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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식작가 Aug 05. 2023

크로플의 천국

미친 응용력을 보여주는 우리에 대하여 

  크로플과 와플메이커 


  크로와상 생지를 와플팬에 눌러 구운 것. 와플 무늬가 크로와상 생지에 생기면서 바삭하고 고소하게 구워진 것. 지금은 그 인기가 한 김 식었지만 불과 1~2년 전, 한국 카페 산업에서 가장 뜨거운 아이템이었다. 크로플 맛집으로 소문나면 손님이 붐비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었다. 크로플을 시도하지 않은 카페가 드물었다. 


  나는 와플을 썩 좋아하지는 않는다. 얇게 구워서 생크림을 가득 바른 한국식 와플은 그래도 곧잘 먹었지만 두툼하게 구워진 미국식 와플이나 벨기에 와플은 영 내 취향이 아니었다. 하지만 크로플은 조금 달랐다. 바삭하고 더 부드러웠다. 그냥 먹어도 묵직했고 커피랑 더 잘 어울리는 듯했다. 종종을 넘어 자주 찾게 되는 음식이었다.  


  한국은 크로플의 원조도, 당연히 크로와상의 원조도 아니지만 어째 지구상에서 크로플을 가장 맛있게, 다채롭게 먹는 나라가 되었다. 그리고 그 크로플을 만드는 와플메이커는 정말이지 엄청난 범용성을 자랑하면서 만능 주방기기로 재탄생하였다. 우리는 이 세상 모든 음식을 와플메이커에 눌러서 먹을 작정인가 보다.      



  와플보다는 크로플  

  

  당연히 와플메이커는 잘 알려지지 않은 주방가전이었다. 마치 10여 년 전 에어프라이어가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 사람들이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것처럼. 하지만 TV나 유튜브, SNS등의 미디어에서 와플메이커가 슬금슬금 등장했다. 그리고 때마침 크로플이 이 땅에 상륙했다. 와플메이커와 크로플은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내며 자신들의 인지도를 상승시켰다.    


  아마 국내 카페에서는 와플메이커로 와플보다 크로플을 더 많이 만들 것이다. 크로플의 인기는 맛도 맛이지만 대단히 상업적인 이유 때문이다. 반죽이 필요한 와플이 비해 보관이 용이한 생지로 만들어진다. 대량으로 보관이 가능하고 조리 자체도 와플에 비해 훨씬 수월하다. 생지 자체에 버터와 설탕이 함유되어 맛있는 것은 뭐 당연했고.


  와플메이커로 크로플을 만드는 것은 어찌 보면 본래 용도 이외의 사용이다. 하지만 이것이 와플메이커를 지금의 위치에 올려놓았다. 크로플이 인지도를 얻을수록 사람들은 와플메이커의 용도에 대해 생각했다. 와플메이커로 와플이 아니라 크로플을 만들어도 맛있네? 와플메이커로 꼭 와플을 안 만들어도 되는구나. 그럼 다른 걸 만들어도 맛있으려나? 이것이 무궁무진한 와플메이커 활용의 시작이었다.  



  토스터기와 다른 무언가 


  나는 정말이지 와플메이커, 그러니까 와플팬이 불꽃같은 삶을 살다가 가버릴 줄 알았다. 오래전 서구적인 식습관이 자리를 잡으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토스터기처럼 말이다. 토스터기는 한때 필수가전 취급을 받으면서 가정집에 보급되었으나 결국은 주방 한 켠에 방치된 체 쓰이는 일이 잘 없었다. 


  나는 와플메이커가 그런 운명이 처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것은 완벽한 내 오판이었다. 필수가전까지는 아니더라도 꽤 많은 집에서 와플메이커 혹은, 와플팬을 구입했다. 그리고 적어도 토스터기보다는 오랫동안, 널리널리 사용되었다. 하물며 시골 구석에 있는 우리 집도 주물로 된 와플팬을 구입해서 쏠쏠하게 써먹었으니까. 


  와플메이커의 가장 큰 차이점은 그 활용성에 있었다. 와플메이커는 당연하게도 와플을 굽는데만 사용되지 않았다. 밥을 눌러먹고, 전을 부쳐 먹고, 크로플을 구워 먹었다. 사실상 이름만 와플메이커지 양면 프라이팬에 지나지 않았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가정집에 보급된 양면 프라이팬은 그 범용성 덕분에 아직도 살아남았다. 그 덕택인지 몰라도 카페의 크로플 역시 아직도 현역의 신분으로 카페 메뉴판 한 공간을 당당히 차지하고 있다. 



  더 많이, 더 다양하게 


   크로와상 생지를 누룽지처럼 눌러먹는 크룽지라는 것도 등장했다. 가끔 보면 우린 정말 미친 응용력을 보여준다. 이런 응용력 덕분에 크로플과 와플메이커는 베스트셀러를 넘어 스테디셀러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짧은 유행뒤에 번개처럼 사라진 외식 역사 속의 음식처럼 되지 않기 위한 발버둥이었달까. 


  이런 응용력은 앞서 말한 발버둥은 대부분 다른 음식과 더해지거나 그 내용물이 굉장히 비대해지는 것에서 나타기도 한다. 밥과 음식에 남다른 애착을 보이는 민족이라 그런 것인지 내용물이 부실하면 인색해 보여서 그런 것인지, 해외에서 건너온 음식에도 정(情)을 듬뿍 담았다. 뚱카롱부터 굉장히 다채로운 토핑이 올라간 한국식 크로플이 이렇게 탄생했다. 


  물론 비판점도 있다. 음식 본연을 맛을 너무 해치고, 무작정 양만 늘린다는 것이다. 나도 가끔은 아이스크림만 살짝 올라간 크로플이 더 당길 때가 있다. '튜닝의 끝은 순정'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위의 음식들은 이렇게 해서 살아남았다. 적어도 우리의 표준적인 입맛에는 잘 맞는다는 것이다. 풍성하고 가득 들어오는 입안의 자극을 우린 사랑한다. 인정해야한다. 우린 다채롭고, 풍성하고, 거대한 음식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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