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소주에서 시작한 전통주 열풍에 대하여
전통주 하면 가장 먼저 뭐가 떠오르는가. 아무래도 막걸리다. 소주도 오랜 역사를 지닌 술이지만 어딘가 도도하고 차가워 보인다. 하지만 막걸리는 다르다. 푸근하고, 구수하다. 희석식 소주보다 어딘가 한국의 맛을 더 그득히 품고 있다고 해야 하나. 대기업에서 생산되지 않는 것도 한몫을 하는 것 같다.
몇 해 전까지 전통주 하면 사실 머릿속에 막걸리 이외의 다른 술들이 그려지지 않았다. 술을 좋아하다 못해, 사랑하는 한국사람들은 기껏해야 소주, 맥주, 막걸리 정도만 마셔왔다. 술에 있어서 지독한 편식을 보인다. 하지만 요즘은 조금 달라지는 모양이다. 지역의 특색과 개성 넘치는 맛을 살린 '전통주'가 자꾸만 눈에 밟힌다.
전통주에 관해서 말이 많은 요즘이다. 이것도 전통주냐, 어떻게 이게 전통주가 아니냐, 전통주의 기준이 대체 뭐냐 등등 온갖 말들이 쏟아져 나오고 제도를 뜯어고치기도 했다. 그래도 이런 말들이 나온다는 것은 그만큼 전통주에 관한 관심이 높아졌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우리는 왜 거들떠도 안 보면 전통주에 주목한 것일까. 무엇이 그렇게 맛있고, 매력적이었길래.
역시나 단순한 것은 없다. 전통주를 둘러싼 여러 가지 트렌드들이 도움이 된 것 같다. 값싸게 마실 수 있는 소주에서 벗어나 이제 술에 돈을 쓰기 시작했다. 진짜 으른들의 전유물이었던 고급주류의 소비층이 보다 젊어졌다. 이름하여 '프리미엄' 트렌드다. 식품/외식업계를 강타한 이 트렌드는 주류 업계도 피해 갈 수 없었다. 소주에 비해 비교적 비싼 편에 속하는 전통주들은 프리미엄이라는 미명하게 가격 이슈를 피해갈 수 있었다.
물론 아직 전통적인 패키징을 한 술들도 있지만, 대게 젊은 소비자들 사이에서 인기를 끈 전통주는 패키징을 잘했다. 이른바 사진빨이 된다. 어떻게 하면 인스타그래머블한지 잘 안다. 대부분 평소에 맛보지 못한 생소한 술들이기에 최초로 소비자에게 간택되기 위해선 단순한 맛 설명 이상으로 그들을 유혹하는 무언가가 필요했고, 힙하고 모던한 패키징은 가장 적합한 수단이었다. 전통주임에도 전통에 머무르지 않는 것.
또한 전통주는 온라인 판매가 허용된다. 오프라인 구매처가 많지 않은 소규모 양조장의 매력적인 술들을 집에서 택배로 쉽게 만나볼 수 있다는 것, 이것만으로 설명이 된다. 이 때문에 규모 있는 주류업체들이 전통주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싶어 안달이 난 것이다. 비대면이 제1의 영향력을 가지는 시대에 온라인만큼 매력적인 유통 방식이 있을까.
처음 자취를 시작할 적에, 나는 술도 인터넷으로 사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술은 온라인 판매가 제한된다는 것을. 무조건 오프라인으로만 구매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얼마 후, 카카오톡 선물하기에서 전통주를 보았다. 어, 모든 술이 온라인으로 팔지 못하는 것 아니던가?
전통주 소비 촉진과 부족한 유통망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전통주만은 온라인으로 사고팔 수 있다. 물론 '인증된' 전통주에 한해서만. 나는 이게 아주 큰 역할을 했다고 본다. 모든 것이 온라인인 시대, 심지어는 창궐한 전염병 덕분에 사람을 마주치지 않는 삶이 강제되던 시기에 기막히게 빛을 보았다. 반강제적으로 떠오른 언택트라는 트렌드에 전통주는 자연스럽게 합류했다.
그리고 구독 경제가 사회 전반에 모습을 드러냈다. 전통주는 온라인 판매가 된다는 점에서 착안하여 전통주 구독 서비스들도 출시되었다. 절대적인 구독자자수와 별개로 이러한 구독 서비스들은 그만큼 전통주가 우리 곁에 성큼 다가왔음을 말해준다. 전통주는 이제 가볍게 주고받기 좋은 선물, 일상의 소박한 사치 정도로 소비되어 확실히 기존에 가지고 있던 이미지를 벗어던졌다.
하이볼과 위스키에 대해 말할 때, 비슷한 이야기를 다뤘지만 우리가 술에 대해 접근하는 태도가 사뭇 달라졌다. 여전히 우리는 술을 사랑하는 민족이고 왁자지껄한 술자리를 좋아한다. 이런 술자리에서 술은 단지 취하기 위한 도구요, 수단인 경우가 많다. 취하기 위해 마시는 술, 어쩌면 이점이 지금껏 우리의 음주 문화 변화를 막아온 것은 아닐까.
아마 10년 전만 하더라도 최근 인기 있는 전통주들이 힘을 못 썼을 것이다. 예쁘고, 개성 있는, 심지어 소주에 비해 비싼 술은 환영받지 못했으리라. 소비되더라도 일회성에 그칠 술들이었다. 결국에는 소주로 회귀하여 우리는 고주망태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술 자체의 문화적인 측면이 강해졌다. 술이 하나의 '식문화'로 인정받는다.
위스키와 와인 등 주류에도 프리미엄 열풍이 불고 사치를 즐기는 젊은 세대가 늘면서 전통주도 덩달아 수혜를 봤다. 이들은 외국 술들을 마시면서 맛을 음미하고, 더 깊은 맛을 추구했다. 술에도 입맛이 있음을 깨닫고 자신의 취향을 발전시켰다. 그리고 일련의 과정들을 전통주에도 똑같이 대입했다. 전통주의 인기는 술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변화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몇 년 전, 그러니까 원소주가 세상에 나오기 전으로 전통주 산업의 규모가 크지 않을 때였다. 소규모 양조장에서 만들어진 진정한 지역별 전통주들만을 판매하는 술집에 간 적이 있다. 소주와 막걸리 말고도 우리나라 전통주가 이렇게 많구나 싶었다. 게다가 와인처럼 페어링을 해서 먹었는데 한국 술과 음식의 궁합이라곤 삼겹살에 소주, 파전에 막걸리만 알고 있었던 나에게 정말 신선하게 다가왔었다.
이전까지 지역별 전통주라고 해도 엇비슷한 막걸리와 희석식 소주가 대부분이었다. 물론 이는 우리의 아픈 역사와도, 덕분에 그렇게 정착한 우리의 음주 문화와도 연관이 있다. 그럼에도 지역별로 상이한 주류 문화를 가지고 있는 다른 나라들이 참 부러웠다. 한국도 지역별로 풍토가 다르고 식문화가 다르니, 이것이 술에도 흡수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원소주가 메가 히트를 치고 업계를 점령했을 때 나는 좋았다. 원소주가 맛있는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전통주 시장이 주목받았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전통주 시장 자체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것, 이것만으로도 원소주는 박수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비록 지금의 전통주 열풍이 젊은 세대의 사치와 SNS로부터 파생된 허영심이라 불리더라도 나는 조금 오래갔으면 한다. 언젠가는 전통주가 특별히 찾아 먹는 술이 아니라 그 지역에 가면 으레 먹는 것이 되기를. 한 발 더 나아가, 온라인뿐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영향력을 발휘하기를. 전통주가 해피엔딩을 맞이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