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 슈가와 제로 칼로리, 사람들을 유혹하는 마성의 단어
어렸을 때, 탄산을 먹으면 항상 듣는 말이 있었다. 다들 기억할 것이다. 이빨 상한다, 살이 찐다, 배불러서 밥 못 먹는다 등등 잔소리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맛이 있는 걸 어떡해. 톡 쏘는 탄산과 형형색색의 단맛으로 무장한 탄산음료는 부모님들에게는 악의 축이었고 아이들에게는 천상의 음료였다. 탄산음료 속에서 살아온 우리는 커서도 그 습관을 버리지 못했다. 여전히 손에서 콜라와 사이다를 놓지 못했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이것은 몸에 좋지 않다는 것을. 치아를 썩게 하고 살을 찌우며 당을 높인다. 그래서 탄산음료는 항상 우리 몸을 파괴하는 주범이자 다이어트와 거리가 먼 음료였다.
어린 시절 저편에 있는 기억을 겨우겨우 끄집어보면 빨간 코카콜라 옆에 회색 바탕의 코카콜라가 기억난다. 코카콜라 라이트라는 이름이 붙인 이 제품은 저칼로리 콜라였다. 아마 다들 코웃음을 쳤던 것 같다. 콜라 자체가 몸에 안 좋은데 무슨 다이어트 콜라? 그런 비아냥을 뒤로하고 모든 제로 아이템의 시초인 코카콜라 제로가 시장에 나왔다. 한국에는 2000년대 중반에 출시되었으나 일반 마트와 편의점에서 쉽게 접할 수 있게 된 것은 2000년대 후반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회색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검은색 바탕의 제로 콜라는 수줍게 시장에 등장했었다.
사실 제로 콜라를 처음 본 나도 그랬고 주변의 모두가 그랬다. 고개를 갸우뚱했던 것이다. 우선 믿을 수가 없었다. 모두들 일생을 살아오면서 콜라는 살이 찌고 당분이 높은, 그래서 건강에 안 좋은 음료라는 인식이 팽배했는데 갑자기 설탕도 없고, 칼로리도 없다니. 살을 찌우는 주요한 원인인 설탕이 없으니 정말 살이 안 찌겠지만, 그렇게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어도 가슴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비아냥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모든 음식은 잔뜩 먹으면서 콜라만은 제로를 고집하는 이들을 보고 핀잔을 주었다. 그리고 기존 콜라와 맛이 달랐다. 설탕과는 다른 맛을 내는 인공감미료의 인위적인 맛이 났다. 그 차이는 생각보다 커서 제로 콜라의 맛이 싫어 마시지 않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제로의 시작인 이러했다. 모두의 의아함을 자아냈지만 지금은 어떤가. 제로의 맛이 좋아 제로만 마시는 마니아들도 생겼고, 콜라는 좋아하지만 몸을 위해 제로를 마시는 사람도 늘었다. 그리고 이 제로 열풍은 단순히 콜라에만 그치지 않았다.
아름다움의 기준은 누가 정하는 것일까. 매체와 미디어가 없던 시절에는 나라마다, 지역마다 미의 기준이 달랐다. 조선시대 아름다운 여성은 피부가 희고 풍만한 여인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일을 당장 알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하면서 미의 기준은 전 지구적으로 비슷해지기 시작했다. 먹을 것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우리의 머나먼 조상이 가지고 있던 잉여 칼로리를 지방으로 바꾸는 유전자, 즉 비만 유전자와의 치열한 전쟁이 시작됐다. 마름이 전 지구적인 미의 기준으로 정립되고 많은 이들이 아름다워지고자 살을 뺐다. 살을 빼는 방식은 아주아주 간단한데 적당량을 먹고, 적당한 운동을 하면 살은 빠진다. 다들 운동까지는 시도해보지만 번번이 적당량 먹는 것을 실패한다. 물론 나도 그랬고.
인간의 3대 욕구 중 하나인 식욕을 제어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포장지에 적힌 칼로리에 집착했다. 음식을 먹음으로써 얼마나 인체에서 일할 수 있는 에너지로 전환할 수 있는가의 단위인 칼로리는 이 음식을 먹으면 얼마나 살이 찌는가에 대한 척도가 되었다. 몇 자리에 불과하는 숫자가 식품의 섭취 여부를 결정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술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맛이 있지만 칼로리가 낮은 식품을 찾았다. 불과 몇십 년 만에 살기 위해 고칼로리 음식을 찾던 인류가 몸을 가꾸고 건강을 위해 저칼로리 음식을 개발했다. 그렇게 다이어트 식품, 저칼로리 식품 산업이 태동했다. 식단을 하는 수고로움을 덜고자 하는 소비자의 욕구를 정확히 캐치한 시장이었다.
