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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식작가 Feb 27. 2023

이국의 가정식을 먹는다

언제나 우리 곁에 있었던 가정식에 대하여 

  우리는 늘 우리 집을 그리워한다


  가정식이 인기다. 유명 맛집에 가정식 전문점이 드문드문 보인다. 일본 가정식, 미국 가정식, 프랑스 가정식... 다시 말하면 각국의 가정식이 인기다. 가정식은 쉽게 말해 집에서 먹는 음식을 말한다. 가정식은 가족의 손맛이 묻은 집밥이다. 집밥은 우리가 영원히 우리 집을 그리워했던, 그리고 그리워할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가정식은 외식의 어엿한 분과로 자리 잡았다. 집 안에서 먹는 가정식이 외식이 되다니. 뜯어보면 어색하다.


  우리가 가장 쉽게 접해왔던 가정식은 한국 가정식, 그러니까 백반이다. 소비자들은 집 밖에서도 집에서 한 듯한 소박하고 정갈한 한 상차림을 원했다. 요즘 들어 백반이 수지가 맞지 않고 그 수요가 줄었다지만 한 때 한국 외식의 젖줄이었다. 백반은 대기업의 개입이 없었고, 있을 수 없는 몇 안 되는 외식 분야다. 프랜차이즈가 죽어도 따라갈 수 없는 그 맛과 감성. 설령 프랜차이즈화가 된 백반이 있다면 그것은 사실 백반이라 칭할 수 없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이 대목이다. 프랜차이즈화 될 수 없는 것. 지금 외식 시장을 주름잡는, 소위 말하는 MZ세대들이 백반집에 발을 잘 들이지 않는 점은 서글프지만 결국 각국의 가정식 레스토랑을 찾는 것을 보면 백반 DNA는 어디 안 가는구나 싶다. 획일화될 수 없는 개성 넘치는 가정식의 시대는 끝날 것 같지 않다. 



  평범함의 비범함 


  가정식은 생각보다 역사가 깊은 트렌드인데 최근에는 뉴트로가 섞인 가정식이 소비자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모던하고 깔끔한, 파인 다이닝 느낌이 물씬 나는 레스토랑보다는 마치 테마파크라도 된 양 조금은 과하게 첨가된 인테리어가 특징이다. 꼭 20세기 서양 흑백 영화에 나올법한 꾸밈이다. 얼핏 보면 촌스럽다고 할 수 있지만 그 촌스러움마저도 트렌드가 되어버린 모양이다.


  그래도 음식만큼은 촌스럽지 않다. 평범한 가정식도 타국 소비자에게는 이국적으로 느껴진다. 적절한 현지화도 필요하지만 요즘에는 그 현지화도 거부하는 것 같다. 음식의 간을 조절하는 것 말고는 최대한 현지에서 조리한 것처럼 재현한다. 어쩌면 우리는 인정받고, 자랑하고 싶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진짜 너희들의 '가정식'을 먹고 있노라고. 나는 진짜 이국의 가정식을 먹을 줄 아는 사람이라고.


  SNS가 뉴트로 서양 가정식 트렌드를 부상시키기는데 큰 몫을 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평범한 가정식을 특별하게 만든 것은 분명 SNS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시기에 걸쳐 타국의 평범은 늘 비범이 되었다. 우리는 늘 타국민들이 평범하게 먹는 음식에 호기심을 느껴왔다. 그리고 그 평범함 속에서 익숙한 따듯함을 느꼈다.  


  가정식은 평범하고 수더분하다. 격식을 차려서 먹는 음식이 아니다. 불편함 없이 편안하게 먹어야 한다. 그래서 사실 파인 다이닝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파인다이닝에서 파는 가정식은 더 이상 가정식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열광하는 가정식은 적당히 누구와 가도, 어떤 옷을 입어도 의식하지 않고 먹을 수 있어야 한다. 비범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반드시 평범이 따라와야 한다. 우리가 가정식에 열광하는 건 이 때문이지 않을까.



  이륙 없는 해외여행


  여행에서 음식은 빠질 수 없는 키워드다. 많은 이들이 해외여행을 바라는 것도 그 나라의 음식 때문이기도 하다. 오직 하나의 음식을 먹기 위해서 타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 사람도 더러 있다. 나도 해외에 가서 현지향 물씬 풍기는 음식 한 접시를 먹는 것을 좋아한다. 국경을 넘나들고, 내 혀에 낯선 음식을 닿게 해주는 건 어쩌면 현대에 사는 특권이지 않을까. 하지만 코로나19 때문에 우리는 그 특권을 오랫동안 누리지 못했다.     


   하지만 현대에 이르면서 굳이 국경을 넘지 않아도 현지 음식을 먹을 수 있다. 아침은 된장찌개, 점심은 쌀국수, 저녁은 텍사스 바비큐를 먹는 건 흔한 풍경이 됐다. 당장 당신이 오늘 하루 먹은 음식 메뉴를 떠올려보시라. 순수한 한식만 먹었다고 자신하기란 쉽지 않다. 국경이 열리면서 식문화의 교류도 활발해졌다. 덕분에 우리 식탁에는 과거였다면 상상도 못 할 낯선 음식들이 턱턱 올라온다.    


  그래서 우린 더더 현지인들이 먹는 음식에 관심을 가졌다. 그 나라의 외식 문화도 모자라 가정에서 먹는 음식도 탐닉했다. 현지 느낌이 나는 인테리어는 덤이다. 정교하게 재현한 식당에서 해당 국가의 가정식을 먹으며 어쩌면 한동안 이루지 못한 해외로의 여행욕구를 채운 것은 아닐까. 


  '진짜 현지에서 먹는 것 같아요!' 꼭 생활정보 프로그램에서 질리도록 사용하는 문장 같지만 지금 우리가 가정식 식당에 열광하는 이유를 가장 함축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결국 우리는 이륙 없이 해외여행을 떠나고 싶어 한 것이다. 코로나에 질린 우리 육체에게 조금이나마 신선한 체험을 제공하고자 한 것이다. 코로나가 가정식이란 트렌드를 가속화시켰을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해외여행의 대체재가 된 것이다.  

 


   이번에는 어떤 가정식 


   절대 프랜차이즈에 의해 성장할 수 없는 트렌드이기에 전국을 들썩이는 외식의 아이콘이 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대신 개개인의 소규모 매장들이 명성을 떨치면서 은근하고 뭉근하게 스며드는 트렌드라고 생각한다. 애초에 가정식이라는 것이 대단한 임팩트를 주는 음식이 아니다. 집밥은 잔잔하게 우리를 떨리게 한다.  


  가정식은 생각보다 유서 깊은 외식 트렌드다. 백반부터 시작해서, 한 때 인기였던 일본 가정식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가정식 앞에 붙는 나라 이름은 시대에 따라 변하겠지만 가정식 식당이 종말을 맞이할 것 같지는 않다. 언제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나라의 가정식이 유행할지도 모르는 노릇이다.  


  우리는 항상 미지의 영역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그것이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가정식은 그런 우리의 호기심을 잘 해결해 주었다. 집밥은 어쩌면 그 나라의 가장 은밀한 부분일지도 모른다. 꼭꼭 감춰두었다가 가장 마지막에 마지못해 열어주는 비밀보따리 같은 존재. 우리는 그 은밀하고 따스한 집밥을 가정식이라 부르며 어느 나라가 되었든 늘 동경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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