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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식작가 Sep 19. 2022

평양냉면으로 싸우는 우리

평양냉면을 한 번이라도 먹어본 당신에게

  냉면 하면 이북이고, 평양이라는 말


  냉면. 말처럼 차갑게 먹는 면. 냉면은 보통 앞에 지역이 붙기 마련인데 가장 유명한 것이 평양과 함흥, 냉면을 좀 좋아한다 싶으면 진주까지 알고 있다.

  빨간 양념에 쫄깃한 회가 들어간 함흥과 해물육수를 사용하고 육전 고명이 특징적인 진주는 그 맛의 개성이 확실하다. 서로 강한 양념과 특징적인 고명으로 존재감을 뽐낸다. 

  그렇다면 평양은? 슴슴하고 밍밍한, 그러나 담백하고 깔끔한. 이것이 한국에서 평양냉면을 먹어본 소비자들의 주된 맛 평가였다. 냉면은 평양이 으뜸이라는 말. 으뜸인 냉면은 정말 슴슴하고 밍밍한 것이었단 말인가?  


  내가 평양냉면을 처음 먹었을 때로 돌아가 본다. 먹기 전부터 워낙 별의별 소리를 다 들었었다. 무(無) 맛이다, 간이 안된 것 같다, 물을 먹는 것 같다, 심지어는 걸레 빤 물맛 같다는 소리까지. 하지만 평양냉면 마니아들은 조금 다른 평을 내렸다. 깔끔하고 시원한 맛. 처음에는 모르지만 먹다 보면 빠지는 맛.

  나는 이런 모든 평가를 감안하고 평양냉면을 먹었다. 충격적이었던 첫맛. 면과 육수 아주 저편에서 느껴지는 고기육수의 구수함과 동치미의 시원함. 분명 맛이라는 것은 존재했지만 너무너무 미약했다. 깊은 곳에 숨은 맛을 끄집어내서 느껴야 했다.

  내가 가진 음식이라는 것의 범주에서 살짝 벗어난 것 같기도 했다. 정말 이게 평양냉면인가?   




  시간을 100년만 돌려보자


  이제는 여름 대표 별미가 되었지만 냉면은 엄연한 겨울 별미였었다. 김치가 시어버리는 여름에는 동치미를 만들 수 없었다. 이북에서는 코가 깨질 것 같은 겨울에 살얼음 뜬 동치미 국물을 퍼서 '랭면'을 해 먹었다고 한다.

  평민에게 고기 육수는 귀했기에 동치미 국물만 넣은 평양냉면도 있었다. 그에 비해 고기를 자주 접할 수 있었던 상류층은 고기 육수 혹은 고기육수와 동치미 국물을 적절히 섞어서 먹었다. 그래서 지금처럼 평양냉면이 정확히 무엇인지 규정할 수 없었다. 집집마다, 계층마다, 지역마다 레시피가 천차만별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조선 후기, 근대가 시작되고 냉면의 맛이 전해지면서 냉면은 이북뿐만 아니라 한양에서도 즐기는 사철 음식이 되었다. 그즈음 평양냉면의 맛이 정형화되었다.


  물론 근대로 접어들었음에도 고기는 여전히 귀한 음식이었고 동치미는 여름에 힘을 쓰지 못했다. 조금은 슬프게도 그 당시 평양냉면의 맛을 내는 주재료는 고기도, 동치미도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최초의 MSG, '아지노모토'라는 일본 제품이었다. 

  극한의 감칠맛을 주는 아지노모토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고 한양의 면옥 집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래서 그 당시 평양냉면의 맛을 쓴 기록과 실향민, 생존자들의 기억은 대부분이 아지노모토를 넣은 평양냉면이었을 것이다라는 추측이 지배적이다. 

  대다수 서울에 유서 깊은 면옥들이 이러한 실향민들과 생존자들의 기억과 향수, 그들로부터 알음알음 전해지던 냉면의 맛에 뿌리를 두기 때문에 진짜 평양냉면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은 더욱 미궁으로 빠진다.