웰빙 트렌드가 전지구를 강타하고 탄산음료는 척결 대상이었다. 치아 건강에 치명적인 탄산, 비만과 성인병을 유발하는 설탕의 조화는 탄산음료를 악당으로 만들었다. 모든 탄산음료의 왕이었던 코카콜라는 결국 해법을 내놓았고 설탕 대신 감미료를 사용한 코카콜라 라이트를 출시했고 마침내 설탕 제로, 칼로리 제로라는 캐치프래이즈를 내세운 코카콜라 제로를 선보였다. 적어도 한국 시장의 반응은 차가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라이트와 제로라는 단어가 쓰여있지만 여전히 달콤하고 입에 착착 감기는 콜라는 건강에 해로워 보였다. 심지어 달고 입에는 감겼지만 정작 맛은 기존 콜라와 달랐다. 코카콜라 마니아들은 금세 그 차이를 알아차렸고 코카콜라 제로는 믿음직스럽지 못한 캐치프래이즈와 판이한 콜라의 맛으로 차가운 시선을 견뎌야 했다.
다이어트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의 마지막 양심으로 불리며 온갖 조롱을 받고, 일반 콜라와 맛이 다르다고 탄압받아온 코카콜라 제로는 시간이 흐르면서 빛을 보았다. 그들이 주구장창 주장해왔던 제로 슈가, 제로 칼로리가 점점 무게감 있게 다가왔다. '이게 진짜 칼로리가 없고 설탕이 안 들어갔다고?'라는 뭉게뭉게 피어오른 의심은 각종 매체가 대신 해결해 주었다. 설탕보다 훨씬 강한 단맛을 내는 감미료들은 설탕을 훌륭히 대체했고 살을 찌지 않게 했으며 건강에 해롭지 않다는 것이 밝혀졌다.(물론 여전히 장내 미생물과의 인과관계에 관해서는 설왕설래하고 있다.) 사람들은 그제야 제로 콜라에 손을 뻗치기 시작했다. 제로 콜라가 인질로 잡은 칼로리가 진짜 제로 칼로리였음이 기정사실화가 되자 소비자들은 마치 테러범과 협상하듯이 구매했다.
그리고 출시 초기 지적되었던 인공적인 감미료의 맛 역시 시간이 해결해주었다. 접한 적이 없어 어색했던 제로콜라의 맛은 먹으면 먹을수록 익숙해졌고 급기야 제로 콜라만 찾는 마니아층을 양산해냈다. 물론 여전히 인공적인 단맛이 싫어 제로 콜라를 먹지 않는 소비자들도 있지만 대다수의 소비자들에게 익숙한 맛이 되고, 일부 마니아층을 만든 것만 해도 이미 충분한 성과를 거두었다. 제로 콜라의 가장 큰 두 개의 걸림돌이었던 제로 칼로리의 신빙성과 맛에 관한 문제가 해결되자 웰빙 트렌드와 맞물려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본격적인 제로의 시대가 열렸음을 알리는 서막이었다.
제로 콜라 이전에도 다이어트 및 건강식품은 존재했었다. 당장 국내 음료시장으로만 한정해도 미에로화이바는 웰빙을 키워드로 한 건강음료라는 포지션을 구축했다. 이외에도 다이어트 보조식품과 식단들은 외식 시장에 있었다. 하지만 모든 다이어트 식품과 건강식품들은 섭취하면 건강과 다이어트에 이로운 영향을 준다고 광고했다. 적당한 필수 영양소부터 비타민과 무기질 등의 성분이 들어갔음을 내세웠다. 하지만 코카콜라 제로는 어떠한가? 제로 콜라를 마시는 것 자체는 건강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굳이 굳이 따지자면 건강에 해로운 쪽으로 작용할 것이다. 결국 탄산과 미량의 칼로리, 색소와 첨가물이 들어갔으니까. 제로 콜라는 살을 빼주는 식품이 아니라 설탕과 칼로리를 없애서 살을 찌지 않게 해주는 음료였다. 원래 살이 찌는 식품을 비틀어서 살을 찌지 않게 해주는 것. 지금은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는 이 역설적인 생각의 시초는 제로 콜라였다.
