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폼과 외식의 공통점

극단적인 효율을 추구하는 우리에게

by 식작가

짧고 자극적인 것


침대에 누워 10초에 한 번, 손가락을 위로 쓸어 올린다. 그렇게 10초가 모여 한 시간이 훌쩍 넘는다. 언제부턴가 숏폼이 뉴미디어 시장을 지배했다. 전통적인 영상 매체들, 그러니까 드라마와 예능, 영화와 같이 1시간이 넘는 콘텐츠들이 점점 설 곳을 잃었다. 이들도 러닝타임을 줄였고, 그마저도 우린 요약본을 본다. 스토리를 이해하고 따라가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시간을 쪼개서 사는 우리에게 비효율은 그야말로 죄악이 되었다. 가장 자극적이고 가장 재미있는 부분만 있으면 됐다. 그것에 최적화된 형태가 지금의 숏폼이다. 하지만 꼭 콘텐츠에만 한정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무엇이 되었든 우리는 짧고 굵은 쾌락을 추구한다. 필요한 자극만을 신속하게 바라는 것. 아마 이것은 최근 우리 삶에 가장 깊숙이 침투한 문장이 아닐까.


짧고 굵은 쾌락. 효율적인 자극. 불필요의 혐오. 생뚱맞지만 외식과 닮아있다. 번거로운 준비는 필요 없다. 식당에 가서 주문할 것. 음식을 입에 넣을 것. 그리고 씹을 것. 그게 전부다. 그마저도 번거롭다면 배달을 시키면 외식보다 더 강한 자극은 있지만 이보다 효율적이고 즉각적인 것이 얼마나 될까. 숏폼과 외식은 서로 너무 다르지만,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효율적인 조리는 없다?


음식은 확실히 간편한 자극이다, 물론 조리라는 과정이 생략되었을 때. 나는 요리를 좋아하는 편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다. 나는 음식을 만드는 과정 자체를 좋아하지만 아닌 사람들에게 이것만큼 고역은 없다. 음식을 먹기 위한 하나의 노동에 불과하며 결과 또한 보장할 수 없으니 말이다.


젊은 세대의 음식과 요리에 대한 관심은 유례없이 크다. 미디어와 SNS의 영향이 크지만 우리가 이전 세대에 비해 미식을 추구하고 요리에 관심을 가졌다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극단적인 효율을 추구하는 세상에서 조리는 때때로 비효율적이다. 우리는 조리라는 과정에 관심을 가지면서도 대리만족의 형태로 그 욕구를 충족할 뿐이다.


SNS 영상 콘텐츠 중에서도 요리 콘텐츠를 제법 찾아볼 수 있다. 먹방의 뒤를 잇는 쿡방이다. 초기에는 조리법을 소개하기 위한 용도였지만 최근에는 대리만족의 성격이 크다. 음식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면서 쾌감을 느끼는 거다. 영상을 보고 실제 조리로 이어지는 경우는 생각보다 드물다. 우리는 영상이라는 효율적인 도구를 통해 조리에 대한 욕구를 충족한다.


대리만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례가 밀키트다. 밀키트는 조리라는 과정을 간편하게 체험할 수 있다. 번거로운 과정을 대신해주고, 조리의 재미만 뽑아왔다. 내 손으로 무언가를 만든다는 기쁨과 쾌감. 하지만 우리의 마지노선은 밀키트까지다. 조리를 하더라도 밀키트와 같이 정형된 자극만을 추출할 수 있는 대상 이어야 한다.



안보다는 밖, 내식보다는 외식


나는 주로 내식(內食)을 하며 자랐다. 집에서 요리를 해서 밥을 먹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요리가 주부의 덕목이 아니어도 됨을 알게된 것은 고등학생이 될 무렵이었다. 스무 살이 되어서는 몸소 체감했다. 주변의 혼자 사는 사람들은 내식보다는 중식(中食)과 외식을 택한 경우가 많았다.


요리? 그런 것 하지 않아도 충분히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 당연히 조리라는 과정을 생략한 대가는 치러야 했다. 우리가 숏폼 콘텐츠를 보면서 마주하는 광고들을 통해 대가를 지불하는 것처럼 말이다. 우린 집 안에 있던 음식을 밖으로 끌고 간 대가를 돈으로 지불했다. 비싸다고 투덜대지만 늘 지불할 것이다. 언제까지? 우리가 차라리 직접 요리하는 게 더 효율적이겠다고 느낄 때까지.


덕분에 외식 시장은 꾸준히 우상향을 그리며 성장 중이다. 움츠러든 소비와 커져가는 경쟁에 신음하지만 시장의 규모 대비 경쟁자가 많은 것일 뿐, 외식 시장은 계속 커지고 있다. 외식에 대한 수요와 내식에 대한 거리낌을 동력 삼아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더 많은 효율과 순도 높은 자극은 외식의 최대 무기가 되었다.



집밥의 종말과 외식


물론 내식은 여전히 비중이 높은 식사 방식이다. 우리의 부모님 세대는 아직 외식보다는 내식이 익숙하다. 내 또래 대부분은 아직 돌아갈 '집밥'이 남아있다. 하지만 식품 시장의 트렌드와 외식 시장의 움직임을 보면 우린 확실히 조리라는 과정을 귀찮아한다. 우리가 우리의 부모님 또래 정도 되었을 때, 내식과 집밥의 앞날은 장담할 수가 없다.


날로 치솟는 물가 덕분에 우리가 움츠러들었다. 지갑을 닫고 지출을 줄였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을 둘러보면 외식을 줄였다고 내식을 택하지는 않았다. 중식으로 해결하거나 굶는 경우도 있었다. 편의점 도시락이나 간편식이 주목받은 이유다. 우리는 이 정도로 내식과 조리를 선호하지 않는다. 이 정도로 귀찮음을 싫어한다.


어느 날, 유튜브 쇼츠를 넘기다 든 생각이었다. 그냥 외식과 숏폼을 억지로 엮은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극단적인 효율을 바탕으로 한 자극을 추구하는 것은 확실하다. 낭만과 향수 가득한 불필요한 과정을 모두 잘라내 버렸다.


우리가 집밥을 먹는 이유는 그리움 때문이기도 하다. 익숙하고 편안한 식탁을 본능저적으로 좇는다. 외식과 식품을 공부하고 좋아하는 입장에서 시장이 커진다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다. 하지만 집밥이라는 풍경이 추억의 한 장면으로만 남을 수 있다는 생각에 어딘가 조금 울적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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