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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에 진심인 우리

외식 시장을 뒤덮은 프리미엄 열풍

by 식작가

남이 구워주는 소고기가 먹고 싶어


어렸을 때는 삼각김밥과 라면, 컵떡볶이와 피카츄 돈까스를 돈을 쪼개가며 사 먹었다. 그것은 우리 집이 특별히 가난해서가 아니었다. 내 또래 친구들은 저마다의 편차가 있었지만 대게 비슷한 수준의 용돈을 받았다. 그리고 그것을 각자의 소비 성향에 맞게 나눠 썼다. 보통 내 또래 남자아이들은 먹을 것도 먹을 것이었지만 게임과 장난감에 그것을 투자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쓸 돈이 어렸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늘고, 덩달아 음식에 쓰는 비용도 늘었다. 심지어 가끔은 평소보다 더 특별하고, 더 맛있는 것을 먹고 싶다. 고단한 하루를 보내는 나에게 이 정도 선물은 아깝지 않다고 느낀다. 그렇게 한 달간 알차게 소비를 하고 카드 내역서를 보면 새삼 놀라곤 한다. 내가 이렇게 음식에 돈을 많이 썼던가? 각종 술집과 고깃집, 카페, 이따금씩 가는 초밥집과 파스타집에서 나는 소득의 많은 부분을 소비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어렸을 때 나는 용돈에서 음식이 차지하는 비중이 많지 않았는데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내가 용돈을 타던 코찔찔이 시절에서 삼겹살에 소주를 걸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지만 그 사이 음식은 여러 이유들로 인해 필수품을 넘어서 사치품의 범주에 걸쳐지기 시작했다. 우리의 부모와 부모의 부모세대는 음식에 불필요한 돈을 쓰는 것은 낭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는 다르다. 평소 음식에 쓰던 것보다 돈을 조금만 더 투자하면 얻을 수 있는 음식의 질과 서비스는 대폭 상승했다. 그래서 그 누구보다 나에 대한 소비에 집중하는 지금의 세대는 음식을 통해 행복을 얻고자 했다.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음식에 돈을 투자했다. 그렇게 '프리미엄'이라는 키워드가 외식 시장에서 꿈틀거렸다. 나도 늘 고만고만한 수준의 음식만 먹고 싶지는 않았다. 가끔은 남이 구워주는 소고기도 먹고 싶었고, 쥐꼬리만 한 음식이 장장 두 시간에 걸쳐 나오는 식당에도 가고 싶었다. 음식에 돈을 더 쓸 용의가 충분히 있다. 프리미엄을 누려보고 싶다.




음식에 진심이라는 것


과거에 분명 이런 것이 이슈가 된 적이 있었다. 젊은 세대가 요리에 관심이 없고 한 끼를 대충 때운다는 것. 옆 나라 일본에서는 이미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되어 식습관이 망가지고 젊은 사람들의 건강을 해치고 있다는 것. 그것이 한국에도 전염된 것 같다는 것. 뉴스 매체에서 몇 개의 지표와 인터뷰를 가지고 걱정 어린 시선을 보냈다. 그것을 본 부모님들은 밥 좀 잘 챙겨 먹고 다니라고 자식들을 타박했다. 하지만 우리가 누구인가. 식사 여부가 안부 인사일만큼 먹을 것에 진심인 나라에 살고 있지 않은가. 그것은 기우였다. 우리는 그 어떤 세대보다 먹을 것에 진심인 세대가 되었다. 끊임없이 성장하는 외식 시장과 화수분처럼 쏟아져 나오는 트렌드들이 그것을 증명했다. 직접 요리를 해 먹는 내식에서 중식과 외식으로 그 무게가 옮겨 갔을 뿐, 먹을 것에 관심이 없지 않았다.


한국인은 예로부터 먹을 것에 진지했다. 반만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틔워온 식문화는 굉장히 두터웠다. 게다가 한반도에 방문했던 외국인과 선교사들의 기록에 의하면 우리의 선조들은 무지막지한 대식가였다고 한다. 잘, 그리고 많이 먹는 우리였다. 우리는 모든 시대에 걸쳐 음식에 진지했다. 하지만 지금의 20~30대가 그 어떤 세대보다 먹을 것에 진심이라는 것은 음식에 쓰는 비용의 총량이 점점 늘어났기 때문이다. 절대적인 양은 줄었을지라도 과거의 기준으로 보기에 더욱 값비싼, 사치스러운 음식을 소비했기 때문이다. 때로는 소득 수준에 과하다고 느낄법한 음식도 서슴없이 먹기 때문이다.


