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과 구독

뜨거운 감자 구독, 그중에서도 식품 구독에 대하여

by 식작가

구독에 포위당한 삶


넷플릭스에 처음 가입한 것은 고등학생 때였다. OTT라는 단어도 생소하던 시절, 한 달에 몇 천 원만 내면 수많은 영상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는 광고에 이끌려 구독을 시작했다. 그때는 '구독'이란 것이 내 삶에 이렇게 깊이 침투하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구독은 이제 우리 삶을 포위했다. 온갖 분야에서 구독서비스를 출시했고 식품 업계도 한발 늦게 구독 전쟁에 참전했다.


구독은 신문이나 간행물 따위에 쓰는 말이었다. OTT를 구독하는 것은 물론이고 음식이나 식품을 구독하는 것도 어찌 보면 아주 생소한 개념이다. 돈을 내면 정기적으로 음식을 준다니. 배달을 해주기도 하며, 나에게 알맞은 제품을 추천해주기도 한다. 소비자의 선택의 권리를 조금은 빼앗아갔지만 그만큼 더 많은 편리함을 안겨주었다. 모두가 이기는 윈윈이랄까.


그런데 듣다 보니 자꾸만 떠오르는 게 있다. 우리는 식품 구독 서비스를 아주 오래전부터 이용하고 있었다. 바로 요구르트와 우유. 우리는 일정 금액을 선지급하고 매일 아침 신선한 우유나 요구르트를 배달받았다. 어쩌면 식품 구독의 시초는 이것이 아닐까. 식품 구독이란 개념은 생각보다 유서가 깊은 서비스다. 최근에 와서 온라인 기기, 다양한 식품들과 결합하여 주목받았을 뿐, 선두주자가 있었단 말이다.



신문은 상하지 않는 법


매일 엄선된 음식을 문 앞까지 배달받는 음식 구독 서비스는 물론 편하고 좋을 것이다. 하지만 음식은 신문이 아니다. 대량 생산으로 상온에 보관돼, 자전거로 휙휙 배달될 수 없다. 신문은 시간이 지나도 읽을 수야 있다. 하지만 음식은 상한다. 먹을 수 없다. 가치가 사라진다. 이렇게 음식 구독 서비스는 해결해야 할 난제들이 있었다. 가령 음식을 썩지 않게 할 것. 맛있게 보존할 것. 가치를 지킬 것.


요구르트와 우유는 그 난제를 슬기롭게 해결했다. 요구르트 아주머니 개인에게 이동식 냉장고를 제공하여 광범위하고 촘촘한 냉장 유통망을 구축했다. 그리고 유제품은 아침 식사 대용으로 많이 소비되기에 이른 아침에 배달했다. 시원한 아침 공기와 냉장고의 냉기, 짧은 상온 노출 시간이 더해져 음료는 맛있게 보존됐다. 하지만 모든 음식을 이렇게 공급할 수는 없었다. 요구르트처럼 개인이 대량으로 차갑게 싣고 다니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시간이 흐르고 결국 기술의 판정승이었다. 식품 보존기술 상승과 콜드 체인의 도입이 음식의 구독을 가능케 했다. 처음에는 식재료에서 시작했다. 전에는 꿈도 못 꾸던, 오로지 요구르트만 가능했던 새벽 배송이 일상화되었고 조리된 음식들도 하나, 둘 구독 서비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차갑게 먹어도 맛있는 음식을 시작으로 식품을 구독하고자 하는 열망이 꿈틀거렸다. 구독 경제가 한창 활개를 치고 있던 무렵이었다.



음식을 구독하는 이유


기술과 시대의 흐름이 맞물리면서 음식 구독 서비스는 본격적인 날개를 펼쳤다. 현대인들의 다소 사치스럽고, 게으른 요구를 척척 충족시켰다. 문 앞까지 배달해 준다. 메뉴를 추천해 준다. 조리가 불필요하다. 온라인으로 쉽게 구독할 수 있다. 선택의 피로감을 줄여준다. 음식을 구독하면 이런 편리함을 누릴 수 있다. 물론 돈이 들지만.


구독은 불편함과 번거로움을 해소시켜 준다. 구독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다. 바쁜 삶에서 먹는 것까지 하나하나 체크하며 살 수는 없다. 적어도 아침은, 적어도 매일 먹는 몇몇 음식은 누군가 대신 메뉴를 골라, 조리하고, 내 입에까지 넣어줘야 한다. 매번 결제를 할 필요도 없다. 손가락 몇 번 튕기면 집에서 호텔에 온 기분을 정기적으로 느낄 수 있다. 따끈한 음식을 객실에 넣어준다는 말이다.


여전히 구독할 수 있는 음식은 여전히 한정적이다. 그래서 기업들은 보통 질리지 않거나, 날마다 먹는 음식을 서비스 대상으로 낙점했다. 커피나 원두가 그랬고, 샌드위치와 김밥이 그랬다. 속재료만 바꿔서 다양함을 연출할 수 있는 식사 대용 샌드위치나 김밥과 혹은 우리가 물처럼 마시는, 이제 필수품이 되어버린 커피는 구독하기에 알맞았다. 다양화의 의무에서 조금은 벗어났으니까.



어떤 음식도 구독되는 그날까지


음식은 여전히 특별하다. 콘텐츠나 공산품, 서비스처럼 한 없이 쌓아놓고 소비할 수 없다. 기술도 한계가 있는 법. 결국 보존을 위해 간편식의 경계를 넘나들어야 하는데 그럴 거라면 굳이 음식을 구독할 필요가 있을까. 조금이라도 다양하고, 정성스러운 음식을 먹기 위해 구독을 했는데 간편식의 향기가 나다니. 음식 구독은 아직 간편식과 조리식 경계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필요하다.


본디 차갑게 먹는 음식을 중심으로 구독 서비스가 활발해졌음에도 여전히 선택지는 부족하다. 물론 카페나 베이커리에서 서비스 중인, 소비자가 매장에 매일 방문하여 음식을 픽업해가는 구독 방식으로 그 단점을 보완할 수는 있다. 그러나 집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구독의 큰 장점 중 하나를 잃는 셈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규모의 경제를 통한 공동구매에 지나지 않는다.


시대의 흐름을 타고 성장하기 위해 꿈틀거리는 시장이지만 아직 갈길이 멀다고 생각한다. 기술의 발전과 모험적인 시도가 절실하다. 구독이라는 트렌디한 사업 모델과 음식의 만남은 환영하지만 아직은 무수한 타협들로 버티고 있는 시장이다.


그럼에도 그 성장의 끝은 알 수 없다. 배달과 배송과 같이, 혹은 그 이상으로 우리의 생활상을 바꿔놓지 않을까 싶다. 이미 구독경제 자체는 우리 삶을 비틀어 놓았다. 만약 기업에서 정기적으로 따끈한 음식을 신문지 뿌리듯 흩뿌릴 수 있는 시대가 온다면 구독 경제가 비로소 거대한 성을 완공하는 것이겠다. 아직은 미약한 출발이지만 어쩌면 그 거대한 도약의 시작점에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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