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많은 이유들을 가져가 붙일 때가 있다.
이건 이래서 괜찮고, 저건 저래서 괜찮다. 사실이다. 그런 이유들로 말미암아 나는 괜찮아진다.
나를 괜찮게 하는 것. 그것이 그 많은 이유들을 찾아 헤맨 이유다.
가끔은 너무 멀리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란 생각도 든다. 망원경으로 내다보아야 콩알만큼 보이는 멀고 먼 그곳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냥 보아선 안되고, 매우 굉장히 많이 자세히 보아야 보이는 것들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성능이 좋은 망원경이라면 분명 내 평범한 눈에는 들어오지 않는 티끌들을 눈에 담게 해 주겠지. 하지만 그 티끌을 찾으려 가까이 있는 것을 돌아보지 못한 것은 아닐까.
그것은 가령 내 마음. 내가 괜찮다고 생각하는 내 마음. 내가 괜찮다고 생각하게끔 흩어져있는 이유들을 긁어보아 척척 조립해 내는 내 마음. 정말 내가 괜찮아졌는지 되물어도 그저 고개만 끄덕이다가 다시 쏙 들어가는 내 마음. 나는 그 망원경을 들여다보느라, 그리고 망원경 너머의 이유들을 골똘히 생각하느라 정작 내 마음은 돌아보지 못한 것은 아닐까. 마음이 행한 일인데, 그것을 행한 마음을 까먹곤 한다.
그 이유들을 종합해 보면 이상할 것이 없다. 대게 '그럴 수 있지'로 시작하여 '괜찮아'로 끝난다. 그러면 오늘도 무탈히 넘겼구나. 삐죽한 가시가 돋아나지 않게 꼭꼭 잘 달래었구나. 그러나 티끌만 한 이유들을 끌어모으면 괜찮지 않은 것이 없고, 그럴 수 없는 것이 없다.
나는 어쩌면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괜찮다고 생각하게끔 만드는 것이 아닐까. 이곳에 괜찮은 것은 없는 것이 아닐까. 내가 괜찮음을 어떻게 만드느냐에 달려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괜찮지 않은 것이 너무 싫어버려서 모든 것을 괜찮게 만든 것은 아닐까.
괜찮음을 만드는 과정에서 그것을 만들기 위해 내가 끌어당길 수 있는 모든 것을 사용하였지만, 그렇게 그럴듯한 괜찮음을 만들어 냈지만 정작 그것을 만드느라 생채기난 내 마음은 어찌하면 되는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내가 만들어낸 괜찮음은 적어도 날 위해 쓰이는 줄 알았다. 내 괜찮음이 상대방을 위로하고, 그렇게 돌고 돌아 나에게로 와서 남은 힘을 다 쏟아내어 나를 달래주겠지. 그런데 아마 그것은 오류였던 것 같다. 그것을 만들어내느라 지친 내 마음은 하나도 달래지 못했다. 괜찮음은 오직 내 껍데기를 위한 것, 내 껍데기를 알고 있는 이들을 위한 것이었다.
긁히고 생채기가 난 내 마음은 죽도록 일만 하다, 과로해 버렸다. 노동 시간과, 급여와 환경 및 복지에 이토록 민감한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도 나는 내 마음을 착취했다. 혹사시켰다.
괜찮지 않다. 내 마음을 챙기는 일. 괜찮지 않음에서 출발하는 아이러니.
내 마음은 괜찮지 않다.
괜찮지 않다. 그것은 당연하다. 도대체 괜찮은 것은 없다.
다 안 괜찮다.
내 마음은 적당히 일할 필요가 있다. 내 마음이 파업하기 전에 여유를 주어야지.
괜찮지 않다 보면 언젠가는 괜찮아질 것이다,
내 마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