뷔페여, 잘 있거라

한때 외식시장 최고의 트렌드, 뷔페에 관하여

by 식작가

어린이들의 천국, 뷔페


어린 시절 가장 즐거웠던 외식이 무엇인가 떠올려보면 아무래도 뷔페였던 것 같다. 먹고 싶은 음식을, 먹고 싶은 만큼 양껏 담아 먹을 수 있는 곳. 먹기 싫은 것은 먹지 않아도 되고, 눈치 볼 필요가 없는 곳. 뷔페는 어린이들의 천국이다. 뷔페에 갔을 때만큼은 이상하게 엄마와 아빠가 야채를 먹으라고 채근하지 않았던 것 같다. 어린 시절 음식으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기쁨이지 않을까.


나는 다채로운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뷔페를 지금도 좋아하는 편이다. 하지만 자주 가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아니다. 뷔페라는 서비스 방식을 좋아하지만 어린 시절 자주 가던 뷔페들에 발길을 끊은 지는 꽤 오래되었다. 내가 맛있게 먹었던 뷔페 한 접시는 추억으로 인해 보정이 된 것일까.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뷔페는 유망한 외식업종이었다. 한식뷔페부터, 초밥뷔페, 양식뷔페까지 그 종류도 다양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많은 뷔페들이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가고 있다. 한때 도심가를 점령했던 뷔페들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어린 시절 추억이 묻은 프랜차이즈 뷔페들은 왜 성인이 된 우리를 끌어당기지 못했을까.



다 있다, 그러나 다 맛있지는 않다


외식문화가 막 형성되고 소득 수준이 높아질 무렵, 뷔페는 고급의 대명사였다. 마음껏 먹지 못하는 고기와 해산물, 세련된 양식으로 점철된 음식 구성은 자연스럽게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쉽게 접할 수 없는 음식들을 내놓으면서 결혼식과 같은 행사에도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그 시절 뷔페는 내가 대접받고 있다는 느낌을 물씬 풍겼다.


소득 수준은 점점 높아져갔고 뷔페는 다양한 방식으로 진화했다. 고급진 이미지에서 벗어나 온 가족이 함께 가는 뷔페, 초밥이나 한식 등 특정 분야를 메인으로 하는 뷔페와 가성비 전략을 어필하는 뷔페까지. 시대를 거듭해 가면서 뷔페는 외식의 흐름에 맞게 이미지와 형태를 바꿔왔다.


그러나 소득 수준이 극도로 높아지고 개성이 중요시되면서 뷔페가 가지는 장점이 많이 묻혔다. 뷔페는 다양한 음식을 양껏 먹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모두 뛰어난 맛은 아니다. 그럭저럭 먹을만한, 우리가 다 아는 맛들이다. 소비자가 가지는 자극의 역치가 올라가고, 만족의 기준이 높아지면서 프랜차이즈 뷔페들이 내놓은 음식으로 만족할 수가 없었다.


또한 소비패턴도 극단적으로 바뀌었다. 프리미엄 덕분에 음식에 돈을 썼다가도 가성비를 추구했다. 양극화가 이뤄진 외식시장에서 프랜차이즈 뷔페는 따라갈 수 없었다. 프리미엄 전략은 이미 호텔 뷔페가 견고히 구축해 버렸다. 또한 가성비라고 하기에는 묘하게 비싸고, 그렇다고 값에 맞는 만족스러운 음식을 내놓는 것도 아니었다. 양쪽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한 프랜차이즈 뷔페는 점점 더 설 자리를 잃었다.



매일 갈 수 없는 뷔페


뷔페라는 곳은 어떤 곳인가. 많은 음식이 깔리고 필연적으로 음식의 종류가 다른 뷔페들과 겹친다. 주력으로 하고, 콘셉트로 하는 음식을 제외하면 사실상 음식의 종류와 맛은 차이가 없다. 비슷한 고기, 비슷한 해산물, 비슷한 밥과 면을 내놓는다. 우리가 그간 먹었던 뷔페를 생각해 보자. 메인 메뉴를 제외하면 비슷한 구성이다. 심지어 메인이 비슷한 경우도 있다.


뷔페는 상당히 피로한 공간이다.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생각해야 하며 북적이는 사람들 틈바구니를 헤집고 다니면서 맛있는 음식을 발굴해야 한다. 늘 과한 포만감을 느끼는 공간이고 여러 음식을 먹다 보니 집중도도 떨어진다. 또한 뷔페는 큰 맘을 먹고 가는 곳이다. 생일이나 기념일을 위해 가끔 가는 외식 공간이었다. 절대 자주 갈 수 없는, 필연적으로 재방문 주기가 긴 매장이다.