대학생은 돈이 없어 소주에 술국 하나로 서너 명이 주린 배를 채우고, 학식과 저렴한 컵밥만 먹는다는 인식은 보기 좋게 바뀌었다. 소주 대신 와인과 위스키에 눈을 떴고 한 끼에 몇만 원을 호가하는 오마카세나 파인 다이닝에 발을 들였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사치'라고 일컬어지던 것들이 조금은 특별한 이벤트 수준으로 바뀌었다. 확실히 우리는 음식에 쓰는 비용에 관대해졌고 씀씀이가 커졌다. 우리가 이토록 음식을 좋아했던가? 그런 의미에서 지금 외식시장을 주도하는 젊은 세대는 그 어떤 세대보다 먹을 것에 진심인 세대라고 할 수 있다.




욜로와 소확행이 선물해준 프리미엄


'You Only Live Once' 인생은 오직 한 번뿐이라는 뜻의 문장으로 한 번뿐인 인생을 즐겨야 하지 않겠냐는 뜻으로 욜로는 최근 외식뿐만 아니라 한국 소비 시장 전체를 주름잡는 트렌드였다. 비록 욜로가 유래된 서구권에서는 조금 다른 의미를 지녔었지만 한국에서는 젊은 세대에게 매력적인 단어로 번역되어 수입됐다. 욜로는 오직 미래를 바라보고 현재를 치열하게 살아가는 인생이 과연 행복한 인생인가 하는 물음을 던져주었고 미래의 행복을 위해 왜 현재의 행복을 포기해야 하는지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늘어갔다. 결국 미래를 위한 맹목적인 투자보다 현재의 나를 돌보자는 뜻으로 해석되었고 그렇게 나를 돌보는 방법으로 가장 손쉽고 빠르게 할 수 있으며 직접적인 현재의 행복으로 다가오는 것은 '소비'였다. 그리고 일반적인 소비보다 사치품에 대한 소비가 주목받았다. 외식 시장에서도 평소에 접하지 못했던 사치에 가까운 소비가 늘어갔다.


욜로에 버금가는 영향력을 준 트렌드가 바로 '소확행'이었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뜻으로 일상에서 아주 사소한 것으로부터 느낄 수 있는 행복을 말한다. 이것이 외식 시장에 들어오면서 마케팅 수단으로 자리 잡았고 이는 기존 시장에서 상대적으로 가격대가 있고 품질이 좋은, 하지만 우리가 명품이라고 부를 만큼 사치스럽지 않은 프리미엄 브랜드들이 유용하게 써먹었다. 이런 브랜드들은 소확행을 '소소하게 (조금만 더 비용을 지불하면) 확실히 얻을 수 있는 행복'으로 번역했다. 그것이 먹혀 들어가 평소에 약간 비싸서 선뜻 구매하기가 망설여졌던 제품의 구매를 소확행 한다는 개념으로 설득했다. 확실히 돈 몇 천 원을 더 얹어서 확실한 행복을 얻을 수 있으면 꽤나 괜찮은 거래로 보일 수 있다.




욜로는 골로 가지만 SNS는 해야 하니까


모든 판이 깔렸다. 오마카세나 파인 다이닝처럼 애초에 비쌌던, 소위 외식계의 명품이라고 부를 수 있는 시장부터 커피나 디저트처럼 상대적으로 근소한 가격차이를 보이는 시장에서도 욜로와 소확행을 이용하여 고품질, 고비용의 프리미엄 트렌드가 유행했다. 하지만 '욜로는 골로'라는 욜로에 대한 반박이 등장했다. 무분별한 소비는 결국 미래에 대한 대책을 모두 허물어서 결국 소비자 자신을 무너뜨릴 뿐이라는 주장이었다. 실제로 욜로 라이프를 즐긴 많은 이들이 정작 돈이 필요할 때 돈이 없어서 겪은 고충과 미래에 대한 막막함을 쏟아내면서 욜로는 불꽃처럼 사라졌다. 우리는 다시 정신을 차릴 필요가 있었다. 소확행도 많은 기업이 마케팅 수단으로 남발하면서 감흥을 잃었다. 기업의 구린 속내를 소비자들이 눈치챘다. 그렇게 욜로와 소확행은 그 힘을 잃었다. 하지만 우리가 피부로 체감하고 있듯이 프리미엄 트렌드는 여전하다.


