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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비가 내린다, 배달비

언젠가부터 음식값보다 비싼 배달비

by 식작가

생각할수록 어색한 단어, 배달비


배달비는 이제 너무나도 당연한 지출이 되었다. 나는 6,000원짜리 짜장면이 먹고 싶어서 군만두를 추가해서 최소주문금액 10,000원을 맞춰야 했고 배달비 3,000원을 따로 내야 했다. 최소주문금액이 없는 곳도 가끔 있었지만 배달비가 6,000원이었다. 서비스를 이용하고 비용을 지불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행동이지만 우리는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과거의 나는 현관에서 짜장면을 받을 때, 배달비를 따로 냈었던가?


<피자, 치킨, 보쌈, 족발, 중식> 이렇게 다섯 가지 음식은 머나먼 옛날, 배달음식의 최강자였다. 이들 외에 경쟁자는 마땅히 없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최강자가 되었다. 대표적인 배달음식이었지만 우리는 이것들을 시키면서 딱히 배달비 걱정을 하지 않았다. 확실히 그 당시 배달은 몇 개의 업종이 가진 차별점이었다. 조금 식더라도 맛이 크게 떨어지지 않고 다(多)인용 메뉴를 가진 음식점들이 손님을 유치하기 위해 사용한 전략인 셈이다. 그래서 배달기사는 대부분 음식점에 소속되어 있었다. 사장님이 직접 배달을 하거나 그 수요가 감당되지 않으면 '전속' 배달기사를 고용했다. 그래서 위에서 말한 업종을 제외하면 '전속' 배달기사를 두면서까지 배달이라는 무리한 서비스를 시행하고자 하는 음식점은 많지 않았다.




짜장면 한 그릇만 배달 가능한가요?


어플 창업 붐이 한창이던 때, 배달어플이 고개를 내밀었다. 전화가 아닌 터치로 배달을 시킬 수 있었다. 굳이 전화를 하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을 내세웠다. 하지만 배달어플은 단순히 편리함으로 성장한 것이 아니다. 배달어플이 불러온 가장 큰 변화는 배달 업계의 파이 키우기였다. 배달 어플 이용자가 늘면서 제휴 업체가 늘어났고 시장이 커졌다. 배달시켜 먹을 수 없던 음식이 배달되기 시작했다. 배달을 대행하는 업체가 생겨났고 굳이 전속 배달기사를 고용할 필요가 없었다. 이런 순환이 계속되었다. 제휴업체가 늘면서 시장이 커지고, 시장이 커지면서 각종 음식점이 배달 시장에 뛰어들고... 이런 순환을 반복하면서 동네 맛집부터 신생 프랜차이즈까지 배달을 하지 않는 음식점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배달비가 없던 배달업계에서 짜장면 한 그릇 배달은 소비자가 애원해야 하는 것이었다. 혼자서 짜장면을 배달시켜 먹고 싶을 때 우리는 항상 물어봐야 했다. 아니면 울며겨자먹기로 짬뽕도 시키던가. 짜장면 한 그릇은 배달기사를 고용하면서까지 배달을 해줄 만큼의 마진이 남지 못했다. 배달비를 따로 지불하지 않았기 때문에 소비자가 어쩔 수 없이 감당해야 했던 불편함이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당당하다. 배달비를 지불하고 당당하게 짜장면 한 그릇을 배달시킨다. 모든 음식점이 전부 배달 서비스를 하기 시작했으니 한 그릇도 배달해줘야 다른 업체와 경쟁할 수 있었다. 게다가 이게 웬걸, 별의별 음식을 집에서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생각지도 못한 경쟁자들이 업계에 진입한 것이다.




원래 처음에는 호구에게 돈을 잃어주는 법


업계가 커지면서, 소량도 배달이 가능해졌고 거의 모든 음식을 시켜 먹을 수 있게 됐다. 이렇게 행복하게 해피엔딩이었으면 좋았겠지만 그러지 못했다. 배달시장 진출 음식점의 증가, 소량 배달 그리고 코로나19 덕분에 배달에 대한 수요는 방점을 찍었다. 그에 비해 배달기사의 공급은 달리기 시작했다. 이 상황에서 누군가는 배달기사에게 노동의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 [1. 음식점 2. 배달어플 3. 소비자] 이중에 누가 지불했을까. 정답은 3번이 되었다. 음식점과 배달어플이 지불해본 적도 있지만 돈을 벌어야 하는 입장에서 그 지출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그러는 동안 소비자들은 배달이라는 서비스에 절여졌다. 동네 구석구석 위치한 맛집들의 음식을 방구석에서 먹을 수 있다는 편리함은 가히 중독적이었다. 배달어플 초기에는 배달비가 눈에 띌 만큼 부담스럽지도 않았기 때문에 자취 1년 차쯤에 나는 배달어플 VIP였다. 구독권까지 끊어가면서 배달음식을 시켜먹었다. 하지만 배달비는 슬금슬금 오르기 시작했고 배달비만 4,000~5,000원 내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게 되었다. 하지만 분명 낭비에 가까운 지출이라는 것을 알았음에도 끊을 수 없었다. 이것은 비단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배달비가 저렴했던 시절에 배달어플에 유입되어서 배달비가 천정부지로 치솟을 때까지 벗어나지 못했다. 마치 도박판에서 돈의 맛을 본 호구가 판을 뜨지 못하는 것처럼.


생활비에서 배달음식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늘어나면서 나는 심각성을 인지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배달비가 아까워지기 시작했다. 코로나가 소강상태에 접어들면서 밖으로 나갈 일이 늘어나면서 배달을 시킬 일이 줄기도 했다. 나는 결국 배달어플 구독을 해지했고 배달의 빈도를 대폭 줄였다. 음식 배달이라는 일이 아무리 3D 업종이라고는 하나, 음식값에 버금가는 배달비를 지불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두발로 걸어가서 직접 사 먹고, 포장해오기 시작했다. 호구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배달비의 선은 어디인가

빠른 배달이라는 이면에는 목숨을 걸며 도로를 주행하고 악천후에도 음식을 전달해주는 배달기사들의 노고가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슬프게도 '노고'는 적당한 임금을 받지 못했을 때 주어지는 찬사이자 꼬리표였다. 자꾸만 선을 넘는 배달비에 그들의 노고를 치하하던 소비자들은 외면하기 시작했고 그 외면이 분노로 바뀌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노동의 가치를 측정하는 것은 너무나도 상대적이고 주관적이어서 정확히 선을 그을 수가 없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주객이 전도되어 버린 배달 시장에서 소비자의 분노도 마냥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음식을 가져다주는 서비스는 얼마의 값어치를 하는가. 무료에서 시작해서 1,000~2,000원부터 음식 값에 맞먹는 비용을 지불하기까지 그 선은 꾸준히 높아졌다. IT 창업의 신화였던 배달어플은 이제 금융권부터 포털까지 각종 대기업들이 군침을 흘리는 분야가 되었다. 여전히 배달이 유망한 분야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전만큼 소비자가 무한정 유입되는 분야는 아니다. 악명 높은 배달비에 떠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배달 시장에서 다름 아닌 높은 배달비 때문에 소비자가 떠난다는 것은 다시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불꽃처럼 타오른 열기는 금방 꺼질 수도 있다. 그 불꽃을 꺼트리는 것은 우울한 비, 배달비가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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