뷔페 붐의 마지막은 단연 한식 뷔페였다. 웰빙 붐이 불어오면서 한식이 주목받았다. 뷔페도 건강해 보이게, 우리 입맛에 익숙하게 새 단장했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한식 뷔페가 우후죽순 생겨났고 그야말로 없는 곳이 없었다. 대부분 양식, 일식, 해산물로 점철되어 있던 뷔페 시장에 한식을 주 무기로 삼은 뷔페는 위력적이었다. 하지만 인기가 너무 많았던 탓일까, 한식 뷔페는 정말 지독하게 많이 생겼다.


그게 독이 되었던 것 같다. 너무 흔하게 접할 수 있었기에 우린 더 쉽게 질렸다. 인기에도 불구하고 긴 재방문 주기와 손님을 피로하게 만드는 특유의 서비스 방식은 여전했다. 심지어 현대의 외식 트렌드와도 점점 상반됐다. 적당한 맛에 다양한 음식을 먹는 시대는 저물어가고 있었다. 한식 뷔페가 힘을 잃어감과 동시에 프랜차이즈 뷔페라는 업종도 맥을 못 추었다. 그렇게 한식 뷔페는 프랜차이즈 뷔페산업의 마지막 불꽃이 되었다.



운이 없어도 너무 없는 뷔페


뷔페와 엇나간 트렌드들이 너무 많다. 요즘에 뷔페와 비슷한 가격을 지불하는 식당들을 보면 대게 분위기나, 콘셉트, 인테리어, 감성 등등 맛 이상의 경험을 제공한다. 뷔페는 그 점에서 한계를 드러낸다. 한 곳에 앉아 가만히 음식을 즐기기도, 사진을 예쁘게 찍기도, 프리미엄에 발맞춰 대단한 수준의 음식을 제공받기도 쉽지 않다. 심지어 가성비 전략을 들고 나온 외식업체들에게 맛을 따라 잡히기도 한다.


1인 가구가 증가하는 시점에서 혼밥족을 수용하는 것도 쉽지 않다. 프랜차이즈 뷔페는 대게 2인 이상을 기본으로 잡기 때문에 혼밥러들이 쉽게 먹으러 가는 곳이 아니다. 일반적인 혼밥 식당보다 가격이 비싼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코로나는 그중에서도 가장 큰 타격을 입혔다. 그릇에 담긴 음식을 여러 명이 공유하며 먹기 때문에 그 어떤 식당보다 전염병이 퍼지기 쉬웠다. 그 사이 발길은 뚝 끊겼다. 몇몇 업체가 살아남기 위해 RMR과 배달을 택했지만 오프라인 업장이 주가 되는 뷔페 산업에서 그것은 고육지책에 불과했다. 참 여러모로 불운하다. 이렇게 되는 일이 없을까.



뷔페의 눈물 나는 생존기


얼마 전, 정말 오랜만에 프랜차이즈 뷔페를 갔었다. 많이 아쉬웠다. 꽤 괜찮은 상권에 있던 지점이었는데도 손님이 너무 적어서 음식이 순환되지 못했고, 제대로 된 접객을 받을 수가 없었다. 가격도 꽤 비쌌다. 지금도 아이를 동반한 가족 단위 외식 장소로는 최고지만 이대로 간다면 그것마저도 장담할 수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뷔페라는 산업 자체가 몰락한 것은 아니다. 호텔 뷔페는 여전히 명성을 떨치고 있다. 각종 행사에서 음식을 제공할 때에도 뷔페식으로 제공하는 곳이 많다. 프랜차이즈 뷔페는 아니더라도, 소규모로 하는 한식 뷔페는 점심시간에 불티나게 팔린다.


우리는 뷔페를 싫어하지 않는다. 좋아한다. 때와 장소를 가려서 말이다. 럭셔리한 호텔 뷔페에, 가성비 넘치는 소규모 한식 뷔페에 못 가서 안달이다. 지점 몇 개 남지 않은 쿠우쿠우도 특유의 메뉴 구성과 레트로라는 명목하에 다시 인기를 끌었다. 이제는 선택의 시간이다. '뷔페'라는 단순한 타이틀로 살아남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우리를 유혹할 분명한 무언가가 앞선 사례들처럼 필요하다. 추억만으로 가기에는 너무 밟히는 것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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