욜로와 소확행이 지나간 자리에는 무엇이 남았을까. 우선 자극의 역치 값을 높였다고 생각한다. 저품질에서 고품질로는 가기 쉬워도 고품질에서 다시 저품질로 돌아가기는 쉽지가 않다. 한마디로 우리의 입을 고급으로 만들어 놓았다는 소리다. 욜로와 소확행은 그 힘을 다했지만 그 성질은 우리 몸에 남았다. 지금 나에게 쓰는 소비에 대해 관대해졌다. 미래에 대한 대비를 잊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지금 나에게 충실하기도 했다. 애쓴 나에게 보상을 톡톡히 해주기 시작했다. 오롯이 나를 위한 소비. 우리를 바꾼 것은 그것이다.


각종 명품을 비롯한 사치품들에 비해 적당한 수준의 고품질 음식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이다. 무엇을 '소비' 한다는 것은 같지만 소비에 사용되는 비용은 낮고 그 만족감은 충분했다. 한마디로 음식은 가성비가 좋았다. 비록 사치일지라도 눈 한 번 딱 감고 쓸 수 있을 만큼, 그러니까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비용을 지불하고 평소에 누릴 수 없던 맛, 서비스, 분위기를 주는 것은 외식보다 좋은 것이 없다. 500만 원짜리 가방보다는 5만 원짜리 스테이크 한 접시가 더 가성비가 좋은 것이다. 욜로와 소확행 열풍이 지나가면서 이것저것 나를 위해 소비해본 사람들은 이것을 직접 경험하면서 그 열풍이 지나가고도 프리미엄 외식시장에서 선뜻 발을 빼지 못했다. 나를 위해 소비하는 것은 달콤했으니까.


그리고 욜로와 소확행 열풍에 부채질을 해준 것이 인스타그램이었다. 우리가 흔히 허세라고 말하는 것들을 인스타에 올리기 위해 프리미엄 소비는 장려되었다. 내 평범한 일상보다는 특별한 일상을 기록하는 인스타의 특성상 남들과 다른 것이 필요했다. 욜로와 소확행이 한풀 꺾여도 인스타에 대한 열기는 식을 줄 몰랐다. 그리고 인스타 감성을 뽐내기 위해 사치품 중에서 프리미엄 외식 제품만큼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도 없으니 프리미엄이라는 키워드는 인스타의 지원사격을 받아 외식시장에서 여지껏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리고 살아남은 프리미엄은 외식시장의 판도를 바꿔놓았다. 그것은 굳이 값비싼 음식점과 고급 식재료에만 해당하지 않았다. 일상에서 구매하는 제품, 방문하는 식당에서도 가격이 조금 더 나가더라도 더 높은 품질의 소비를 원했다. 단순히 사치스러운 식품뿐만 아니라 일상 전반에 걸쳐 변화는 찾아왔다.