이후에 다이어트와 건강식품 시장은 사뭇 다르게 돌아갔다. 기존의 건강식품 시장은 꾸준히 발전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저칼로리, 제로 칼로리, 제로 슈가 식품 시장도 새롭게 만들어졌다. 빵, 아이스크림, 스낵 등등 과거였다면 건강을 생각하는 소비자는 사 먹지 않았을 식품이었지만 제품 앞에 각종 제로와 저칼로리라는 수식어가 붙으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소비자가 무조건적인 절제보다는 허용 범위 내에서 몸에 덜 해로운 제품을 사 먹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식욕을 억제한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굉장히 고통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그 고통을 덜어주고자 하는 제품이 바로 제로 칼로리 제품이었다. 건강식품, 다이어트 제품이면 각종 영양제와 닭가슴살, 샐러드만 있을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깼다. 코카콜라 제로는 설탕을 없앤 것뿐인데 얼떨결에 제로 열풍을 주도하고 국내 다이어트 제품 시장을 확장시켰다. 가히 혁신이라 부를 만하다.
칼로리를 찾아 헤매던 우리의 조상들이 본다면 가히 충격적인 일이다. 섭취하기도 바쁜 칼로리를 없앤 음식이라니. 과거의 기준이라면 음식의 기준에 들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시대는 변했고 칼로리는 없는 것이 유리했다. 건강을 위해 제로 콜라라는 탄산음료를 찾아 먹는 이 현상이 가끔은 어색하게 느껴지지만 결국 우리는 설득당했다. 코카콜라 제로의 출시 이후, 펩시도 제로 슈가 제품을 출시했다. 국내 업체도 부랴부랴 숫자 0이 붙은 제품을 내놓았고 최근에는 스낵에도 제로 슈가 딱지가 붙었다. 다이어트 식품 시장은 이제 무시할 수 없는 시장이 되었다. 보조제부터, 닭가슴살과 샐러드, 그리고 저칼로리 식품까지 다양화되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쉽고 편하게 살을 빼고자 하는 우리를 위해 저칼로리, 제로 시장은 크게 확대되었다.
제로가 처음 나왔을 때 우리는 믿을 수 없었다. 칼로리가 제로인 콜라가 있다니. 이제는 충분히 납득을 하지만 그때는 그랬다. 칼로리를 없애고, 설탕을 없앤다는 것은 음식과 식품에서 가장 중요한 '맛'을 포기한다는 것이기 때문에 신중을 가해야 한다. 그래서 음료가 대다수였다. 고체보다는 액체가 그 맛을 유지하면서 칼로리와 설탕을 줄이기에 용이했으니까. 하지만 음료를 제외한 각종 제품에서도 칼로리 줄이기는 시도되고 있다. 도시락부터 아이스크림과 급기야 국내 제과회사에서는 설탕을 쓰지 않은 제로 스낵을 출시하기도 했으니 그 도전은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소비자는 여전히 고개를 갸우뚱한다. 감미료가 진짜 당류가 없는지, 칼로리가 없는지, 혈당을 높이지 않는지.
제로 스낵 역시 설탕 대신 들어간 '말티톨'로 말이 많았다. 이것이 고칼로리와 고혈당 성분이라는 이야기가 돌면서 시끌시끌했다. 물론 이런 논란과 대비되는 높은 매출로 제품군 자체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이런 논란은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국내 소비자들은 특히나 건강과 첨가물에 민감하다. 과거 수많은 전례가 존재한다. 실제가 아니더라도 '카더라'가 돌면서 제품과 기업 자체가 나락으로 떨어진 사례가 많다. 제로와 저칼로리 전략을 쓰는 제품들도 한 번 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설탕 대신 들어간 첨가물의 건강에 대한 영향은 여전히 그 연구가 진행 중이다. 칼로리와 설탕에 초첨을 맞춰서 과도한 부풀림과 눈속임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아무리 제로라도 명시할 것은 명시하고 정확한 성분을 짚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오히려 그런 솔직함은 신뢰를 줄 수 있으니까. 아직 신생 트렌드인 제로는 여전히 특별 관리 대상임은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