 올라갔다가 시원하게 목을 넘기면서 알콜향이 코로 올라온다. 그렇게 어떤 한식과도 잘 어울리는 소주는 우리의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주는 서민의 술이다.

그리고 서민의 술은 점점 진화하고 있다. 프리미엄을 내걸며 고급소주들이 앞다퉈 출시되었고 그 앞에는 '원소주'가 있다.


소주는 원래 소줏고리에서 증류 과정을 거쳐 한 방울씩 내리는 고급 주류였다. 소주를 내리는 것은 고도의 기술을 요했으며 많은 양의 곡식이 필요했기 때문에 예로부터 서민들과는 거리가 먼 술이었다.

그랬던 소주는 현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증류식이 아닌 희석식으로 대량 생산되기 시작했다. 에탄올에 물과 감미료를 섞어서 증류라는 복잡한 과정을 생략하고 손쉽게 소주를 만들 수 있었다. 매우 저렴했고 비록 그 맛은 떨어졌을지라도 마시면 취하는 것은 같았기 때문에 한국의 주류 시장을 장악했다.

싸고, 쉽게 취하는 술은 소주가 유일했다.




소주는 어른의 맛?


소주를 처음 마시면 생각보다 강한 알콜향에 다들 얼굴을 찡그린다. 아빠들은 그렇게 달콤하게 마셨지만 왜 내 입에는 쓰기만 할까. 소주가 달면 어른이 된 것이라고들 하는데 아무래도 나는 어른이 되기는 그른 모양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소주가 단 것은 어른이기 때문이 아니라 감미료 덕분이다. 그 감미료 맛이 느껴진다는 것은 곧, 단 맛을 예민하게 느낀다는 소리야. 그뿐이다.


가끔 외국인들이 소주를 마시고 감상평을 하는 유튜브를 볼 때가 있다. 그들은 대부분 깔끔한 맛, 혹은 밍밍하다고들 한다. 아마 그들이 마시는 독주가 오크향 넘치는 위스키와 독한 보드카이기 때문은 아닐까.

소주는 절대 깔끔한 술이 아니다. 인공적인 에탄올향이 당연하게 날 수 밖에 없다. 강한 숙취와 구역질을 유발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것은 저렴한 가격과 맞바꾼 대가였다.

그래서 희석식 소주보다 증류식 소주를 찾는 사람들이 있었다. 안동소주처럼 최고급, 높은 도수가 아니라 희석식에서 한단계 올라간 입문용 증류소주를 선호했다. 부담없이 가볍게 한잔하고 싶어하는 소비자들이 생겨났다.


이런 소요에는 적당한 도수의 전통주가 제격이었으나 이제껏 '전통주'는 각광받는 주류가 아니었다. 영세 양조장에서 만든 것이 대다수였기 때문에 접근성이 다소 떨어졌고 마케팅이 부족했다.

하지만 혜성처럼 등장한 것이 원소주였다. '만든이'의 유명세 덕분에 출시 전부터 인지도가 있었다. 맛은 물론이고 그 인지도 덕분에 유통채널도 확보하였다. 전통주 시장에서 가장 절실했던 마케팅과 유통이라는 큰 산을 넘은 것이다. 일반소주에 비해 가격 경쟁력에서 밀리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프리미엄'이라는 트렌드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먹어본 원소주 리뷰


깔끔하다. 살짝 달큰한 맛이 감돌면서 목으로 부드럽게 넘어간다. 목으로 넘어가면서 알콜향이 올라온다. 그건 인공의 에탄올 향이 아니라 곡물로 발효시킨 특유의 알콜향이다.

솔직이 단맛이 넘쳐나고 유려한 향이 올라오면서 알콜향을 덮어주거나 하지는 않는다. 술을 잘 못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찡그리고 먹을 것이다. '술맛'이 분명 강한 술이다. 하지만 우리가 평소에 먹어온 소주와 다른 것은 확실하다.


24도라는 도수는 생각보다 높은 도수다. 우리가 평소에 먹는 소주보다 7도 가량 높다. 술맛이 나는 것은 당연지사. 그러나 그 술맛은 조금 다른 술맛이다. 강하게 코를 때리는 알콜이 아니라 목으로 넘어가면서 은은하게 꽉 차오른다. 마치 밀물처럼. 밀물같은 향은 들어올 때처럼 깔끔하게 사라진다.

개인적으로 맛있다. 부담스러운 도수도 아니고, 강한 알콜향이 넘치지도 않는다. 과하게 꾸민 술이라기 보다는 덜어낼 것을 덜어낸 술 같다.