일상에 스미어든 프리미엄


프리미엄 마케팅은 이제 외식시장 전반에 걸쳐 장려되는 트렌드가 되었다. 가격이 기존 제품군에 비해 비싸더라도 품질이 좋으면 구매를 망설이지 않는 소비자들 덕택이었다. 비비고가 고향만두를 제치고 업계 1위가 될 수 있었던 것도 프리미엄 마케팅 덕분이었다. 불량식품의 이미지를 감출 수 없었던 냉동만두 시장에서 속이 꽉 찬 프리미엄 제품을 내놓았고 가격이 고향만두에 비해 비쌌을지라도 맛이 좋았기에 소비자들은 개의치 않았다. 마켓걸리가 단숨에 식료품 이커머스 시장에서 한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도 샛별배송이라는 획기적인 서비스와 함께 유기농과 무농약, 고급스러운 패키징과 고품질의 제품군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마켓컬리 제품들이 다른 플랫폼에 비해 비쌌지만 그런 프리미엄 소비를 지향하는 소비자의 마음을 저격했기에 후발주자였지만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이외에도 블루보틀은 아직 갈길이 멀긴 하지만 그 스타벅스의 아성에 도전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블루보틀 역시 불타는 스페셜티 커피 시장에서 오로지 핸드드립으로만 승부를 본다는 전략을 초기에 취했고 심플하고 모던한 서비스와 인테리어를 지향했다. 그 결과 전반적인 제품 가격이 상대적으로 비쌌지만 역시나 소비자들은 오히려 열광했다. 한국 외식 시장에 들불처럼 번지는 파인 다이닝과 오마카세도 이런 프리미엄 마케팅에 기인한 것이다. 기존의 제품이나 매장들도 단가를 낮춰 판매가를 낮추는 전략보다는 오히려 구성을 풍성하게 하여 가격을 올리는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어설픈 눈속임은 이제 먹히지 않았다. 차라리 돈을 더 주더라도 더 맛있는 것을 먹고 싶어 하는 소비자들이었다.


이것은 향후 한국 외식 시장을 뒤흔들어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비고로 시작한 냉동만두 서열의 붕괴는 냉동 제품 시장의 전반적인 품질 상승을 불러일으켰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더 맛있는 냉동만두를 먹게 된 것이다. 마켓컬리의 성공 이후, 이커머스 시장에는 프리미엄 열풍이 불어 여러 플랫폼이 새단장을 하기 시작했다. 블루보틀의 분투는 에스프레소가 주류를 이루었던 한국 스페셜티 커피 시장에 핸드드립이라는 생소한 장르를 소환시켜주는 결과를 맞았다. 이처럼 우리의 삶에는 프리미엄이 스며들었다.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다. 음식은 특히 대중들이 역체감을 쉽게 느낄 수 있는 분야이기 때문에 이전으로 돌아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프리미엄 종말론?


이렇게 그칠 줄 모르는 프리미엄 열풍에 더하여 치솟은 물가는 우리의 엥겔지수를 대폭 늘려놓았다. 너도나도 프리미엄을 자처했고 급기야 프리미엄이라고 부를 수 없을 수준의 음식과 제품을 내놓고 가격만 프리미엄처럼 받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것에 지친 사람들이 많았다. 부담스러운 음식 값에 혀를 내둘렀다. 오죽했으면 편도족이 생겨났겠는가. 식당이 아니라 편의점 도시락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사람들이 생긴 것이다. 나도 밖에서 밥을 먹을 때면 2~3만 원이 우습게 빠져나가는 것을 보며 덜컥 겁이 나기도 했다. 아무리 맛있는 것이 좋고 프리미엄이 좋다고 해도, 나를 위한 소비가 좋고 지금의 행복도 중요하다지만 당장 내일 쓸 돈이 없으면 안 되니까. 외식 물가 상승과 맞물려 프리미엄은 슬슬 선을 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럼에도 나는 프리미엄이 휩쓸고 간 외식 업계가 좋았다. 맛없는 것은 살아남지 못했고 시장에서 살아남은 것들은 하나 같이 맛이 좋았다. 어딜 가도 맛집이었다. 진짜 맛있는 커피 한 잔, 파스타 한 접시 먹기가 힘들었던 과거에 비해 훨씬 수월해졌다. 물론 그 대가를 치러야 했지만 말이다. 가성비와 가심비라는 말이 유행했다. 하지만 그 가성비와 가심비라는 말에는 각각 '성능'과 '만족'이라는 단어가 들어간다. 결국 어느 정도 맛과 품질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음식은 역체감이 심한 편이다. 둔감한 사람도 맛있는 음식을 먹다가 그에 비해 다소 떨어지는 음식을 먹으면 손쉽게 그 차이를 체감한다. 우리 입맛은 한마디로 고급이 되었다. 우리가 과거에 고급이라고 했던 것이 이제는 평균이 된 듯싶다. 수준이 한 단계 올라갔다. 기준이 새로 설정되었으니 떨어질 수도 없는 노릇. 프리미엄 트렌드는 사라지지 않지만 이제 그것이 프리미엄을 붙일 만큼 대단히 상대적으로 뛰어난 가도 생각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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