  


  이번에는 북한으로 간다


  북한과 교류가 한창이었던 2010년대 후반, 북한으로 공연을 갔던 연예인들로부터 다소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졌다. 냉면의 본류인 평양에서, 그 평양에서 가장 유명한 옥류관에서는 평양냉면을 먹을 때 양념을 해서 먹는다는 것이었다.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평양냉면 마니아들이 들으면 천인공노할 소식이었다. 슴슴한 국물과 그런 국물 저편에서 나는 육향과 동치미의 시원함으로 먹는 것이 아니었다니. 

  북한에서 랭면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몇십 년 사이에 북한마저도 먹는 방법이 달라졌다. 적은 양념으로 랭면을 즐기던 북한이 자극적인 맛을 추구했다. 다름 아닌 평양이 원산지인 평양냉면에서 말이다.


  양쪽의 말이 다르다. 평양냉면을 즐기는 두 나라에서 먹는 법이 다르다. 남한에서는 오히려 평양냉면을 온전히 즐기려고 하고 있으며, 북한에서는 다채로운 맛을 중시하기 시작했다. 평양냉면의 시작은 분명 이북인데 우리는 지금까지 잘못 먹고 있던 것일까. 

  양념을 치는 평양냉면 초보자들에게 했던 타박은 맛을 모르는 무지렁이들이나 하는 짓이었을까. 애초에 우리가 평양냉면을 사랑한 이유는 어디에 있었나. 왜 우리는 냉면으로 얼굴을 붉히게 되었을까.




  며느리도 모르는 진짜 평양냉면


  다르다. 그 어느 곳도 진짜 평양냉면을 만들 수 있는 곳이 없다. 하지만 다를 수밖에 없다.

  우리의 김치는 절이고, 무치고, 익힌다는 굵직한 레시피는 존재하지만 지역마다, 계절마다, 재료마다 천차만별의 레시피가 존재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것들을 모두 '김치'라고 부른다. 젓갈 없이 시원한 김치를 즐기는 사람이 젓갈이 듬뿍 들어가 콤콤한 김치를 먹는 사람을 나무라지 않는다.

  평양냉면도 그랬다. 평양냉면의 육수는 집집마다 재료가 달랐고 계층마다, 계절마다 달랐다. 누구도 평양냉면이 어떤 것인지 속 시원하게 말할 수 없다.


  소, 돼지, 꿩, 닭 등등 다양한 동물들로 고기 육수를 우렸다. 고기가 없으면 동치미만으로 랭면을 말아먹었다. 심지어 고기 육수를 '차게' 식혀먹는 인류의 식문화에서 찾아보기 힘든 음식인 만큼 그 누린내와 잡내를 잡기 위해 다양한 방법과 배합을 사용했다.

  애초에 평양냉면은 하나로 규정될 수 없는 음식이었다. 아지노모토의 출현 이후부터 일관된 맛을 낼 수 있었고 보존기술과 경제의 발달로 고기를 쉽게 접하면서 겨우 윤곽을 잡아간 것이었다. 그마저도 남한에 국한되었다.

  그리고 트렌드와 기호에 맞게 양념을 했다. 양념은 그 길고 복잡한 평양냉면의 역사에서 고작 끄트머리를 장식할 뿐이었다.




  우리의 혀는 존중받아 마땅하다


  100년 전 평양냉면이 아지노모토로 점철됐었고, 200년 전 평양냉면이 한겨울에 먹는 별미였다면 100년 뒤 평양냉면은 어떤 모습일지 상상할 수 없다. 

  다양한 모습이 존재했던 평양냉면의 삶에서 국물에 양념을 치는 문제는 대단한 것이 아니다. 슴슴한 것도, 자극적인 것도 모두 평양랭면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평양냉면의 역사 자체를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부터가 이미 근본이 없는 음식이라는 소리다. 


  나는 개인적으로 슴슴한 국물 맛을 조금 즐기다가 식초와 겨자를 어느 정도 넣어 먹는 것이 입에 맞는다. 나는 평양냉면을 내 고귀하고 우아한 취향을 자랑하기 위해 먹는 것이 아니다. 뜨거운 여름날 시원한 국물을 마시고 면을 먹기 위함이다. 

  사람의 기호는 평양냉면의 조리법만큼이나 다양하다. 평양냉면의 국물로 첨예하게 다투는 우리의 혀는 모두 존중받아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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