숙취도 없다. 마시던 도중 온더록으로 갈아타서 그런지 생각보다 빨리 마셨다. 마시면서 다음날 숙취가 있을 수 있겠다고 각오를 했지만 걱정이 무색하게 숙취는 없었다. 상당히 깔끔하게 마무리 되었다. 구하기 힘든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내가 먹은 것은 원소주의 두 번째 시리즈인 원소주 '스피릿'이었다. 편의점 출시를 위해 숙성 과정을 없애고 생산량을 늘린 제품이다.




원소주에 날개를

달아준 '전통주'라는 이름표


맛, 패키지 디자인, 판매자의 영향력, 유통 채널 등등 여러 장점으로 무장한 원소주였다. 그 장점 중 쟁점이 된 것은 전통주라는 이름표였다.

현행법상 '전통주'라는 것은 요구조건이 선행되어야한다. 3가지 조건 중 하나를 만족해야 하는데 원소주는 지역 특산물로 만든 지역전통주로서 인정 받았다.

이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의문점을 안겨주었다. 현행법상 시중의 많은 술들이 전통주의 기준에 부합하지 못한다. 심지어 대다수의 막걸리마저도. 이런 상황에서 '연예인'이라는 자본가가 만든 소주가 전통주가 되는 것이 맞느냐는 것이다.


전통주라는 칭호에 목을 메는 것에 이유가 있다. 전통주는 온라인 판매가 가능하다. 오직 오프라인으로만 판매할 수 있는 술을 온라인으로 판매할 수 있게 해준다. 전통주가 대부분 영세한 양조장에서 생산되기 때문에 그들의 활로를 열어주고자 허용하였다.

원소주는 이런 전통주의 이점을 톡톡히 누렸고 온라인 판매를 통해 매진 신화를 써냈다. 그런 성공에 힘 입어 편의점이라는 주류 판매에 최적화된 유통 채널을 얻을 수 있었다(물론 다시 강조하지만 만든이의 '유명세'와 맛 역시 크게 한 몫했다.).


이런 원소주 성공에 태클을 건 것은 같은 전통주 제조업자가 아니라 대기업이었다. 오히려 전통주 양조장들은 원소주의 성공을 반겼다. 덕분에 젊은 세대가 전통주에 관심을 가지면서 전통주 산업이 부흥기를 맞았기 때문이다. 관심 밖에 었던 전통주가 코로나와 온라인 판매, 원소주에 성공을 등에 업고 차차 올라오고 있었다.

하지만 법 개정의 움직임이 보인다. 전통주 기준을 바꾸는 것이다. 막걸리와 몇몇 익숙한 제품들이 전통주 범주에 들어올 것 같다.

모호한 기준을 바꾸자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결국 대기업이 온라인 시장에 진출하면서 진짜 '전통주' 양조장들이 주춤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걱정된다.




전통주를 계속 마시고 싶다


나는 전통주가 좋다. 지역별로 정말 독특한 술들이 있다. 강원도에는 감자주가 있다. 술에서 감자향이 나는데 솔직히 내 입맛은 아니지만 그런 다양한 술들을 경험해 본다는 것 자체로 즐겁다.

최근에는 전통주 온라인 판매를 겨냥한 구독서비스 등 젊은 세대를 겨냥한 각종 마케팅이 등장했다. 카카오톡 기프티콘으로도 주고 받을 수 있다. 나도 술을 좋아하는 지인들에게 생일 선물로 가끔 보내주곤 했다.

전통주는 우리 생활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있다. 어른들의 술, 접하기 어려운 술이라는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마케팅과 매력적인 패키징, 독특한 맛과 향으로 우리에게 성큼 다가왔다.


영향력 있는 연예인이 소주 사업을 시작한다 했을 때 나도 고개를 갸우뚱 했다. 그러나 그 맛과 판매, 그것들로부터 파생된 각종 효과를 보건데 성공했다는 말이 아깝지가 않다.

이런 원소주가 불고 온 전통주의 바람이 쉽사리 꺼지지 않았으면 한다. 감자주처럼 독특한 술들이 얼마든지 시장에 나올 자격이 있고 우리를 즐겁게 해줄 수 있다.

분위기 좋은 날, 기념하고 싶은 날, 와인이 아니라 전통주를 꺼낼 수 있는 날이 오길. 대기업보다는 독자적인 그들만의 시장이 굳건히 형성되는 날이 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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